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의 맛없음

IMG_9361나는 맛없음을 말하고 공분을 사는 존재인가? ‘홍대 권역 음식점 가운데 90%가 맛없다’고 말했더니 인근 주민과 홍대지역 애호인으로 보이는 이가 분노했다고 한다. 심지어 백종원에 대한 내 아이즈 글을 들먹이며 ‘그럼 빽다방이나 가라’는 의견을 피력하셨다. 근데 정말, 요즘의 홍대는 대체 어떤 지역이 되었나. 심지어 ‘월미도화 된 것 같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공감한다. 프랜차이즈의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고, 남은 자영업의 수준도 애초에 높다고 할 수 없었다. 그 가운데 정말 기술을 지니고 분투하는 곳이 10%라는 말이다. 이는 90%에 대한 비판도 되지만, 뒤집어 말하면 10%에 대한 찬사도 될 수 있다. 2-3주에 한 번 나가도 눈에 띄게 바뀐 걸 확인할 수 있는 홍대의 지평을 부정하겠다는 건가? 3,000원이 넘는 자체 로스팅한 커피가 정말 1,500원짜리 싸구려 프랜차이즈보다 맛이 없다면 그건 무슨 의미인가? 애초에 다른 세계에 존재해야 할 것들이 비교당하고 있다면 그건 누구의 책임인가? ‘싼 식사류-프랜차이즈의 맥락 안에서 좋다’고 말한 걸 마치 전체 음식의 순위 안에서 그렇다고 주장한 양 받아들인다면 그건 당사자의 문해력 문제가 아닌가?

어쨌든, 홍대 상인과 인근 주민에게 그렇게 미움을 산다. 어디 그뿐인가. 우유가 맛없다는 이야기는 백만 년 동안 했으니 어디에선가 젖소들이 린치를 위한 조직을 육성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이번엔 계란이다. 나는 닭에게 미움을 살 각오로 글을 쓴다. 오늘 아침, 삶아 먹고 너무 맛이 없어 눈물을 흘렸다. 닭의 노력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얼마나 힘들게 알을 낳는지 안다. 그렇기에 더 눈물이 난다. 너무나도 헛된 고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즘 계란의 사연은 이렇다. 나의 평소 계란은 풀무원 목초란 60g(가식부 54g)짜리다. 그냥 아무 거나 집어와 타협한 결과는 절대 아니다. 이것저것 먹어보았다. 백화점에서 파는 소규모 브랜드도 한 번씩 먹어 보았고, 새벽란이니 하는 당일 납품 계란도 먹어 보았다. 풀무원에서도 온라인이나 올가 매장에서나 살 수 있는 유정란 등등까지 먹어 보았다. 거의 대부분 가격과 맛의 품질이 연결되지 않는다. 닭 바로 옆에 대기하고 있다가 나온 걸 받아 유통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싱싱하지만 맛이 없는 경우도 많다.

또한 많은 계란이 상품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수준까지 작다. 50g 초반으로만 내려가도 그냥 먹는 건 물론, 제과 등에서 비율을 맞추기가 어려워진다(물론 나는 레시피에 의존하는 아마추어니 프로들의 사정은 다를 수도 있다. 가공을 통해 ‘전란액’등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또한 다를 것이다). ‘초란’같은 딱지를 붙이더라도 40g대는 의미가 없다. 38g까지 본 기억이 난다. 그래서 풀무원 목초란에 정착했지만, 이마저도 아무데서나 살 수 있지 않다. 같은 포장으로 무게가 다른 계란을 담아 팔기 때문이다. 물론 딱지를 확인하면 금방 알 수 있지만, 구입처는 확실히 갈린다. 이마트에는 있고 홈플러스에는 거의 없다. 좀 큰 규모의 일반 마트에는 종종 있다. 하지만 이를 찾아 다니는 노력마저도 그다지 보람찬 건 아니다. 계란 자체가 크더라도 노른자는 큰 차이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IMG_9362이렇게 매일 먹으면서도 고민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실무자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온라인에서 파는 풀무원의 ‘루테인 담은 달걀’이 맛있다는 것. 바로 다음날 온라인을 뒤져 주문했다. 10개에 4,900원. 비싸지는 않다. 이틀인가 기다려 충북 음성에서 올라오는 걸 받았는데, 맛은 확실히 좋았다. 한마디로 대부분 계란의 노른자 색깔이 말해주는 것처럼 창백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산란일자를 거의 열흘 넘긴 시점에서 배송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탓인지 흰자에 힘이 전혀 없었다. 깨자마자 켜가 생기지 않고 주저앉아 버리는 수준. 삶았을때 노른자와 닿는 부분이 물컹거리면서 부스러지는 것으로 보아, 신선도는 물론 물성 자체가 좋지 않은, 즉 묽은 흰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맛도 맛이지만, 계란은 우유와 더불어 다른 음식, 특히 제과류의 얼개를 이루는 식재료다. 물성이 나쁘면 소위 결집력(binding power)이 떨어지고, 질감 등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주문한 한 판을 다 먹을 무렵, 고민했다. 다시 주문해야 하나. 어려운 일은 아니다. 또한 아주 비싸다고도 볼 수 없다. 하지만 결국은 일일 신선 식품이자 파손이 쉬운 계란까지 택배로 주문해서 먹어야 하는 이 현실이 너무나 거추장스러웠다. 그래서 일단 주문질을 멈추고 다시 풀무원 목초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오늘 아침, 나는 계란의 맛없음에 좌절했다.

