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이단분리’ 디저트 구축의 논리와 출구 전략
올리브 매거진 12월호에는 디저트 옴니버스 리뷰가 실린다. 8월의 평양냉면과 비슷한 접근이지만, 한 번 더 추려 낸다는 점에서 또 다르다. 평양냉면보다는 폭이 훨씬 더 넓으므로 언급할 가치가 없는 것을 솎아 내는 작업을 한 다음 지면에 실었다는 말이다. 그를 위해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약 20군데를 다니며 디저트를 집중적으로 먹었다. 그 가운데 최근 문을 연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의 디저트에 대해 살펴보자.
때마침 점심시간이라 지하 1층의 델리-다른 명칭을 붙여 놓았지만 콘셉트는 그렇게 보는 것이-에서 간단히 먹었다. 베트남 치킨 샐러드를 선택했는데 모든 요소의 디테일이 잘 살아 있어서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닭가슴살은 국내 어디에서도 본 적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러웠고, 기타 채소의 신선도나 손질 상태 등등도 모두 좋았다. 심지어 쌀국수 익힌 정도까지. 말하자면 디저트의 전주곡으로 좋았달까.
디저트는 1층 로비 옆에 자리잡고 있는데, 가장 먼저 구성 방식이 눈에 들어왔다. 신세계 본점 페이야드에 안 간지가 꽤 오래인데(이 글을 쓴 다음에도 갔다. 2-3년 전?), 제품군 거의 모두가 프티 가토를 위장한 타르트라 놀랐던 기억이 선하다. 똑같이 작고 예뻐 보일 수 있지만 둘은 꽤 다르다. 타르트는 바닥(크러스트)과 나머지 부분이 완전히 분리된다. 먼저 크러스트를 굽고 속을 채워 완성하는 경우도 있고, 아예 크러스트만 굽고 나머지 재료는 따로 만들어 최종적으로 합쳐(assemble) 만들 수 있다. 말하자면 만드는 과정에서 실패 가능성을 틀(반구형 bombe 또는 사각/원의 틀 mold)에 채워 만드는 것보다 줄일 수 있다. 또한 맛의 어우러짐에 대해서도 다른 결과를 낳는다. 예를 들어 당시 페이야드의 타트르 타탕은 크러스트와 통사과를 각각 따로 익혀 마지막에 합치는 방식이었다. 보기엔 좋아보일 수 있지만, 사과를 캐러멜에 조린 다음 크러스트를 얹어 함께 구워 마무리하는 것에 비해서는 맛이 떨어진다.
굳이 페이야드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이유는, 포시즌스 호텔의 디저트가 대부분 같은 논리로 구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바닥과 윗판이 따로 존재하고, 이를 다소 현란한 장식으로 가린다. 심지어 반구형 틀에 만든 것도 자세히 보면 바닥판은 따로 만들어 마지막에 붙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엄청난 문제인가? 그렇지는 않다. 다만 전략 선택의 논리가 궁금하다. 맛. 그렇다, 맛은 좋았다. ‘(지방+단맛)+(주로 이국적)과일의 신맛’ 조합을 거의 대부분 충실하게 따른다. ‘빼어나다/곧 다시 와서 다른 것도 먹어 보고 싶다’의 좋음은 아니지만 앉은 자리에서 불만 없이 즐겁게 먹을 정도로는 무리 없었다. 아몬드 유자 타르트의 크러스트가 딱딱해 옥의 티였지만(포크로 힘줘 쪼개야 한다면 그건 막말로 불합격이다), 베린(Verrine)에 담긴 무스류의 질감은 맺힌 구석 하나 없이 매끈했다. 커피 또한 온도와 맛 모두 좋았다. 모두를 감안한다면? 소위 ‘Wow factor’는 없지만 현상유지를 한다는 전제 아래, 워낙 불모지인 이 근방에서 커피와 디저트 생각이 날 때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현상유지. 그것이 결국 디저트 구성의 전반적 논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아닐까. 먹고 나오는데 계산대의 직원 왈, 현재 벨기에에서 온 파티셰가 운영하고 있다고. 체류가 일시적인지, 또는 영구적인 것인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원인이 무엇이든, 이러한 구축 전략 일종의 출구전략을 상정해 구현한 결과로 보였다. 해외의 전문 인력이 없어지는 상황일 수도 있다. 또한 현재 상태로도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재료, 현지 인력 등의 현실로 미리 보정한 것일 수도 있다. 간단히 말해, 어떠한 이유로든 핵심 인력이 빠지더라도 최대한 손실 없이 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좇은 결과 아니냐는 것. 더 간단히 말하자면 꼼수를 좀 부렸달까.
‘이단분리’의 구성보다 나는 언제나 현란한 장식이 더 싫다. ‘장식은 죄악’이라는 논리를 펼치려는 것이 아니다. 인위적인 조작이 거의 무한정 가능한 디저트에서 장식을 음미하는 것도 즐거움이다. 하지만 저런 장식은 언제나 1. 그다지 기술적이지 않다. 가만 보면 ‘질보다 양’의 논리로 그저 가릴 뿐이다. 2. 그런 가운데 총체적인 맛의 경험에 보탬이 별로 안 된다. 대체 언제까지 멀쩡한 케이크류에 생과일, 더 나아가 그 자체로 완성품인 마카롱-게다가 수분을 흡수하면 질감은 곧 나빠지고!-을 올릴 것인가. 이 모든 것이 결국 비용에 포함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한국 디저트 세계는 좀 더 고민을 해야 한다. 이런 장식 없이도 디저트는 훌륭할 수 있다.
불필요한 장식이 없어도 디저트는 훌륭할 수 있다는 부분에 특히 공감이 가네요. 마카롱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요즘은 마카롱이 너무 막 취급을 받는다는 생각도 들고요. 매번 조용히 읽고 가다가 댓글 남겨봅니다.
네, 마카롱에게 지옥 같은 현실입니다. 저런 디저트에 마카롱을 대체 왜 올리는 걸까요.
우와 너무 재미있게 잘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