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목살 파테와 조리의 개념적 접근
가용자원이랄게 별로 없는 상황이다보니 음식의 인과관계가 거꾸로 가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도 그렇다. ‘파테가 있으니 브리오슈를 사먹자’가 되어야 맞을텐데 둘 다 없다. 그래서 만들어 먹어야 되는데 그 우선순위마저 뒤바뀐다. ‘파테를 만들었으니 브리오슈도 굽자’가 아니라 ‘브리오슈를 구웠으니 파테도 만들어야 겠다’가 되어 버린다. 그나마 빵을 더 자주 굽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욕구가 있어서 꾸역꾸역 만들기는 하지만 뭔가 웃긴다.
근데 만들어 놓고 나도 여전히 웃긴다. 스팸이랑 너무나도 비슷하기 때문.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에드워드 권의 한남동 레스토랑 더 스파이스에서 누군가 오소 부코를 받아 들고는 ‘그런데 왜 양식당에서 장조림을 먹느냐’와 흡사한 반응을 보였다고. 사실 맞다. 오소부코와 장조림의 기본 원리는 같으니까. 정육으로 먹기 어려운 부위를 은근히 오래 끓여 분해한다. 심지어 사태(장조림)와 정강이(오소부코, 요즘은 갈비가 대세)로 다리 부위를 쓰는 것조차 비슷하다. 물론 파고 들어가면 다른 점이 존재한다. 장조림은 지지지 않고 간장에, 오소부코는 지져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킨 다음 토마토 바탕에 조리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같은 원리와 개념으로 세부 표정만 다른 맛을 좇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요즘 (토마토 바탕) 스튜에 비밀 재료인양 태국 등지에서 들어온 액젓을 쓰는 것도, 원하는 맛의 개념과 원리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문화권 자체를 지레짐작해 장벽으로 삼지 않고 좀 더 큰 그림을 보는 것.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세상에서 그게 무한정 가능하기 때문이다.
오소부코를 보고 장조림을 연상할 수 있다면, 다른 문화권의 음식에서 원리와 개념적인 공통점을 찾아낼 이해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튀김은 같은 튀김이고, 볶음도 같은 볶음이다. 하지만 저 사례가 말해주듯, 공통점을 보려는 시도는 긍정에서 부정으로 흘러가기가 십상이다. 장조림과 오소부코의 비교는 ‘양식인데 특별하지 않다’는 의사 표현을 위해 쓰였다. 일상적이지 않은 자리에서 일상적이라 믿는 음식과 유사한 것이 나왔다는 게 불만인 것. ‘같은 원리인데 이미 검증된 이론 및 방법론을 통해 내 것을 보완 및 발전하는데 쓸 수는 없을까’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자칫 잘못하면 나의 (식)문화 그 자체가 특별하지 않음을 자인하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일까? 하지만 개념과 원리를 공유한다고 해서 한식이 하루아침에 양식이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 첫째, 지리, 기후 등 오만가지 요소들로 인해 다양한 표정을 불어넣을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무궁무진하게 존재한다. 둘째, 검증된 원리와 개념의 이해는 기본적인 완성도의 향상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의 발효가 서양의 발효에 비해 특히 더 신묘한 기운에 의해 김치를 익히는 건 아니잖는가. 따라서 나로서는 잘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만큼 음식에서 정서적인 가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것이리라.
그래서 이번에 스펨, 아니 파테를 만들면서는 마늘, 샬롯 같은 향신채의 사용과 조리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예전 글에서 언급했듯, 만두나 전에 입자가 굵은 마늘을 생으로 넣는 걸 바람직하게 보지 않는다. 조리시간 및 방법(길지 않은 간접조리)에 의해 단점(아리고 매운맛)을 감추고 장점(단맛)을 끄집어 낼 기회를 갖지 못하기 때문. 간 고기를 쓰는 등 파테도 개념적으로 전이나 만둣속과 비슷하다. 고기를 곤죽에 가까운 상태로 만들어 맛을 내는 부재료를 섞고 틀에 채워, 뜨거운 물이 담긴 팬에 담아 전체를 밀봉해 오븐에 굽는다. 말하자면 이중오븐을 통해 찌는 것. 다만 많은 양의 재료로 큰 덩어리를 속까지 익히기 위해 조리 시간이 긴데… 별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유난히 마늘 냄새가 거슬렸다는 말. 그럼 여러 가지로 경우의 수를 만들어 대안을 생각해본다.
1. 레시피의 문제: 기본적으로 재료의 양을 너무 많이 잡은 것인가? 이 경우라면 다음 번에 양을 줄이면 된다.
2. 재료의 문제: 마늘이 너무 아리고 맵다. 이 경우는 ‘마늘 먼저 익히기’라는 개념적 접근을 가지고 여러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 끓는 물이나 우유에 살짝 데친다.
- 으깨거나 간 것을 약한 불에 올려 기름에 볶는다. 이때 타지 않게 주의.
- 생마늘을 빼버리고 마늘가루를 쓴다.
- 완전히 다른 개념으로 이동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마늘을 통으로 콩피해서 단면에 채운다.
- 갈아 즙만 섞는다. 이게 최선 아닐까.
하루 종일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마늘은 일단 여기까지만. 원래 레시피에서는 쓰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돼지고기와 잘 어울리므로 생강의 쓰임새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다만 마늘과는 달리 갈거나 익히면 질감이 더 기분 나빠지므로 이 경우는 확실히 즙만 내서 더하는 편이 나을듯. 한편 파테의 기원도 남는 재료-고기 처리이므로 온갖 잡다한 것을 은근슬쩍 섞을 수 있다. 이번엔 냉장고에 먹고 남은 고수와 잣을 넣어보았는데, 전자야 풀이니까 괜찮지만 후자는 확실히 실패였다. 특유의 어색한 질감이 수분을 흡수하면 더 기분 나빠진다. 팥소에 호두나 잣을 넣을때의 결과와 똑같다.
처음 쓰기 시작할 때는 레시피까지 올릴 생각이었는데,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일단 여기까지만. 다음 주 목요일, 아니면 다음 만들때 이어 올리겠다.
파테 모양도 예쁘고 맛있어 보여요 ^^ 다음 번에는 마늘 어떻게 처리하실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