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공허한 젓가락 우월론

IMG_8174재미 없는 군대 이야기부터 해보자. 경험자가 아니라도 알겠지만 군대에서는 기본적으로 젓가락을 쓰지 않는다. 비실용적이기 때문. 그래서 포크숟가락을 쓴다. 밥도 국물도 모두 퍼먹는 음식이라 그런 것인지, 시중에 파는 것보다 조금 더 우묵하다. 모두가 기본적으로 이걸 써서 밥을 먹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소위 ‘짬밥’이 올라가면 선택권이 생긴다. 젓가락을 쓸 수 있다. 사실 간부들도 젓가락으로 밥을 먹기 때문에, 부대엔 어쨌든 젓가락이 있다. 그래서 병장쯤 되면 쓰는 인간들이 종종 있었다. 물론 나는 쓰지 않았다. 그것은 “군인정신™”이 아니기 때문. 생각해보라. 젓가락의 큰 단점은 짝을 맞춰야 한다는 것인다. 한 짝만 있으면 거의 무용지물이다. 전장에 나가서 젓가락 짝이나 맞추고 앉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젓가락이 없다고 밥을 안 먹을 것인가? 게다가 적어도 내가 관리하던 시절-1종 계원이었다-에는 굳이 젓가락까지 써가면서 먹어야 할 전투식량 같은 건 없었다(굳이 끼워넣을 맥락이 아니지만 이렇게 말도 안되는 군대-젓가락질의 관계를 말하는 기사가 있음은 짚고 넘어가야 되겠다).

젓가락이 그렇게 대단한가? 오랫동안 잊고 있다가 이어령 선생의 신문 인터뷰를 읽었다. 핵심은 젓가락의 우월함이다. 동양의 젓가락이 서양의 포크보다 우수하고, 특히 한국의 젓가락 문화가 한마디로 가장 지적이라는 것. 정확히 내 나이의 두 배인 노 석학의 혜안에 토를 다는 자체가 참으로 마음 편치 못한 일이지만, 나는 이런 주장을 접할 때마다 괴롭다. 오늘날 한국의 거의 모든 면에서 그런 가운데 특히 식문화 발달을 저해하는 결정적 원인이 민족주의고, 그 핵심에 저런 주장이 있기 때문. 한마디로 일단 ‘한국 짱’이고 그렇기 때문에 뭐든지 다 한국에서 나온 것이면 좋다. <디지로그>의 밥-반찬-비빔밥론이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먹는 이 스스로 맛을 선택할 수 있다, 색이 아름답다, 한데 융합하는 문화가 있다 등등. 아주 좁은 시야로 대상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그렇게 읽을 수도 있다. 특히 저 먼 옛날엔 그렇게 밖에 볼 수 없고, 그렇게 보지 않으면 안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2015년이다. 원치 않더라도 쏟아지는 정보 때문에 좁게 보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세상이다. 아주 조금만 시야를 넓혀도 젓가락 우월론이 근거 없다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젓가락 우월론의 근거 가운데 가장 많이 쓰는 것이 생선이다. ‘생선 가시를 잘 발라 먹으려면 젓가락이 필요하다. 이렇게까지 젓가락질을 잘 하는 건 세계에서 한국 밖에 없다’는 주장. 식탁에 오른 생선만 놓고 보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젓가락질을 하지 않으면 생선을 먹기 힘든 식문화 그 자체다.  왜 굳이 사용자가 식탁에서 살과 가시를 일일이 발라가며 먹어야 하는가. 판매처에서 손질을 제대로 해 내장과 대가리, 등뼈를 전부 발라 낸다면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없다. 살을 바르는 만큼 먹는 행위를 멈춰야 하니 그 또한 식사 경험에서는 단절이고 손해다. 서양에서 포크와 나이프로 생선을 먹는 게 지극히 단순하다 못해 미개해 보이는가? 그렇게 생선을 올리기 위해서 미리 손질을 다 한다. 포크와 나이프를 쓰게 만드는 배경 자체에 교육과 문화가 있다. 살을 다 발라 먹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그렇게 발라낸 대가리와 등뼈라면 따로 국물을 내어 소스의 바탕으로 사용한다. 익히면 그렇게 쓸 수 없다.

