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동] 잇푸도-최선은 언제나 차악
블로그질 12년에 한 가지 음식에 대한 글을 일주일 내내 쓴 적이 있던가. 없는 것 같다.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열과 성을 다해 검색하지는 않았다. 그, 어떤 파워블로거께서 고깃집에게 고소당해 법정 분쟁을 벌이면서 계속해서 고깃집을 다녔던 일화가 있지 않던가. 그거 멋있다고 생각했다. 진심이다. 그래서 비슷하지도 않지만, ‘오마주’라고 한 번 억지를 부려보자. 라멘에 대한 글을 또 쓴다는 말이다.
일본에 정통한 일행과 점심으로 먹었는데 그가 이야기를 해주었다. 일본의 TV에서 보았다며, 잇푸도는 세계 진출을 위해 모든 것을 그 나라에 맞춰 미세조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라멘이 등장했는데, 정말 수육처럼 삶은 삼겹살이 나왔다. 굽지도 않았고, 토치 등으로 불을 댄 것도 아니었다. 두께도 삼겹살과 흡사했다. 그리고 차갑기까지 했다. 오, 이것이 한국에 맞춘 미세조정인가? ‘미세’라고 하기엔 다소 노골적인 제스쳐였다. 계란까지 감안하면 더더욱 그러했다. 똑같이 차가웠다는 말이다. 한 개를 온전히 주는 건 가격까지 감안한 배려(?)일지도 모르겠는데, 온도에는 도움이 안 됐다.
국물은 삼겹살과 계란의 협공을 받으면서도 묵묵했다. 그것은 말하자면 공업과 대량생산의 힘을 입은 묵묵함이랄까. ‘난 말이지, 출신과 성장 배경이 다르다고’라는 생각으로, 분명 귀찮을 것이 뻔하지만 또한 인식하고 있지만 안 그런척 하는 묵묵함 말이다. 공업과 대량생산의 힘을 빌어 맨 위와 아래를 잘라내고 두터운 가운데로 밀어 붙이는 국물과 삼겹살, 계란이 자아내는 불협화음이 미묘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면이 있었다. 따지고 보면 국물과 같은 출신일텐데, 완성 시켜야하는 여건에 따라 본의 아니게 중간자적 입장을 취했다. 삶은 정도를 선택할 수 있다지만, 면의 굵기와 여건을 감안한다면 그것은.
서울에서 라멘을 12,000원 주고 먹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가 아주 미세하게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군데 빠진 숟가락으로 국물을 퍼먹으며 생각해보았다. 세계적 브랜드와 공업 및 대량생산의 힘을 빈 라멘이 있다. 맛은 너무나도 예측 가능하지만 대신 디테일 쯤은 칼같이 지켜서 나온다. 한편 그 대안이 되어 보겠다고, 또는 전략적으로 차별화를 하겠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가내 수공업 형식으로 만드는 라멘이 있다. 국물은 당연히 내는 거고, 심지어 면도 직접 뽑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한정된 예산과 인력으로 행동에 옮기려니 언제나 디테일이 떨어진다.
둘 가운데 어떤 것이 최선인가. 둘 다 아닐 것이다. 그래서 문제다. 최선이 사실 최선이 아니고, 언제나 차악(the lesser of two evils)다. 더군다나 차악마저도 차악의 미덕을 완전히 갖추지는 못한다. 말하자면 공업의 힘을 빌리지만, 디테일이 떨어진다. 빌리는 쪽은 그렇기 때문에 떨어지고, 그렇지 않는 쪽은 공업의 힘을 빌리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힘에 부쳐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현실이 이렇다 보면 순간 깨달음이 올 수 있다. ‘현타’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기대란 위험한 감정이구나. 순간 메뉴의, 한글로 표기한 라멘 이름이 너무나도 낯설게 다가왔다. <뉴욕의 맛 모모푸쿠>를 옮길때, 큰 고민 없이 ‘라멘’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의도적으로 ‘라면’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한국에는 ‘라면’도 있다. 분식집에서 3,000원에 먹을 수 있다. 그것이야 말로 공업의 힘을 사람의 손으로 완성하는 음식이다. 안내에 의하면, 매장은 2월 29일까지만 영업을 할 것이란다. 그러고 보니 올해 윤달이 끼었다. 사실은 기대를 안 품는 게 훨씬 더 위험하다.
아.. 잇푸도는 다른 나라에 맞춰서 메뉴를 조정하는군요. 궁금증이 좀 풀리네요. 지난여름 여기에서 사케동을 시켰다가 반이상 남긴적이 있는데, 차가운 생연어에 뜨거운 수란같은 걸 곁들인 사케동이란 것이 나왔었어요. 일단 예상치못했던 비주얼에 엄청 당황했고 먹으면서도 대체 왜….라는 생각을 계속했는데 한국인들을 위해 비빔밥처럼 만들어주는 사려깊음….^^. 아. 질척질척했으니 비빔밥보단 스까듭밥쪽일텐데 시대를 앞서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