[오사카] 나니와 오키나(なにわ翁)-니신소바와 국물의 신맛
아 그래, 이 동네에 왔으면 니신 소바를 먹어야지. 갑자기 생각이 나서 찾아갔으나 당일 휴업. 다음날 다시 찾아가 맛본 청어 소바는 훌륭한 음식이었다. 꼬들거리면서 양념과 살 양쪽 모두에서 단맛 물씬 풍기는 청어와 김의 시너지가 훌륭해, 굳이 ‘비리지 않다’ 같은 말을 찬사로 꺼낼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 생선이면 ‘비린내 안 난다’, 돼지고기면 ‘잡내 안 난다’라는 이야기가 거의 습관처럼 찬사로 쓰이는데, 애초에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이라면 그런 냄새 자체가 나지 않을 것을 전제로 삼는다. 따라서 원래 없어야 할 것이 없는 상태를 칭찬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또한 재료 특유의 냄새는 언제나 날 수 있다. 그것이 습관적으로 반드시 비린내나 잡내일 이유는 없다.
그런 청어와 메밀면의 조합 등도 좋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국물의 신맛이라는 생각을 했다. 없었다면 어땠을까. 먹으면서 어린 시절 밥상에 종종 올라오던 준치나 조깃국을 떠올렸다. 굳이 먹고 싶은 음식이 아니었고 따라서 내 밥상 차리고 난 다음부터는 단 한 번도 만들어 본 적 없지만, 식초 한두 방울을 떨구었때 일어나던 맛의 극적인 변화를 아직도 기억한다. 비린내와는 전혀 상관 없지만 등푸른 생선 특유의 풍부함을 잘라주는 신맛이 없었더라면 이 소바도 전혀 다른 음식이었을 것이다. 어제 언급한 쓴맛이 와일드카드라면 포(베트남 쌀국수)도 그렇고 신맛은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데… 정작 크게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평양냉면 국물에 식초를 더해 먹는 게 ‘사파’로 취급 당하는 등 한국의 국물 음식에서 신맛은 어디쯤 있는지 궁금하다. 고깃국물에는 기본적으로 김치가 그런 역할을 맡지만 언제나 똑같이 익은 걸 낼 수 없는 여건이라면 덮어 놓기 의존하기도 어려운데.
일본은 국물음식을 한국에 비하면 잘 먹지 않으므로 국물의 맛이 없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가서 먹어보니 의외로 한국의 국물보다 일본의 국물요리가 더욱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습니다. 라면이나 츠케멘에서 돈골과 생선육수와 같이 다른 종류의 국물을 섞어서 복잡한 맛을 내는 경우를 보았는데 한국에선 이렇게 국물을 섞는 경우가 잘 없어서 놀라웠습니다. 먹으면서 계속 뭘 어떤 비율로 섞었기에 맛이 이렇게 다층적이면서도 균형이 잘 맞을까 고민하게 만들더군요. 또 네기시라는 다소 뻔한 체인점의 소혀구이 백반정식에 따라 나오는 맑은 소꼬리국(규 테일 스프라고 써놨더군요)이나 히츠마부시에 따라 나오는 장어 간이 들어간 맑은국 또한 맛을 낸 후 재료를 모두 건져내어 콩소메스프처럼 맑았지만 다양한 맛들이 어울려서 매우 복잡하고 세련된 맛을 내고 있었습니다. 맛의 층위나 조화가 부족하여 단편적이고 자극적인 한국식 국물요리도 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네 전 켜에 대한 발상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본도 국 많이 먹습니다…
1. 말씀 감사합니다! 저는 대학생 시절부터 일본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습니다(제가 블루마스님보다 좀 어립니다). 처음 일본에 여행가서 음식을 먹어보고 자포니카쌀을 주식으로하는 문화이므로 한일간 식문화가 외형상으로는 비슷하지만 혀로 느껴지는 식문화의 수준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블루마스님이 말씀하신 ‘켜(저는 맛의 층위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습니다만 결국은 같은 의미라고 생각합니다)’의 측면에서 한국요리가 전반적으로 일본요리보다 평면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었고, 사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일본요리 가운데 특히 국물음식은 첫맛부터 끝맛까지 미려하게 흐름이 잘 이어지는 가운데 ‘데체 뭘 섞어서 이 맛을 냈을까’를 계속 고민하게 만들더군요. 딱히 비싼 음식점이 아니라 1000엔대 중반 이하면 먹을 수 있는 음식점들의 전반적인 수준이 그랬습니다. 전통적으로 ‘탕반(湯飯)문화’라고 주장하는 한국의 탕문화가 과연 여기에 비할 때 비교우위가 있는 것일까 회의적인 생각이 들어서 좀 우울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재수없는 놈 소리를 듣기 십상이라서 꺼내기 어려웠던 말씀입니다만 여기서는 이해해주시는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2. 극히 약소한 액수지만 후원을 하였습니다. 아주 적은 성의입니다만 일본에 계시는 동안 취재비에 보태셔서 조금이나마 많은 정보를 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아, 그래도 일본사람들은 밥그릇보다 국그릇이 큰 경우는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았군요^^;; 지금 한국에 있습니다만, 9월에 도쿄 출장 갔다가 먹었던 현대 일본 요리의 국의 켜에서 새삼스레 충격을 받았습니다. 말씀처럼 한국이 국물 음식을 더 많이 먹는 것 같습니다만 우위에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맛의 설계라고 봅니다. 참고로 제가 말하는 ‘켜’는 서양 요리의 layer를 그대로 옮긴 것이고 층위와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후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