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르트 ‘콜드 브루’와 커피의 인상
올해부터는 결국 안 맡게 된(잘린?) 대학 강의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간략하게 올린 바 있는 커피 비교 시음 이야기다. 당시 학생들의 반응 가운데 하나가 흥미로웠다. 전부 시음한 다음 ‘그래도 카누가 맛있다’는 의견이 나온 것. 다수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여러 학생으로부터 나왔다.
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카누를 비롯한 대량 생산 제품은 가장 일반적인 커피의 맛이나 향만을 지니고 있다. 선택의 산물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선택마저도 나름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살아 남는, 가장 대표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커피라는 음식의 기본 요건 또는 공집합을 규정하고, 이미 사라지고 없는 나머지 예민하고 휘발성 강한 요소들이 커피의 경험을 완성 및 증강시킨다. 후자를 살리기란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대량생산 제품은 전자를 보존, 보완 및 보강하여 인상을 각인시키는 전략에 치중한다. 그래서 커피 제품에 ‘커피 향’이 따로 첨가되는 것이고, 이를 통해 대량 생산 식품을 ‘모사품’으로 규정할 여지가 생긴다.
한편 커피의 경우, 저온 추출이라면 후자의 활성화 여건 자체가 더 떨어진다. 애초에 온도 자체가 가용성 물질(soluble)을 녹여 내기에 최적이 아니기 때문. 그래서 추출 시간(24시간 수준), 커피의 양(뜨거운 커피의 두 배), 간 콩 입자의 크기(더 곱게) 등을 조정해 이를 갈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온 추출 커피의 맛은 뜨거운 물에 내리거나 압력으로 추출한 것보다 떨어진다. 후자의 방법을 통해서 더 효율적으로 뽑아낼 수 있는 기름과, 그걸 통한 ‘바디감’도 다르기 때문. 누군가는 두 가지 커피가 ‘다르다’고 규정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저온 추출 커피는 뜨거운 물을 쓴 것보다 못하다. 그래서 잘 내린 커피라도 믿음이 없다. 같은 조건으로 차갑게 내린 커피와 뜨겁게 내려 식은 커피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물론 애초에 맛이 없는 커피라면 식혔을 때 더 맛이 없겠지만.
전화를 거는 등, 소문을 듣고 적극적으로 찾은 야쿠르트의 ‘콜드 브루’를 마시고 저 두 가지를 생각했다. 기본적으로 저온 추출 커피에 믿음이 없지만, 그 가운데서는 괜찮다. 깊을 수는 없지만 얕은 가운에서는 섬세함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모사품 아닌 커피 같다는 말이다. 물론 오래 가지는 않는다. 뚜껑을 열어 놓고 하루만 지나더라도 맛이 꽤 변하는데, 편의점에서 더 싸게 살 수 있는 유통기한 긴 제품들과 굉장히 비슷해진다. 즉 모사품에 가까워진다는 말이다. 이나마도 ‘아주머니’가 ‘노드’로 작용하는 유통망 때문에 기획이 가능한 제품 아니었을까(하지만 일반 소매도 하는 듯? SSG에서도 보았다).
가격(한 병 2,000원)이나 배달 방식 등을 감안하면 분명히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과연 얼마나 많은 비율의 소비자에게 ‘커피’라고 인식 및 각인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핵심을 이루는 맛, 또는 가장 기억에 강하게 남는 맛은 사실 먹는 경험이 줄 수 있는 최선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로스터리 카페 등이 많이 생기고 어쨌든 커피의 지평이 넓어진 것만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믹스와 캔커피가 커피의 대표로 각인 되어 있는 인구의 비율이 높다. 그 와중에 이 커피는 어떤 인상을 남길 것인가.
*사족: 만족스러워서 종종 마시겠노라고 마음 먹었다가 정치적인 이유로 마음을 돌렸다. 궁금하신 분들은 검색해보시길.
만족스러워서 종종 마시기로 마음먹(x2)었는데.. 검색하러 갑니다. (쓸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