젓가락과 손재주만 단순 연결하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다. 칼로 생선 포를 잘 뜬 다음 가시를 핀셋으로 전부 집어 내는 것 또한 총체적으로는 손재주의 영역이다. 한국 식문화가 밥상에서 소비자로 하여금 손재주를 부리게 만든다면, 서양에서는 판매자가 부린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미리 말끔하게 손질한 생선은 굳이 젓가락으로 파헤치지 않고도 편하게, 또 한꺼번에 많이 먹을 수 있다. 혹자는 ‘한국에서도 생선회는 기막히게 뜨지 않는가?’라고 반문할 것이다. 맞는데 요리용 생선의 취급과는 단절이 있다. 예를 들어 이면수처럼 작은 생선은 석장 포뜨기를 거부하는 경우도 많다. 생선살이 부서질 수 있다는 것. 불가능한 일인가? 그렇지도 않다. 결국 아마추어가 집에서 하고 만다.  조리의 손실을 감안하면 아마추어의 서투름을 감안하더라도 조리 전에 손질하는 편이 낫기 때문. 인식이 문제라고 본다. 기술일 수도 있지만 정서적 단절이라 보는 것. 젓가락질로 발라낼 수 있기 때문에 굳이 할 필요 없다고 보고, ‘리스크’를 걸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이 또한 음식과 맛의 완성을 부엌에서 식탁으로 떠넘기는 문화의 일부다. 맛을 비롯한 식사 경험을 요리하는 주체가 계획하고 실행해 식탁의 노력을 최소화하지 않는다. 이는 품 많이 들지만 깔아주는 역할에 치중하는 반찬문화와 당연히 관련이 있다. 김치를 비롯한 반찬은 일단 양념부터 엄청난 노동력이 들어가는 반면, 고기나 생선 등 단백질이나 국 종류는 거의 대부분 간, 심지어 조리마저 먹는 이에게 맡긴다. 그리고 이 모두를 한데 묶어 ‘먹는 이가 선택해 먹을 수 있는 문화’라고 칭송하는데, 이젠 대부분의 반찬이 똑같은 양념 바탕이기 때문에 의미가 없을 뿐더러 상대적으로 요리 주체의 역할을 축소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간을 하고 음식을 가열하는 것과 이미 조리가 끝난 재료에 간만 해서 먹는 건 전혀 다르다. 이 둘을 마치 같은 것인양 취급하거나 후자의 상황을 우월하다고 규정지으면 요리 주체는 성장할 수 없다.

또한 들어내지 않은 생선 내장이 전체의 신선도나 조리의 효율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통째로 구울 경우 내장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균일하지 않은 형체/표면적 때문에 조리 또한 효율이 떨어진다. 한 부위를 다 익히기 위해 다른 부위를 과조리로 희생시켜야 하는 상황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닭같은 가금류라면 부위의 모양, 성질이 다 다르기 때문에 통으로 익힐 경우 특정 부위의 과조리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지만 생선은 훨씬 더 균일하고, 포뜨기 등 손질을 통해 더 균일해진다. 또한 껍질과 그 사이 지방층이라면 몰라도 뼈나 지느러미는 동물과 달리 맛에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굳이 함께 조리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조리 자체의 완성도는 어떤가. 지난 번 7,000 원짜리 간장게장을 먹을때 다른 손님들이 먹는 생선 구이에 주목했다. 꽁치, 고등어 등을 파는데 완전히 바싹 말라 버릴 때까지 구운 것이었다. 먹을 것도 별로 없지만, 애초에 그렇게 과조리 하지 않으면 굳이 젓가락으로 파헤칠 이유가 없다. 없이도 살을 아주 말끔하게 발라낼 수 있기 때문. 비디오를 보라. 1:13초 지점에서 ‘너무 익히면 살이 부스러진다’라고 설명한다. 굳이 젓가락까지 쓰지 않아도 살을 발라낼 수 있는 이 기술과 문화를 미개하다고 치부할 수는 없다. 심지어 손님 앞에서 살을 발라내는 행위가 의식이고, 식문화의 일부라 그에 따른 규칙마저 딸려 나온다. 비디오의 마지막에서 설명하고 있다.

