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현대백화점 식품관 ‘스피드 런’ 후기
약 2주 되었는데 이제서야 쓴다. 말 그대로 ‘스피드 런’이었다. 오랜만에 근처에서 일을 보았는데, 마치고 나니 둘러 볼 수 있는 시간이 채 한 시간도 남지 않은 것. 식품 매장은 아예 발도 못 들여보고 이털리를 비롯, 식당가를 종종 걸음으로 돌며 관심 가는 것을 정말먹거나 샀다. 그렇게 듣기는 했지만 정말 엄청나게 컸다. 백화점의 그것이라기보다 각 브랜드의 팔, 또는 다리가 한데 모이는 지점인 미국식 쇼핑몰의 식당가 같았다(예를 들자면 이런). 규모가 이 정도로 커지면 특정한 목적 없는 방문이 훨씬 편해진다. 서울 시내의 백화점들처럼 무엇인가를 사러 왔다가 밥을 한 끼 먹는다거나, 단지 특정 코너를 ‘찍고’ 가는 이상의 목표 설정히 가능해진다는 말이다. 영화관도 딸렸겠다… 여기까지 생각해보면 규모가 크기는 해도 결국 미국식의 몰을 대지에 맞춰 적당히 접어 수직으로 쌓아 올렸다는 생각.
물론 이런 장소가 처음인 건 아니다. 타임스퀘어도 있고, 망해간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코엑스몰도 있다(나 역시 재개장 이후 가보지 않았다). 따라서 차이는 입점한 브랜드에서 온다고 보는데… 다 못 돌아보았지만 결국은 2:8의 법칙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공간을 채울때 새로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2:8만 되면 양호하고, 또한 거기에서 변화의 원동력이 될만한 게 나온다면 다행이라는 말이다. 물론 사람마다 입장이 다르겠지만, 나라면 거기에 가서 굳이 코코브루니 케이크를 먹고 공차를 마실 이유가 없다. 또한 다른 음식-특히 만두 같은 종류-도 기존의 브랜드라면 이름이 달라도 맛은 너무나도 비슷한 경우가 많다. 그보다는 지금까지와 다른 철학으로 다른 맛을 만들어 내는 존재가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소비자에게 차이점을 각인시켜 줄 수 있어야 변화할 수 있다.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브랜드 가운데 현대 판교점의 핵심은 이털리(Eataly)일 수 밖에 없다. 독립 공간처럼 늦게(10시)까지 연다는 걸 잘 몰라서 음식을 먹어보지는 못했지만 사들고 온 생파스타나 빵은 괜찮았다. 둘 다 어떻게든 만들 수는 있지만, 나는 특별한 목적이 없다면 이런 음식은 이제 더 이상 집에서 만들어 먹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흉내만 내는 이상의 수준으로 만들려면 시행착오를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 및 무형자산을 갈고 닦아야 되는데, 본질적으로 그게 가능한 여건도 아니다. 그렇다고 직업 세계의 수준에서 빵이나 파스타가 도전 불가능한 미션이냐면… 어제도 조리의 개념에 대해 이야기했듯, 국수는 전 세계적으로 먹는 음식이고 한국에서 6,000원 내고 먹는 칼국수나 이런 생 파스타 면은 크게 다르지도 않다. 밀가루 반죽에 물을 섞어 치대어 글루텐을 발달시킨 뒤 납작하게 펴 썰어 삶아서 먹는다. 다만 조금 다른 성질의 밀을 쓰는 등 ‘이것이 원래 우리나라의 음식이 아니었다’라는 심리적 장벽이 존재한달까.
그래서 관건은 1. 일견 달라 보이지만 원리는 같다는 것, 2. 현재의 문제는 그 ‘다름’보다 같은 원리를 적용할 때 이해도나 세부사항의 준수 쪽을 들여다보고 개선해야 된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게 2:8에서 2의 존재가 맡아야 할 역할이라 본다. 재료, 기기 등도 물론 중요하고 개선이 필요하지만 현재 정확하게 그것이 없기 때문에 음식이 안 된다고 보지는 않는다. 수입산 밀가루 들여다가 맛없는 빵을 만드는 곳이 부지기수고(이런 곳), 실제로는 흔한 생선이지만 애초에 낚시로는 잡지 않기 때문에 일식당에서 횟감으로 쓸 수 없다는 말을 들으면 아직도 많은 문제가 ‘멘탈리티’의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부러 외국에서 들여오는 것들이 바꿔야 할 영역도 결국 그쪽이다. 노파심에서 사족을 달자면, 이건 요즘 많이 나오는 ‘노오오오오력’ 담론과는 다르다. 시간 대비 쏟아 붓는 물리력의 양이나 밀도보다 사고-유연함의 영역에 속한다고 보는 게 맞다.
마지막으로 먹은 것들 한줄 평.
1. 아티장 베이커리: 궁금해서 먹어봤는데 별 감흥은 없었다… 죄송합니다…
2. Sarabeth’s Kitchen: 머핀과 마블 파운드 케이크 모두 조직/질감은 좋았으나 ‘옥수수 블루베리 머핀’의 옥수수가 콘밀(cornmeal)이 아닌, 반쯤 마른 스위트콘이라는데 좀 놀랐다. 꼬들꼬들해서 블루베리, 머핀 둘 다와 어울리지도 않는데 왜…
3. Venchi 젤라토: 흐르는 듯 보이지만 정확하게 흐르지는 않는 질감.
4. Caffe Vergnano: 젤라토와 함께 먹어서 정확한 인상은 기억나지 않는다.
5. 이털리의 시골빵: 이 정도의 신맛은 지방, 특히 버터 없으면 굉장히 두드러진다.
6. 이털리의 생면(탈리올리니/타야린): 내 솜씨로는 이렇게 얇고 가늘게 파스타를 뽑을 수 없는지라 반가운 마음에 사다 먹었다. 맛있는데 이거, 사실 사발면 면발과 꽤 비슷하다. 특히 저 먼 옛날의 삼양 컵라면…
저 Sarabeth’s kitchen은 뉴욕의 그것인가요? 오렌지 마멀레이드 같은 시그니쳐 프리저브를 제외하면 여기서도 지나치게 과대평가되고 있는 것 같은데… 암튼 신기하네요. 그럼 머핀이나 스콘의 기본 재료(=믹스)도 공수해서 오는 걸까요?
네 과대평가… 최소한 머핀과 파운드케이크 같기는 합니다. 비싸지도 않고요. 물어보니 여기에서 만든다는데 기본 재료는 한국에서 조달하지 않을까요?
Venchi가 들어왔나요? 거기 제품개발하는 양반이 아는 사람이라 꽤 반가운 느낌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잘 먹었어요.
저 콘브레드 정말 좋아하는데 (whole foods 나 딘앤델루카 같은 데서 랩으로 둘둘 감아 파는거요!) 보통은 옥수수 알갱이 넣은 걸 콘브레드라고 팔더라고요…:( 너무 먹고 싶어서 Quaker cornmeal 사서 구워 보기도 했는데 돌덩이 같은 게 나와서 ㅠㅠ
엇 그렇군요… 한국에서 아직 제가 콘밀을 못 찾았어요. 저도 무쇠 스킬렛에 굽는 콘밀 브레드 좋아하는데 못 먹은지 몇 년입니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