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길]소나-실력과 의도 사이
[가로수길] 소나(SONA)-디저트의 온도 및 밀도 세부 조정
아주 오랜만의 방문이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그렇다. 콘셉트도 실력도 있다. 그래서 좋은 디저트를 낸다. 하지만 그 둘이 정확하게 만난다는 생각이 드는 건 아직 못 먹어보았고, 앞으로도 못 먹어볼 거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둘이 어느 정도 의도적으로 분산되어 있기 때문이다. 플레이팅 디저트를 들여다 보면 콘셉트에 충실한 복잡함과 복잡함을 위한 복잡함이 공존한다. 그 둘을 한데 모아 콘셉트에 따라 조금 정돈해주면 더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기엔 또 나름대로 복잡한 프티 푸르가 에너지를 가져간다. 비단 축소판일 뿐만 아니라 나름의 맛-파리 브레스트의 블루 치즈 페이스트리 크림이랄지-도 지니고 있지만 가짓수도 복잡함도 만만치 않다. 달리 말해 서로 다른 두 가게의 특징이 될만한 걸 한 가게에서 내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나쁘지 않지만 더 좋아질 수 있을 만큼 투자를 못한다는 생각. 하지만 그것이 바로 이 의도고 전략인 것으로 보인다. 때로 정확하게 맛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의도적인 복잡함이 호소력을 지닐 수 있으므로.
그리고 나머지.
1. 맨 처음 나오는 베이컨 아이스크림과 토마토는 두 재료의 맛 모두 나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은 매끄럽고 부드러웠지만 베이컨의 특징적인 세 가지 맛-짭짤함, 훈연향, 돼지고기맛-이 거의 나지 않았다. 한편 콩카세(데쳐 껍질 벗겨 깍둑썰기)한 토마토는 우리나라에서 아주 흔한 재료 자체의 한계 때문에 별 맛이 없었다. 아이스크림의 매끈함을 감안한다면 생토마토보다 차라리 단맛 강한 이탈리아 토마토 통조림을 끓인 소스 같은 걸 깔아주는 편이 더 좋겠다. 가짜 말고 진짜 발사믹 식초를 조금 더해준다면 베이컨 아이스크림에서 제대로 베이컨맛이 난다는 전제 아래 짭짤하고 새콤하고 감칠맛나는, 단맛과 짠맛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좀 더 박진감 넘치게 하는 디저트가 될 수 있을듯. 아, 그리고 가는 머랭 막대기는 불필요한 장식이다. 이 또한 의도적인 복잡함의 요소.
2. 설탕 구슬 속에 거품을 넣고 바닥에는 생딸기를 깔았다. 깨부숴서 딸기 소스를 부어 먹는 디저트. 아이스크림과 마찬가지로 생과일의 질감이 썩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은데, 아예 딸기 가루 등을 더한 솜사탕 같은 걸 깔아주면 더 환상적인 분위기가 나지 않을까. 하지만 이대로도 좋았다. 이런 디저트도 더 많이 먹을 수 있어야 한다. 못생긴 조각 케이크 같은 것 말고.
3. 해체라면 해체라고 말할 수 있는 밀푀유. 나름 보기도 좋지만 이미 부숴 냈으니 보통 밀푀유보다 먹기도 편하다. 맨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어느 순간에 이르면 럼 레이즌, 유자 껍질, 각종 젤, 소르베, 올리브 기름 가루 등등의 많은 요소 가운데 어떤 게 정확히 콘셉에 따른 맛을 내기 위한 것인지, 또 어떤 게 의도적인 복잡함을 불어 넣기 위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나 차라리 그것 자체가 계산이라면 불만은 없다. 의도도 없고 실현할 기술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나.
4. 프티 푸르에는 또 나름의 즐거움이 있다. 하지만 마카롱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축소판으로 만들겠다는 전체 콘셉트에 일단 맞지도 않을 뿐더러(그럼 더 작게 만들어야?), 다른 것들보다 더 낫지도 않고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다. 이날 먹은 디저트 가운데 가장 이곳의 맛을 제대로 낸다고 생각했던 게 당근 케이크. 케이크의 향신료 풍성하고, 적극적으로 달고 프로스팅은 새콤하다. 한국에서 당근 케이크가 비슷한 콘셉트의 무 시루떡보다 못한 현실을 감안하면 훌륭하다.
5. 커피. 뜨겁다. 식으니 차라리 맛이 좋던데 온도가 가린다.
사진만 봐서는 말씀 하신 대로 좋은 집 같습니다만, 어디서 많이 본 비주얼이 많네요. 특히 두 번째의 구체화 기법의 설탕 사과는 엘 세예 데 칸 로카에서 디저트나 스프 같은 거에 나오는 것을 그냥 베낀 듯 합니다. 디저트 쪽으로 나올 때의 프리젠테이션도 비슷하구요. 아마도 말씀 하신 맥락 없는 복잡함이란 이미 있는 요리를 갖고 온 과정에서 다 이 가게의 것으로 소화되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이런 걸 만든다는 자체가 정보를 열심히 찾고 실력은 있다는 방증이긴 하니 정말로 창의적이고 맥락 있는 음식을 만드는 가게로 발전 했으면 하네요.
네, 저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타일을 소화할 기술은 갖추었는데 그게 컨셉트와 겉돌죠. 더 나아질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