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보다 지우개에 더 가까운 풀무원 생모짜렐라 치즈

IMG_8064신제품이군. 호기심에 집어 들려는데 함께 장을 보러 간 지인이 말렸다. 그에 굴하지 않고 나, 직업 정신에 입각해 꿋꿋이 이 치즈를 사들고 집에 왔다. 그리고는 며칠 뒤, 점심으로 먹으며 후회의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의 말을 들을 걸. 새로 나온 것에게는 책임이 따른다고 믿는다. 이미 나와 있는 것보다 나아야만 한다. 그래야 의미가 있다. 이 풀무원 모짜렐라 치즈는 새로와지는 방식으로 ‘국산 1A급 무항생제 원유’를 택했다. 재료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철학을 구체화한다. 어찌보면 가장 쉽고, 또 그만큼 의미없는 방법이다. 맛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보장이 실제로는 없기 때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이 모짜렐라는 이미 팔리고 있는 6,000원짜리들보다도 못하다. 그것들은 단지 부드럽지 않을 뿐이지만, 이것은 한발 더 나아가 딱딱하다. 잘라보니 가운데에 이미 결이 없어졌고 빛깔도 다르다. 이미 일정 부분 수분이 빠지고 숙성이 시작되었다는 징조다. 물론 피자에 올리는 것처럼 물기를 빼고 굳힌 모짜렐라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이름처럼 ‘생’으로 먹어야 하는 치즈일텐데 전혀 그런 질감을 주지 않는다. 이보다 지우개에 더 가까운 치즈는 먹어본 기억이 없다.

이유가 뭘까. 가장 먼저 지방 함유량을 의심했다. 지방이 적어 뻣뻣할 수 있다는 것.  국내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구할 수 있는 코스트코의 미산 생 모차렐라(Bel Gioioso 브랜드)와 비교해보았다. 100g당 지방 함유량은 17g. 한편 풀무원 제품은 홈페이지의 정보를 참조하자면 같은 무게 대비 무려 30g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지방만으로도 엄청나게 부드러워야 할텐데 전혀 그렇지 않다. 과연 어찌된 일일까.

이렇게 지우개에 가까운 뻣뻣함은 소금의 부재로 더더욱 악화된다. 제조사 홈페이지의 상품 설명에 의하면 소금 함량이 전체 무게의 0.04%다. 100g이면 0.04g이라는 말인데, 이 정도면 소금을 쓰지 않았다고 보는 편이 낫겠다. 참고로 위에서 비교한 제품은 같은 무게 대비 0.3g의 소금을 함유하고 있다. 자연을 표방한다고 말하지만 이 정도의 싱거움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다. 지방과 단백질을 걷어내 만든 치즈나 버터는 소금이 없으면 제 맛을 내지 못한다. 냉동냉장기술이 보편화된 요즘, 저장성을 위해서는 필요 없을 소금이 여전히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유다. 제품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버터의 경우도 가염이라면 1% 안팎의 소금을 함유하고 있다.

이 치즈의 무맛은 너무나도 익숙하다. 원산지가 전북 임실이기 때문. 지방을 오가면서 휴계소에서 눈에 띄는 대로 사먹어 본 것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래서 사실 난 국산 치즈에 대한 희망을 버렸다. 백화점 식품관에서 여전히 맛없지만 이보다는 나은 이탈리아산 생 모짜렐라를 1+1, 심지어 2+1으로 살 수 있는 현실에서 더 비싸고 맛없는 국산을 굳이 선택할 이유가 없다. 이 치즈는 정말 어느 누구에게라도 사먹으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이제는 별로 궁금할 것이 없는 가운데, 여전히 한 가지만은 궁금하다. 과연 이런 치즈의 생산자들은 치즈를 먹어는 보고 만드는 걸까. 

2 Responses

  1. Sunhee Kim says:

    ㅎㅎㅎ치즈에 문외한이지만 관심은 많은 저익니다. 맛없는 식당에서 밥 먹을때 생각합니다.
    이 식당 주인은 자기 식당에서 밥을 안먹는것일까? 진심 궁금합니다.
    마지막 문장에서 웃게되네요. 씁쓸하지만 공감의 웃음이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