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평가옥-세 가지 생각
순전히 동선이 맞아 들렀는데 잘 먹었다. 육수엔 들척지근함이 없었고, 면도 적당히 삶고 식혀 긴장을 잃지 않았다. 껍질이 붙은 편육(반 접시 13,000원)도 뻑뻑하지 않게 삶아 얇게 잘 저몄고, 끝에 붙은 껍질이 적당한 액센트를 주었다. 그릇, 차림새, 접객 등등도 보통 이상. 다만 몇 가지에 의문을 품었다.
1. 습관적인 맛의 요인: 음식에 상관 없이 파나 깨 등을 뿌려 내는 경우를 너무 자주 보는데, 이게 정확하게 맛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허전해보여서 습관적으로 더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후자라고 해도 큰 상관은 없는데, 그것도 아예 맛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때만 가능한 일. 당연히 불가능하다. 평양냉면의 경우는 파를 뿌려 내는 경우가 많은데, 생파가 정확하게 음식 전체의 맛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특히 파란 윗동은 미끈거리고 씹히지도 않아서 생으로 먹기에는 부적합한데, 본래 차가운 국물이다보니 익지도 않는다. 이래저래 나쁜 습관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평가옥의 냉면에는 한 발짝 더 나아가 생 청양고추가 들어 있었다. 의도가 궁금해 건져내지 않고 먹어 보았는데, 워낙 곱고 얇게 썰었는지라 부정적인 영향이 최소화되기는 했어도 없는 것보다는 못했다. 을지면옥 계열의 고춧가루보다는 낫지만(그건 빨간 걸 말려 빻았으니 뉘앙스가 전혀 남아 있지 않고 독하다), 분명히 불필요한 요소였다. 계산하고 나가면서 물어봤는데, 나는 의도가 궁금하다는 의도였지만 ‘거슬리면 빼달라고 그러시지요’라는 반응을 들었다(물론 친절했음). 과연 이런 맛이 평양냉면 국물에 필요한 걸까. 없으면 허전해 보일 수 있다는 건 알지만, 음식이라면 장식적인 요소가 맛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설사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다고 해도.
2. 주연과 조연 사이의 갈등: 말하자면 냉면(11,000원), 제육 등 주요리와 반찬 사이 맛의 극명한 차이다. 네 가지 반찬을 내왔는데(그릇을 보라. 훌륭하다. 아래의 만두 접시만 빼고…), 달지는 않았지만 지나치게 맵고 양념이 강하다. 제육을 찍어 먹는 새우젓 바탕의 양념장도 마찬가지. 잘 삶아 차게 식힌 돼지고기는 굉장히 섬세한데, 그 맛의 자존감을 지나치게 침범하는 수준. 나머지 반찬도 냉면맛의 균형을 깨는 수준이었다. 평양냉면의 기본 맛에는 빨간 김치조차 군더더기라는 생각인지라, 이 두 무리 사이 큰 맛의 격차는 굉장히 어리둥절했다. 이후 수업시간에 이에 대해 잠깐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오랜 요리 경력을 지닌 학생이 냉면 담당과 반찬 담당-‘찬모’-가 달라서 벌어지는 일일거라 이야기했다. 한 사람이 음식을 만들 수 없는 노릇이니 인력 분배는 당연한 일인데, 결국 레시피 없이 습관적으로 조리한다는 의미. 종종 ‘한식의 반찬 문화는 먹는 사람이 선택해서 맛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들 말하는데, 애초에 그런 의도가 없이 비슷한 양념을 써서 가짓수를 늘려 내는 현실에서는 궁색한 미화일 뿐이다. 이런 경우도 아예 반찬을 없애버리는 게 맞고, 그에 맞춰 가격도 조정해야 한다.
3. 면의 양: ‘냉면 가격이 올라가면서 면의 양도 많아진다’는 이야기를 누군가와 나눈 적 있다. 다른 요인 때문에 가격을 올려야 하는데 소비자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한 차원에서 면의 양을 늘린다면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그 상한선은 분명히 존재한다. 먹을 수 있는 양에 한계가 있기 때문. 요즘 먹으러 가는 곳마다 넌지시 면의 양을 물어보는데, ‘잘 모른다’는 답이 가장 많았고, 정확하게 말하는 곳은 200~250g 수준. 혼자 먹도록 설정되어 있는 마르게리타 피자의 도우 양이 대개 그 수준이니 성인남자 기준으로 적당한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수준이고, 상한선이라 본다. 그런데 평가옥의 면은 그보다 많다 싶어 물어보니 300g. 후한 것도 좋지만 이쯤되면 확실히 너무 많다.
냉면 사진에서 파와 고추가 없었으면 미각적으로 훨씬 즐거웠을텐데, “허전해서 넣었다”는 논리도 딱히 설득력 없는 것 같고. 이러나 저러나 잘 이해가 안 가는 선택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