위에서 ‘젓가락은 짝을 맞추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했는데, 이를 비롯한 실용성도 생각 만큼 대단하지 않다. 식탁에서도 유용한지 모르겠지만 조리에도 편하지 않다. 원래 꽤 힘이 들어가니 길어질 수록 다루기가 버거워, 튀김 등에는 집게를 쓰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파인 다이닝에서 요즘 유행인 작고 가벼운 재료(싹 채소 등)을 집는데 핀셋을 쓰는 건, 젓가락질에 서툴기도 하지만 힘이 훨씬 덜 들어가고 세밀한 조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젓가락은 일부가 믿고 싶은 만큼 우수하지도 않고 만능도 아니다. 소재는 또 어떤가. ‘나무로 숟가락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스텐으로 만들고 젓가락도 짝을 맞췄다’는데, 굳이 짝을 맞춰서 이에 닿는 기분이 나쁜 금속을 계속해서 입에 가져가야 하는 걸까? 대나무 유명하다는 고장이 있는데 제대로 된 대젓가락 하나 없는 현실은 또 뭔가.

나의 것이기 때문에 묻고 따지지도 않고 우월하다고 믿으면 참 좋다. 세상살이가 대체 얼마나 편해질까. 그러나 현실이 그런가. 현실이 그렇게 하도록 놓아두기는 하는가. 한국이 그렇게 우수하고 한국 것이라 좋다면 우리는 지금 왜 이렇게 사는가. 굳이 젓가락 하나를 끄집어 내서 꿈보다 좋은 해몽 끝에 과대평가하고, 그걸로 축제를 벌이네 노 석학이 나서네 기사를 굳이 내는 것도 그만큼 현실이 비루하다는 증거는 아닐까. ‘젓가락질 잘 한다고 밥 잘 먹는 것 아니다’라는 노래 가사가 20년 전에 나왔는데, 정말 그렇다. 음식을 보라. 그 잘하는 젓가락질로 굳이 열심히 먹을 게 없지 않은가. 굳이 젓가락으로 먹어야 하는 음식이, 썩 대단한 구석 없지 않은가. ‘젓가락 우습게 보지 말라’는데, 이런 시각이 오히려 젓가락을 더 우습게 만든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다. 혜안에도 유효기간이 있다.

 

20 Responses

  1. qwerty says:

    정말 좋은 글 입니다

  2. 익명 says:

    젓가락질 문화가 과도하게 미화되고 있고, 그것이 우리네 식탁을 지배하는 민족주의 사조의 영향 아래 있다는 글의 전체적인 논지에는 동의합니다만 첫 문단에 대해선 동감하기 힘드네요. 군대에서 간부만 젓가락 쓰는건 그냥 단순한 부조리 아닌가요… 포크와 숟가락을 따로 지급한다면 모르겠습니다만 포크숟가락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발명품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 bluexmas says:

      동감 안 하셔도 상관 없습니다. 불편해야 한국 군대죠.

  3. 익명 says:

    싸가지없는진보 책 한번읽어보시길 ..

    충분히 일리있는 글인데 너무공격적이라 젓가락에 별생각없던사람도 위축되어 글쓴이의 주장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이사람 뭐지? 이런생각이드네요

    많은사람들의 마음을움직이는글을 쓰시려면 조금 더 부드러워지시는것도 좋은방법이 되실듯합니다

    글은 잘읽엇습니다

    • bluexmas says:

      많은 사람의 마음 움직일 생각 없습니다. 싸가지 없는 진보 저자신가요?

  4. 헬렌 says:

    우리나라와 외국생선은 종류가 다르다.
    Dover sole 저 비디오의 생선만 유일하게 통째 조리해서 손님앞에 서빙해서 가시를 발라준다. 할리부는 안심덩어리보다 큰 생선이고, 아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껍데기, 머리 싹 버리고 손바닥만한 살덩어리만 뜯어내쓴다. 먹는문화나, 식재료가 달라 거기에 가장 합당하게 발전한 우리나라 고유의 요리법이고, 도구이다. 꽁치, 고등어, 조기를 살만 발라내 구워보시라. 글쓴이는우리나라생선을 포크로 그렇게 드시는가?

