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이동] 봉피양-현대화의 노력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2회차 관람을 위해 천호동 아이맥스에 처음 가보았다. 그 김에 봉피양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곳의 갈비를 먹을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한다. 정확하게는 ‘모순’이라 칭하는 게 맞을 것이다. 생각해보라. 굳이 직화로 내 눈 앞에서 숯불로 구워 먹어야 한다. 그래서 뼈 사이의 살을 얇게 저미고, 그것도 모자라 칼집을 넣는다. 갈비는 동물의 몸통을 이루는 뼈의 모임이다. 안에는 온갖 소화 및 호흡 기관이 들어 있다. 이들이 움직임에 따라 뼈와 붙어 있는 근육도 함께 움직인다. 따라서 갈비는 원칙적으로 그다지 부드럽지 않다. 여기에 칼의 손길을 불어 넣는다. 섬세하고 기술적이며 극복을 위한 손길이다. 부위의 선택 자체가 최선이 아니라고 믿지만, 이 극복의 시도까지 폄하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다음 단계에 이르면 적극적으로 좌절한다. 뜨거운 숯불을 올리지만 고기가 적극적으로 조리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갈비는 이미 얇게 저몄으니 과조리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단맛이 두드러지는 양념에 재웠다. 캐러멜화가 일어날 가능성도 아주 높다. 이 두 가능성을 원천봉쇄한다. 그럼 겉은 적극적으로 익지 않지만 속은 과조리 되어 뻣뻣해진다. 이 둘을 간신히 피할 수 있는 최적의 지점이 사실은 존재하지만 그 시점에서 젓가락을 가져가면 종업원으로부터 지청구를 듣는다. 왜 허락도 없이 먹느냐는 이야기를 듣는다. 가위로 조각낸 다음 한데 모아 볶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그 시점에 나는 그냥 포기하고 만다. 이 거대한 습관의 파도를 헤칠 여력이 남지 않는다. 그러나 고기의 질감은 입에 남는다. 분명히 과조리되었지만 씹기 어렵지는 않다. 다만 겉은 양념과 근섬유 원래의 결로 인해 미끈거리고, 속은 푸석하다. 이래도 저래도 맛이 아주 없다고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한식의 맛’ 사이에서만 평가한다면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 맥락이 정확하게 설득력 있는 현실은 아니잖는가.
한편 김치도 꼭 시켜 먹어 본다. 그래봐야 한 접시에 3,000원이다. 기본 식사류가 10,000원 넘는 여건에서 이걸 먹을 결심을 못 한다면 사실 여기를 굳이 찾아올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한다. 유료 김치를 내놓는 설정 자체에 업소의 비전이 서려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3,000원이면 그 비전을 존중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나 느낀다. 이 김치는 비전 만큼의 맛이 없다. 궁극적으로 염장과 발효가 기본인 음식에서 둘의 맛을 의도적으로 피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분명 절었으되 간도 두드러지지 않고 발효 특유의 깊은 맛도 나지 않는다. 김치 또한 갈비와 마찬가지로 고도의 기술적 손길이 개입한다. 하지만 이 경우는 극복보다 회피로 보는 것이 맞다. 장고 끝에 둔 악수랄까. 그러니까 이 김치가 봉피양에서 내놓는 음식의 맛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 그게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실은 다른 반찬도 마찬가지다.
냉면은 맛배기(약 절반, 8,000원)으로만 시켰는데, 그 자체만으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일단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우래옥과 비교하게 된다. 큰 줄기는 ‘현대화’다. 우래옥에서는 양 지점 모두 고기를 먹을 경우 마무리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메뉴를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하나를 시켜 절반으로 나눠달라 요청할 수 있는데, 몇 천원 아낄 수 있으니 얼핏 좋다고 여길 수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반 그릇에도 충분히 구현 가능한 냉면의 완결성이 완전히 깨진 채로 나오기 때문이다. 주방에서 관여를 하지 않기 때문. 본점은 그걸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나눠 달라고 요청하면 창가 ‘라지에타’ 옆의 스테이션에서 종업원이 그릇에 옮겨 담는다. 강남점은 공간이 달라 확인은 어렵지만, 나오는 모양새를 보면 확신할 수 있다. 평양냉면은 어떻게 만드는가. 반죽을 압출해 삶고 찬물에 헹궈 전분기를 걷어낸 다음 물기를 털고 또아리를 틀어 사발에 올리고 국물을 붓고 고명을 얹는다. 그 모양새 자체는 물론, 말려 있는 면의 안쪽에 품고 있는 냉기도 모두 완결성의 요소다. 이걸 지키지 못할 정도로 면의 양이 적다거나, 우래옥의 주방 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필요를 못 느끼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점 때문에 우래옥이 슬슬 물린다.
