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사비” 없는 스시와 음식의 정체성

IMG_7082두 글을 연결해서 쓰려고 어제 을밀대 냉면 이야기를 했는데, 그리고 나서 재미있는 저녁을 먹어 그에 대한 글을 쓰겠다. 말하자면 일종의 ‘쉬어가는 코너’다. 경기도에 일이 있어 갔다가, 전혀 메뉴를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서 초밥을 먹었다. 15쪽에 23,000원. 언제나 스시는 이진법적인 음식이-먹을 수 있거나 없거나-라 생각하기에 애초에 아무런 기대가 없었고(배탈만 안 나면 된다?), 재료나 만듦새도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맛있을 거라 기대도 전혀 안하지만 맛이 없더라도 실망조차 해서는 안되는 음식. 하지만 솔직히 재료에 무심한 가운데, 만듦새는 좀 거슬렸다. 계속해서 생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는, 온기가 알아차릴 정도로 남아 있는 밥이라니. 손님이 하나도 없는, 이른 저녁 시간의 가게에서 눈 앞에서 만들어 바로 주는 스시의 밥이 그런 수준이라면 그게 과연 가격과 손님의 수준 때문일까?

어쨌든, 그건 사소한 문제였다. 그보다 모든 스시에 “와사비”가 전혀 들어있지 않다고 말해도 좋을 수준이라는게 정말 놀라웠다. 생선과 밥, 끝. 간혹 의도에 의한 예외가 존재하는 상황도 아니고, 눈 앞에서 만들어내는 모든 스시에 일관적으로 쏘는 맛이 전혀 없었다. 사진을 복기하지 않는다면 그냥 아예 없었다고 생각할 수준.  대신 락교 등 일식집에서 통상적으로 나오는 절임과 양배추 및 브로컬리 절임이 엄청나게 달았다.

웃자면 얼마든지 웃을 수 있는 상호(말하고 싶으나 그럼 조롱처럼 들릴까봐 그럴 수 없다;)와 다찌 위에 나무판으로 곱게 붙여 놓은 호텔 위주의 근무 이력을 번갈아 보며, 나는 와사비의 부재가 품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했다. 물론 가장 먼저 궁금한 건 이유다. 혹 그 상권의 손님들은 와사비를 싫어하는 걸까? 물론 진짜 와사비는 아니지만, 어쨌든 그 쏘는 맛을 싫어하는 걸까? 그래서 빼야 장사가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과연 그것은 셰프에게 어떻게 작용할까? 숙성시킨 생선이나 초 등에 버무린 밥과 더불어 와사비의 쏘는 맛 또한 쥠 스시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요소다. 과연 그걸 완전히 들어낸다면 그 음식은 스시일까? 또한 스시를 업으로 삼는 사람이 그렇게 결정적인 요소를 들어내면서까지 그 음식을 팔고 싶을까? 물론 ‘현실’은 ‘타협’을 의미하지만, 원래 가져야만 할 걸 완전히 버려야만 하는 상황에 맞춰야만 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것을 현실에 맞는 합당한 타협으로 인정해줘야 할까? ‘앙꼬없는 찐빵’과 와사비 없는 스시 가운데 어떤 것이 더 가짜이고 또 위험한가?

한편 그에 맞춰 ‘열화’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분위기가 나빠지고 재료가 나빠진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사람도 나빠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또한 나빠진다면 그 하한선은 어디인가. 아니면, 원래는 좋은데 나빠진 건가, 아니면 그건 핑계일 뿐이고 원래부터 나빴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