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교동] 라멘 지산-국물의 신기한 농도, 면과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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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라멘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으니 좀 더 써보자. 이번엔 서교동의 라멘 지산이다. 참으로 신기했다. 어떤 재료를 쓰면 이런 농도, 또는 점도가 나올 수 있을까. 원하는 맛을 내려 재료는 달리 선택할 수 있지만, 걸쭉함 등 국물의 감촉은 지방과 젤라틴이 책임진다. 지방이야 그렇고 단백질인 젤라틴은 껍질, 연골 등을 끓여, 콜라겐을 분해시켜 얻는다. 그래서 일종의 편법이지만, 가공된 젤라틴만 따로 섞어 걸쭉함을 주는 방법도 얼마든지 쓸 수 있다. 가루든 판형이든, 쉽게 살 수 있으니 시도해보시라.

어쨌든, 아주 걸쭉함(그래서超こってり?)을 추구한다는 지산의 국물은 그 외 요소의 힘을 빈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말하자면 전분이랄까. 지방과 콜라겐의 걸쭉함은 굵은 하나의 결이 흘러간다는 인상을 주는데, 이 국물은 가운데에 공간이 뚜렷하게 존재하는 가운데 위와 아래의 결을 느낄 수 있다. 나는 마치 팥죽을 먹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누군가는 미숫가루의 느낌이라고 했다. 후자가 더 정확하겠다. 이것은 최종적으로 국물에 더하는 으깬 지방의 역할과 확실히 별개의 것이다.

IMG_0846전분이든 뭐든 섞는 거야 기본적으로는 알 바 아니다. 문제는 면과 균형이 안 맞는다는 점. 6단계 가운데 3단계로 면을 익혀달라고 요청했는데, 그 익힌 정도의 정확함도 헤아려 봐야 하겠지만 그 이전에 국물에 면이 완전히 파묻혀 버린다. 설령 주문대로 정확하게, 칼 같이 삶았다고 해도 면의 형태-단면적-표면적의 설정상 국물과 어울리기가 어렵다. 국수 요리 세계 전체를 들여다 보면, 국물이나 소스가 걸쭉해질 수록 넙적하거나 굵은 면을 쓰는 경향이 있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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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러한 점도가 국물이 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국물이 짜다. 아니, 일본 라멘의 국물은 원래 짠맛과 감칠맛이 두드러지지 않던가? 맞다. 안 그러면 굉장히 느끼할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진한 돈코츠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짠맛을 느끼는 정도가 온도와 농도, 농도를 일궈내는 재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국물의 물성과 간을 한 정도가 잘 들어 맞는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9,000원대에 라멘+사이드(가라아게 또는 교자)를 먹을 수 있다는 건 누군가에게 매력일 수 있겠으나, 그 사이드의 디테일은 라면보다도 떨어진다. 계란도 마찬가지. 짠맛과 젤리화된 노른자의 질감을 감안하면 간장 양념에 오래 담가두어 필요 이상으로 침투했다는 걸 알 수 있다(그 이전에 이미 과조리한 듯?). 이래저래 추구하는 바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적당한 가격대의 끼니를 그 근방에서 찾는다면 선택지일 수도 있겠지만, “라멘™”을 찾는다면 딱히 매력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