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교동] 라멘 지산-국물의 신기한 농도, 면과 조화
이왕 라멘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으니 좀 더 써보자. 이번엔 서교동의 라멘 지산이다. 참으로 신기했다. 어떤 재료를 쓰면 이런 농도, 또는 점도가 나올 수 있을까. 원하는 맛을 내려 재료는 달리 선택할 수 있지만, 걸쭉함 등 국물의 감촉은 지방과 젤라틴이 책임진다. 지방이야 그렇고 단백질인 젤라틴은 껍질, 연골 등을 끓여, 콜라겐을 분해시켜 얻는다. 그래서 일종의 편법이지만, 가공된 젤라틴만 따로 섞어 걸쭉함을 주는 방법도 얼마든지 쓸 수 있다. 가루든 판형이든, 쉽게 살 수 있으니 시도해보시라.
어쨌든, 아주 걸쭉함(그래서超こってり?)을 추구한다는 지산의 국물은 그 외 요소의 힘을 빈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말하자면 전분이랄까. 지방과 콜라겐의 걸쭉함은 굵은 하나의 결이 흘러간다는 인상을 주는데, 이 국물은 가운데에 공간이 뚜렷하게 존재하는 가운데 위와 아래의 결을 느낄 수 있다. 나는 마치 팥죽을 먹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누군가는 미숫가루의 느낌이라고 했다. 후자가 더 정확하겠다. 이것은 최종적으로 국물에 더하는 으깬 지방의 역할과 확실히 별개의 것이다.
전분이든 뭐든 섞는 거야 기본적으로는 알 바 아니다. 문제는 면과 균형이 안 맞는다는 점. 6단계 가운데 3단계로 면을 익혀달라고 요청했는데, 그 익힌 정도의 정확함도 헤아려 봐야 하겠지만 그 이전에 국물에 면이 완전히 파묻혀 버린다. 설령 주문대로 정확하게, 칼 같이 삶았다고 해도 면의 형태-단면적-표면적의 설정상 국물과 어울리기가 어렵다. 국수 요리 세계 전체를 들여다 보면, 국물이나 소스가 걸쭉해질 수록 넙적하거나 굵은 면을 쓰는 경향이 있지 않던가?
한편 이러한 점도가 국물이 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국물이 짜다. 아니, 일본 라멘의 국물은 원래 짠맛과 감칠맛이 두드러지지 않던가? 맞다. 안 그러면 굉장히 느끼할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진한 돈코츠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짠맛을 느끼는 정도가 온도와 농도, 농도를 일궈내는 재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국물의 물성과 간을 한 정도가 잘 들어 맞는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9,000원대에 라멘+사이드(가라아게 또는 교자)를 먹을 수 있다는 건 누군가에게 매력일 수 있겠으나, 그 사이드의 디테일은 라면보다도 떨어진다. 계란도 마찬가지. 짠맛과 젤리화된 노른자의 질감을 감안하면 간장 양념에 오래 담가두어 필요 이상으로 침투했다는 걸 알 수 있다(그 이전에 이미 과조리한 듯?). 이래저래 추구하는 바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적당한 가격대의 끼니를 그 근방에서 찾는다면 선택지일 수도 있겠지만, “라멘™”을 찾는다면 딱히 매력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