우유나 계란 같은 식재료의 맛없음에 더 주목하고 또 좌절하는 이유는, 위에서 언급했듯 신선식품이면서도 다른 음식의 바탕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런 식재료가 맛없으면 다른 열, 백가지의 식품이 맛없어진다. 밀가루는 어떤가. 좋다고 말하기 어렵다. 결국 이 세 가지 재료를 다 쓰는 제과제빵류는 시작부터 핸디캡을 안고 가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나도 잘 모르겠다. 기본 가운데 기본이 되는 재료의 맛없음은 결국 시스템의 문제라 본다. 분석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하지만 두 가지는 확실하다. 기본 재료의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한 음식의 맛없음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거라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일은 결국 일이지만, 이런 종류의 식재료 생산이 일의 영역에만 철저하게 머문다면, 또한 극적인 개선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계란의 맛없음을 불평해서 닭 린치단이 출범해 찾아 온다면, 일단 좀 술이나 한 잔 마시자고 권하고 싶다. 한 잔 마시고 맞겠다는 말이다. 이왕이면 올때 소 린치단도 데려오라. 같이 술 마시고 한 번에 다 맞겠다. 크림 브륄레 만들어 놓고 기다리겠다. 수탉과 숫소는 사양하겠다. 나는 실무자만 만난다. 

*사족: 흰 달걀이 더 맛있지 않다는 이야기는 할 필요도 없겠지만, 혹시 요즘도 그런 도시전설을 퍼뜨리는 혹세무민의 대가가 있을까 노파심에 링크를 덧붙인다. 요즘은 그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막 퍼뜨리고 다니는 이들을 보면 혹 영어를 못해서 그런건 아닌가 생각한다. 정보는 이미 다 존재한다. 우리가 모르는 것일 뿐. 하긴, 삶은 계란 노른자 주위가 퍼래지는 것이 GMO 탓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도 최근 등장하지 않았던가? GMO가 무엇인지 이해할 지력도 없으면서 선동한다면 곤란하다.

 

 

3 Responses

  1. ff says:

    계란공장에서 직접 사셔서 드셔보세요. 싸고 크고 신선한 계란을 맛볼 수 있답니다;; 물론 서울에선 어려울듯 하네요

    • 남자라면FR says:

      싸고 비싸고 말고, 크고 작고 말고, 신선하고 아니고 말고, 맛이 있냐고 얘기하는데;;;

      공장에서만 제맛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시스템의 약점을 말하면서도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거구요.

      맛있고 적당한 크기의 계란을 신선하게 공급받는다면 제 값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

      말의 이해가 어려운 것이 아닌데도 이를 문제로 여기지 않으니 해결도 안되는 것이겠지요.

  2. Real_Blue says:

    루테인계란 사 드셨군요 ^^ 말씀 드린데로 노른자는 괜찮은데 흰자가 문제인 계란이죠

    말씀하신데로 흰계란이 꼭 맛이있는건 아니죠. 일본이나 프랑스에서도 최고급 계란들은 갈색 계란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링크 거신 글에서 처럼 사료값 절감이 나름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조금더 좋은 사료를 먹일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을까 해서요…) 그리고 난황의 비율이 백란이 높다는

    글을 읽은적이 있고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그렇다고 생각되는데 이건 틀린건가요? 일본의 제과이론

    서적에서도 동일한 내용이 있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만… 제가 읽은건 아니라 모르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