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 다이닝) 젓가락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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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또는 ‘콘템포러리’를 뼈대로 삼는 레스토랑 몇 군데에서 불편한 젓가락을 발견했다. 디자인은 좋지만 편하게 움직일 수가 없는 것. 문제의 핵심은 무게의 배분이었다. 아랫쪽이 다른 소재로 되어 있어 무거운 데다가 가운데가 불룩한 원형 단면. 아랫쪽으로 쏠리는 한편 손놀림이 자유롭지 못하다. 거기에 끝이 뾰족하니 ‘차라리 찔러 먹으라고 만든 것인가’라고 고민마저 해보았다. 작고 정교하게, 만들다시피 한 아뮤즈가 쭉 나왔는데 집어 들기가 너무 힘들었다. 직원과 ‘아하하 제 젓가락질이 정석이 아니라 그런가봐요 아하하하하’라고 너스레를 떨었는데, 얼마 뒤 다른 레스토랑에서 또 발견했다. 이번에도 운신의 폭이 영 좁아서, 고민 끝에 물어보니 포르투갈 브랜드 큐티폴의 제품이라고. 그러고 보니 낯익은 디자인이다. 예쁘고 굳이 따지자면 좋아하는 취향의 디자인인데 쓰기에는 불편하다. 젓가락을 만나기 이전에는 나이프가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손잡이가 가늘고 둥근데 그보다 가는 목에 짧고 얇은 날이 달려 있다. 조금이라도 힘을 줘야 하는 재료를 썰면 날이 옆으로 쓰러진다.

불편함보다 이런 젓가락을 채택하는 사정이 궁금해 물어보니, 맞는 젓가락 찾기가 어렵다고. 불편함을 호소하는 손님이 꽤 있는지 다른 한식 젓가락으로 교체해주었는데, 그 또한 고민의 방증이었다. 놋 젓가락이니 당연히 생각의 산물이겠지만 확실히 무겁고, 식탁 전체의 그림에 잘 묻어나지는 않는다. 그래서 젓가락에 대한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예전 에서 언급한 노석학께서는 ‘젓가락에 열량 측정기 같은 걸  달자’ 등의 ‘디지로그’식 주장을 펼치지만, 난 젓가락의 제 일 과제가 그런 방향에 속해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단 기능과 미만 잘 다듬어도 충분하다. 게다가 그마저도 쉽지 않다. 딜레마다.

IMG_9640생각해보자. 여러 조건을 한꺼번에 충족시켜줘야 한다. 젓가락이 무거우면 불편하지만 가볍다고 무작정 좋은 건 아니다. 도구는 무게중심이 맞아야 쓰기 편하다. 자체의 무게가 중요하지만, 그만큼 배분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금속이 무겁다고 속을 비우거나, 덮어놓고 나무로 간다고 좋은 게 아니라는 말이다. 특히 나무 재질은 집에서 혼자 쓰기엔 좋을 수 있지만 레스토랑처럼 회전이 잦은 곳에서는 유지관리가 어렵다. 마감이 벗겨지거나 쪽이 조금만 떨어져 나가도 손님 앞에 내놓을 수 없다. 미관도 문제지만 위생이 더 걸린다. 따라서 손실이 클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위에 디자인의 문제가 있다. 그림과 맥락에 잘 묻어날 것인가. 한국식 고급이라는 것이 분명 존재한다. 조금만 검색해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장식 없고 현대적인 것을 추구하는 취향에 들어 맞을 것인가. 완전히 다른 문제다. 금전적 가치를 디자인에 구현할 때 가장 티나는 방식이 장식이다. 이런 방향으로 압도적인 디자인의 물건을 볼 때마다 시대와 세대의 간극에 대해 생각한다. 이런 물건의 디자인이 현대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수동 수제화 골목 등을 지나치면서 쇼윈도를 통해 보는 구두에서 세월을 느끼는 이유와 같을까.

IMG_8734이 모두를 만족시키는 젓가락이 있다고 해도,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의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젓가락의 교체 타이밍이 최종 과제다. 젓가락을 내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는 공통점이 있다. 음식을 코스로 내더라도 젓가락을 바꿔주지 않는다. 숟가락이 나온다면 그도 마찬가지. 심지어 정식당처럼 포크와 나이프까지 다 내는 경우에는 더더욱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코스별로 다 바꿔주는 가운데 젓가락 만큼은 그대로 둔다. 이를 어떤 논리로 정당화할 수 있을까. 사실 나는 굳이 젓가락을 힘들여 따로 낼 필요가 없다고 믿는다. 다시 예전 글을 참조하자면, 파인 다이닝 음식은 손님이 최소한의 노력으로 먹을 수 있도록 손질하는 것을 전제로 삼는다. 어쩌면 포크와 나이프로 먹는 게 더 편할 수 있다. 그러나 의외로 젓가락이 식탁을 계속 지키는 경우를 종종 만난다. 다음 요리를 기다리며 이전 요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젓가락을 바라보는 건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구색을 맞춰 갖추는 경우라면 다른 식기에 비해 젓가락만 엄청나게 비쌀 가능성은 적은데, 이 또한 바꿔 줄 수는 없는 걸까?

이런 제스쳐를 나는 한국 음식 문화에 놓인 몇 갈래 균열의 상징으로 이해한다. 한식과 양식, 레스토랑/셰프의 의지와 손님을 향한 배려 등에서부터 더 나아가 근대와 현대 사이의 균열 말이다. 이런 갈등이라면 난 손님 편을 들고 싶은 생각이 없다. 만일 레스토랑에서는 젓가락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데 손님에게 맞춰 주기 위한 시도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해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양식의 맥락 위에 놓인, 교체 안되는 젓가락은 꽤나 엉거주춤하다. 이런 측면의 고민은 레스토랑이 좀 덜 할 필요가 있다. 

1 Response

  1. 김유진 says:

    그러게요, 한식 (코스 요리 ) 식당 에서도, 젖가락을 바꾸어 준다면 좋겠네요.
    외국 식당에서 식기류를 세팅해주는 것 처럼요.
    전 물티슈 등으로 닦아 먹거든요.
    한식은 코스여도 ,한상차림 이다 라는 습관 땜에 그런가봐요.
    곰곰히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네요.
    하다못해 ,집에서 식사대접 할때도 해당 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