  5. WY RL says:

    글 잘 읽었습니다. 리스트에 올라 있는 글 중에 재밌어 보이는 글들도 주욱 일독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무리하셨다 싶은 글들도 종종 읽혔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이 글이야말로 압권입니다. 맹목적 전통문화 미화에 당당히 맞서는 맹목적 안티테제. 늘 재밌는 읽을거리죠. 건승 기원합니다.

    • bluexmas says:

      말씀 감사합니다만 ‘맹목적 안티테제’라니 섭섭하군요.

  6. Kang says:

    좋은글이긴헌데.어필하는 방법이 넘공격적이네요..젓가락이면 오떻고..나이프,포크면 어때요..이해하고 서로 맛나게먹으면되지..^^편하게삽시다..각박한세상에..

  7. 모네 says:

    다시 읽어도 참 좋은 글이에요
    외식의 품격 번외가 나온다면 꼭 거기서 다시 보고 싶어요

  8. 희비 says:

    블루마스님! 이 글 정말 정말 정말 너무 너무 너무 좋아요!!!!!! 링크해주신 기사에서 어떤 말을 하나 궁금해서 봤는데, 저 분이 젓가락에 대해 가지는 엄청난 애정은 나름 재밌게(?) 읽었습니다. 음식의 성분을 파악하는 젓가락, 이런 것이 창조, 애플을 이기는 방법 뭐 이런 얘기요. 성격이 생생하게 읽히는 문장들은 왠지 재밌습니다. 저 분은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을 밀어붙이는 에너지 하나는 엄청난 것 같아요.

    거기까진 별 불쾌감 없이 읽었는데 그 뒤에 “젓가락에는 먹는 사람이 음식을 먹기 좋도록 배려하는 문화적 의미가 담겨 있다”, “자기 아들이 있는데, 먹기 좋도록 썰어주고 잘라주는 게 어머니의 사랑이지”, “그러면서 서로 정도 생기는 것이다” 등 이후로 상당히 불편해지더군요. 배려, 사랑, 정 등을 자기 편한 관점에서만 해석하고, 그게 당연하고 우월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정말 피곤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겠죠. 제가 이 글을 넘넘넘 좋다고 느끼는 이유는, 음식에 대해 깊이 공부하신 bluexmas님만이 쓸 수 있는 세련된 반박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정보를 덕분에 많이 알게 되는 건 물론이구요>_<;; 아 당연한 얘기로 감사드리려니까 너무 쑥쓰러워요;;) 사실 저로서는 이렇게 깔끔하고 노련하고 정갈하게 쓰인데다가 직업의식 및 윤리까지 투철한 글이 어떤 이들에게는 공격적으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네요. 평소 눈팅만 하다가 이번 글에서 넘 넘 넘 완전 완전 완전 좋은 맘을 주체하지 못하고 막 엄청 긴 댓글을 달아버렸어요. 이제 곧 추석인데 즐겁게 보내시길 바랄게요 🙂

  9. 김진수 says:

    글의 취지는 이해합니다. 무조건 우리나라의 문화만 우수하다고 주장하는 민족주의적인 시각은 분명히 불편합니다. 글쓴분도 이러한 점에 불만을 느끼고 이러한 글을 쓴듯 합니다. 하지만 그런 방향으로 글을 쓰다보니 너무 지나쳤다는 생각입니다. 첫번째로 젓가락이 2개 있어야 해서 실용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논리적 비약입니다. 서양 식문화도 포크 수저 나이프가 다 있어야 하고 젓가락의 짝을 잃는 경우는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힘듭니다. 그리고 생선의 예를 들었는데 이는 단지 문화의 차이이지 어느 조리법이 낫다고 하기는 문제가 있습니다. 좋은 글이지만 지나치게 독단적인 논리로 쓰셔서 안타깝군요.

    • bluexmas says:

      이해 못하셨고 하실 필요 없습니다. 따라서 안타까워 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1. 11/23/2015

    […] 잘 묻어나지는 않는다. 그래서 젓가락에 대한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예전 글에서 언급한 노석학께서는 ‘젓가락에 열량 측정기 같은 걸  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