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포(Pho) 끓여 먹기
지난 번 레 호이에서 오랜만에 쌀국수(포)를 먹고는, 생각난 김에 집에서 만들어 보았다. J.켄지 로페즈-얼트의 푸드랩 포스팅(이를 모은 책이 곧 나온다고. 얘기 나온지는 꽤 오래 됐다)을 보고 아주 오래전부터 실행에 옮겨 오겠다고 생각만 했었다.
아무래도 국물이 핵심이자 생명인데, 과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향의 핵심인 양파, 생강 등을 태우다시피 그을린다: 오븐-브로일러가 있다면 가장 편하고, 토치를 쓸 수도 있다. 아니면 육수를 낼 냄비를 기름 두르지 않고 뜨겁게 달궈 지져도 되는데(내가 쓴 방법) 효율이 떨어진다. 레인지 후드 아래에서 석쇠나 식힘망에 올려 토치로 그을리는 게 한국에선 최선인듯.
2. 그을린 향채에 팔각, 계피, 정향 등을 더해 육수를 붓고 끓인다: 육수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낼 수 있다. 정석은 한국식 육수처럼 양지처럼 기름기가 적은 부위부터 도가니나 꼬리처럼 콜라겐 많아 끈적한 부위까지 골고루 섞어 천천히 끓여 내는 것. 좋지만 날도 더운데 굳이 이렇게 지극정성을 들일 필요까지는 없다(물론 말리지는 않는다). 어차피 밖에서도 조미료 그득한 국물을 먹을 팔자니 그 정도의 노력만 들여도 대세에는 지장 없다. 그래서 나는 인스턴트 닭육수 바탕에(쇠고기 육수가 더 낫다. 물론 인스턴트) 간 목심(chuck)을 썼다. 간 고기를 쓰는데는 두 가지 장점이 있다. 표면적이 넓어지므로 육수를 아주 빨리 낼 수 있다. 압력솥을 쓴다면 20분 안에 끝. 또한 계란 흰자와 섞어, 국물을 내는 동시에 여과가 가능하다. 단백질 ‘뗏목’을 만들어 불순물을 흡착시키는 원리다. 그러므로 두 가지를 묶어 보자. 그을린 채소에 인스턴트 육수 큐브를 더하고 물을 붓는다. 거기에 계란 흰자와 간 고기를 섞어 붓고, 압력솥 마개를 밸브가 올라오면 20분 끓인다. 뚜껑을 열면 고기와 계란 흰자가 거대한 덩어리로 국물 위에 떠 있을 것이다. 체로 내린다. 압력솥이 없는 경우라면 30분 이상 끓이며 종종 국물을 떠 계란 흰자 위로 부어줘야 한다.
3. 육수는 멸치액젓과 소금, 설탕으로 간한다.
4. 육수를 내는 사이 고기와 면을 준비한다. 면은 포장지의 안내에 따르면 되는데, 대부분 30분 정도 불렸다가 잠깐 삶는다. 한편 고기는 육수처럼 아주 정석으로 갈 수도, 또 편한 길을 택할 수도 있다. 전자는 양지 같은 고기를 덩어리째 삶는 것. 후자도 제대로 가자면 홍두깨 등의 기름기 적은 부위를 냉동실에 30분 정도 둬 미끄러지지 않도록 겉만 얼려 얇게 저며 준비하는 길이 있는데, 한국의 현실에서는 그렇게 고생할 필요가 없다. 얇게 저민 불고깃감을 어디에서나 살 수 있기 때문. 그걸 사다가 포장만 뜯어 면에 올리고 뜨거운 국물을 부으면 끝이다. 그게 너무 손쉬워 적당히 공을 들이고 싶다면 고기를 미리 살짝 익혀도 좋다. 별도의 그릇에 담고 펄펄 끓는 육수를 부어주면 끝. 이때 고기에서 배어나온 알부민 때문에 애써 내놓은 맑은 육수가 탁해지므로, 고기만 건져 담는 게 좋다. 같은 요령으로 양지 같은 덩어리 고기도 육수에 따로 삶는 게 더 맛이 좋다. 물론 여러 부위를 따로 준비해 모둠 고명을 얹어도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바질/실란트로/숙주/양파/파 등도 마찬가지(참고로 쑥갓은 오마주). 원하는 걸 원하는 만큼 얹고 육수만 끓는 걸 부어주면 된다.
5. 큰 냄비가 있다면 육수는 넉넉하게 내어 지퍼백에 1, 2인분씩 나눠 냉동시키면 편하다. 원하는 용량의 플라스틱 용기나 컵 등에 지퍼백을 끼워 주둥이를 벌려 놓고 국물을 채운 뒤, 공기를 빼고 여며 납작하게 펴 얼리면 냉동실 공간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포스팅 참 잘 보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좀 실례되는 말씀 좀 드릴게요. 아파트 베란다에서 조리하는 것에 대해서는 강력히 반대합니다. 저희집 아랫집에서도 고기굽기 등 냄새나는 음식들은 베란다에서 종종 조리하는데 윗집인 저희집으로 냄새가 올라와 아주 고역입니다. (특히 베란다 문열어놓고 지내는 봄여름가을) 한국인 정서상 음식해먹는 것 갖고 뭐라하기도 참 그래서 참고있는데 아랫집 음식냄새가 올라올 때는 너무 괴롭습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반영해 고쳤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