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과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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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길문 공연을 보고, 저녁 거리 걱정을 하면서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10시를 훌쩍 넘겼으니, 저녁을 걱정하기엔 확실히 늦은 시각이었다. 하지만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점심의 기억을 도저히 가셔낼 수가 없었다. 문자 그대로 정말 토할뻔한 음식이었다. 레스토랑 음식에서 삼각 김밥과 오뚜기 3분 요리의 맛이 난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택시에서 1분만 늦게 내렸더라면, 활명수라도 마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분명 집 앞에서 토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품위를 지켜야 하지 않겠나. 그것도 멀쩡한 대낮에.

그러니까 긴 토요일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점심 전에 운동을 마치고 취재를 갔다. 음식은 더도 덜도 없이 끔찍했다. 공정하자면, 음식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을 것이다. 끊임없이 급가속 및 감속을 하는, 기술 없는 택시와 날씨도 분명히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먹지 않았더라면.

어쨌든 재료를 사기에도, 설사 사더라도 내 손으로 해먹기에도 확실히 늦은 시각, 합정역에 거의 다 이르러 ‘그 집’을 발견했다. 이제는 삼겹살집이 되었구나. 원래 그 집은 칼국수와 들깨 수제비를 파는 음식점이었다. 좋지는 않아도 깔끔해서 종종 갔는데, 어느 순간 문가를 터 빈대떡을 팔기 시작했다. 정확히 그게 결정적 원인은 아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가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근처를 잘 안 다녀서 모르고 있었다. 이미 삼겹살집이 되어 버린 것을.

그런 점심을 포함한 긴 하루를 겪고 소금간만 한 고기 생각이 유난히 강하던 참이라, 잠깐 망설이다가 들어갔다. 읍. 몇 년 만인데 주인이 알아본다. 네, 맞아요. 좀 멀리 이사를 가서 잘 못 왔네요. 불판이 올라오고 삼겹살과 배추 김치가 오른다. 이런 세팅에 믿음이 별로 없는데, 고기 겉면이 입는 마이야르 반응이 꽤 훌륭하다. 김치도 단맛이 거의 없고 깨끗하다. 맛이 없으면 말하지 않지만, 맛이 있으면 나는 언제나 분명하게 말한다. 맛있어요. 그런데 왜 굳이 삼겹살로 업종 변경하셨어요? 더 힘들지 않나요?

칼국수는 나이 든 사람들이 주로 먹으니까, 젊은 사람들 오게 하려고 바꾼 거지. 메뉴를 보니 칼국수가 아직 있기는 하다. 점심에는 팔리겠지. 주인이 말을 잇는다. 그런데 딱히 힘들 건 없어. 맛있지? 내가 잘 모르니까 고기도 그렇고, 불판도 가장 좋은 걸로 사온 거야. 김치도 00(정확하게 못 들었다)에서 사오고. 잘 모를 때는 가장 좋은 걸 쓰는 게 원칙이지.

의도인지 우연인지는 몰라도 뜨거운 고기와 잘 맞도록 미지근한 밥, 조금 더 진득했으면 좋았겠지만 감칠맛이 과하지는 않은 된장찌개로 식사를 마치고 생각했다. 이 삼겹살과 김치의 조합은 어떤 의미인가? 일단 나의 식탁에서 구워 먹어 얻는 생동감은 분명히 의미 있고(가장 큰 미덕이다), 이를 갖춰주는 식당의 ‘세팅’ 또한 충분히 의미가 있다. 고깃집이 가장 인기 있는 외식 문법의 지위를 누리는 가장 큰 이유는 그 둘을 집 바깥의 공간에서 연출해주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삶의 공간 형태가 아파트인 현실에서 여러 모로 누리기 쉽지 않은 경험이니까.

그러나 이것을 요리라 할 수 있을까? 분명 이 한 끼 식사는 훌륭했지만, 음식점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불과 그것을 피울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주는 역할까지만 한다. 고기야 당연히 사온 것이고, 김치 또한 사온 것이라고 분명히 이야기 들었다. 이곳이 예외일리도 없다. 다른 고깃집도 같은 전략을 취할 것이다. 김치 정도야 담글 수도 있지만, 엄밀히 따져 효율적이라고 보지도 않는다. 한국의 대표 외식 형태인 고깃집에서 아주 자질구레한 요소를 빼놓는다면 거의 모든 것은 외주다. 심지어 조리, 즉 고기 굽기마저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이 한 끼를 잘 먹은 것과, 이것이 요리가 아님을 분리해 생각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음식의 너른 영역에서 이러한 문법은 분명히 소구하는 지점이 있고 배척할 이유도 없지만, 그와 동시에 최고며 최선은 아니고 다른 목표와 지향점이 분명히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 구분이 가능한 사람이 계속해서 논리적인 이유와 함께 이견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발전이 있고 더 나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자연과 재료의 조리가 아닌, 사람과 철학의 요리 말이다.

그게 나의 일이다. 하지만 나 혼자 할 일도 아니고,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 누군가는 어디에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지는 못하고, 알던 사람이 사라지는 것만 인식하게 된다. 이것도 좋지만 끝이 아니며, 더 나은 것을 추구할 수 있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설사 분명히 알고 있더라도.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지는 않아도 좋다. 하지만 왜 있던 사람이 사라지는가. 왜 퇴화하는가. 대체 이유가 무엇인가.

11 Responses

  1. 주제랑 무관하지만 선킬문! *_*

  2. 미콩 says:

    음식과 관련 글에 오바이트로서두를 정한건 독자를 배려하지 않은 것 같아 아쉽네요

  3. JS says:

    일기 잘 봤습니다

  4. 제가 작년에 참 맛있게 먹었던 건 지방 고깃집의 생삼겹살이긴 했지만, 말씀대로 형식이 대부분 외주의 요소죠. 직원이 와서 고기를 알맞게 잘 구워준다면 평가의 요소는 더 생기겠지만요.
    우리나라는 좋은 재료들이 이것저것 있지만 사실 요리법이 다양하지가 않죠. 그 연장선상인 것 같습니다~

  5. 삼성뭐야 says:

    갤놋5쓰는데 이사람글은 대체 왜 매번뜨는건가?
    아무리봐도 개인블로그인데 이게 왜 내 핸드폰에 매번 업데이트되는지 모르겠다.
    오늘 글은 삼겹살은 맛있게 먹은거같은데 또 불만투성이다. 자신에게 유익하지않은 댓글은 무시하는 수준이며 또 후원계좌는 왜 있는것인가?
    아니 다 좋다 내가 안보면되는거니까. 이거 쫌 갤놋5왼쪽화면에서 안보는방법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