맛에서도 그걸 느낄 수 있다.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일주일 안쪽으로 우래옥과 봉피양에서 냉면을 먹었다. 이런 경우라면 평소에 품고 있던 특정 음식에 대한 인상과 더불어 개별 방문시의 맛이 굉장히 또렷하게 남아 다음 음식을 먹는데 영향을 미친다. 글을 써서 언급했지만 지난 주 우래옥의 냉면은 실망스러웠다. 모든 반찬에서 공통적으로 지나치게 강한 마늘의 매운맛과 더불어, 요즘 우래옥의 음식은 너무 거칠다. 그리고 그 거칠음의 방식이 구시대적이다. 조미료 등의 요소를 적절한 지점에서 통제하지 못해 생기는 거칠음이다.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요리의 주체가 미각을 잃어가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균형의 상실 같다.
한식의 현대화. 과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형식의 현대화다. 더 효율적이고 개인적인 식사를 위한 형식을 갖출 수 있는가. 1인의 식사가 확실하고 편한하게 보장받는 형식 말이다. 다른 과제는 당연히 맛의 현대화다. 발효 장류 위주의 맛내기를 버려야 하는가? 정확히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이유와 논리를 파악해야 한다. 왜 굳이 그런 식으로 장류를 혼합해 재료와 결합하는가. 핵심은 균형이다. 그런 조합이 기본적인 다섯 가지 맛의 균형을 보장해주는가? 아니라면 다듬어줘야 한다. 패턴을 보자면 매운맛과 단맛을 줄이고, 짠맛과 감칠맛을 한데 묶어 조정하며 신맛은 원천을 바꿔 표정을 좀 더 세련되게 다듬어야 한다.
냉면으로 다시 돌아와서, 어제 유난히 이 국물의 균형이 두드러져 보였다. 현재의 한식에서 기대할 수 있는 현대화의 최선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본 다섯 가지 맛의 균형이 잘 맞는다. 온도도 적절하고, 독립적으로 잘 뽑아 삶은 면과 결도 잘 묻어난다. 진짜 중요한 건 사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누가 이런 맛을 주도하는가. 좀 더 정확하게는, 어떤 시스템이 이런 맛을 목표로 삼아 추구하는가. 이것은 유료 김치나 수비드 제육처럼 계속해서 벽제갈비-봉피양이 꾀하는 새로운 시도의 산물은 아닐까. 오늘 불현듯 그렇게 느끼는 것이냐고? 아니다. 다만 이러한 시도가 쌓여 일궈낸 격차가 이제서는 두 음식점을 굉장히 다른 좌표 위에 올려놓았다는 걸 새삼 확인했다는 말이다. 늘 말하지만 현재 유통되는 한식에서 변할 수 없는 전통을 말하는 건 무의미하다. 통째로 흔들어 바꿔야 할 것도 있고, 거의 모든 것이 미세조정의 과업에서 전혀 자유롭지 않다.
마지막으로, 이후에 자세히 글을 쓰려고 기획 중이지만 미슐랭이 내년-내후년에 한국에 들어온다고 한다. 그럼 한국의 맥락에서 맞춰 그 안에서 기준을 세우고 별을 줄 것이다. 선택은 나와 상관이 없겠지만, 이 두 음식점을 한식의 표상으로 삼아 별을 준다고 생각해보자. 어디가 별을 받게 될까. 만약 둘 다 받는다면, 더 높은 평가를 받을 곳은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