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길] 소나(Sona)-디저트의 온도 및 밀도 세부 조정

문을 연지 6개월 정도 되었다던데, 이제서야 가보았다. 주 디저트와 프티푸르 가운데 세 가지+음료의 조합인 코스가 21,000원.

아뮤즈부시. 가운데의 요거트 거품이 중심으로 아래에는 젤리와 그레이프프루트 과육, 위에는 블루베리 그라니타가 각각 있다. 아주 가벼운 거품과 위의 그라니타가 좋은 대조를 이루는데, 그렇다는 걸 감안할때 아래층에는 아예 아주 살짝 굳힌 젤리만 있는 편이 낫겠다. 그레이프푸르트의 과육을 굳이 씹을 필요가 없을듯.

커피는… 아렸다. 온도도 역시 좀 높은 편. 디저트에 곁들인다는 걸 감안한다면 온도는 괜찮은데 쓰다 못해 아린 건 못마땅했다. 이 정도가 커피 전문점이 아닌 커피의 현주소이기는 하지만.

주디저트는 오!초콜릿(Oh! Chocolate). 잔에 70%발로나 초콜릿케이크와 밀크초콜릿 무스, 바닐라 아이스크림, 그리고 초콜렛을 입힌 “진주” 크런치, 홍차 브륄레(홍차설탕을 태워, 즉 ‘브륄레’해서 부스러뜨려 더한 듯?)가 담겨 있다. 이를 얇은 초콜릿 판으로 덮어 내온 뒤, 따뜻하고 묽은 초콜릿 소스를 부어 녹여 중간 정도로 진득한 소스가 되도록 고안했다. 부드럽고 바삭한 질감의 대조와 다크 및 밀크 초콜릿이 자아내는 초콜릿의 여러 표정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도록 고안한 디저트인데, 두 초콜릿이 만나 만드는 소스가 불어넣는 온도 및 농도 변화의 계산이 콘셉트에 비해 조금 비껴나갔다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바삭하고 부드러운 질감의 요소 모두가 소스로 인해 각각의 특성을 조금씩 잃어버려 이에 다소 끈끈하게 붙는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빼고 소스의 영향을 받는 나머지 요소의 밀도가 조금 더 낮았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물론 초콜릿이 중심인 디저트라 풍부한 것이 특징이겠지만 절반 정도 먹은 다음부터는 다소 무거웠다. 한편 숟가락이 너무 짧고 미끄러워 떠먹기가 조금 어려웠는데 물어보니 적절한 집기를 찾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세어보지 않았지만 열 가지는 족히 넘을 프티푸르가 카트에 담겨있다. 사과 피낭시에(쌀가루로 만든듯?), 라즈베리 콤포트를 얹은 치즈케이크, 레몬초콜릿 트러플을 먹었다. 성격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주디저트보다 오히려 맛의 균형이 더 좋았다. 혹시라도 먹는 사람의 인식이 주객전도격으로, 주 디저트와 바뀌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약간 우려됐다(예를 들어 주디저트는 아예 건너 뛰고 프티푸르만 먹을 수 없겠냐고 물어본다거나…).

‘여기가 출발점이다’라는 표현을 쓰기란 언제나 마음 편치 않은 일이다. 내 입장에서는 중립적인 표현인데 되려 부정적으로 읽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다. 하지만 먹은대로 느낀대로 쓰자면 난 이쯤을 출발점으로 본다. 디저트로 치자면 맛의 균형이 잘 잡혀 있고, 그걸 원하는 형식 및 형태와 함께 제약 없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상황을 의미한다. 다른 곳에서도 늘 느끼는 것이지만 향신료 등을 통해 조금 더 섬세하게 표정을 불어넣은 디저트를 만나고 싶다. 분명히 이 다음 단계가 될 것이다. 디저트는 눈으로도 먹는 것이고 그건 결국 기술 또는 재주의 가치를 산다는 의미, 6,000원짜리 조각케이크 서너쪽 먹느니 총체적인 경험으로서 이쪽이 훨씬 나은데…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런 가게들이 생존에 대한 고민까지는 하지 않으리라?

*사족 1: 원래 잘 안 그러는데, 계산을 하고 나가려던 차 셰프의 낯이 익어 물어보니 한 3년 전, 이대 후문의 남베 101 오픈때 패스트리 셰프로 온 분이었다. 개업 전 취재차 갔다가 주방에서 인사한 적이 있는데 그때 얼굴을 어렴풋이나마 기억하고 있었던 듯.

*사족 2: 일반 음식도 그렇지만 이런 종류의 카페나 레스토랑의 장수 비결은 결국 시기 적절한 메뉴 개편이라고 본다. 적어도 분기별로 개편 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형식도 완전히 대체 가능해야 한다. 이를테면 한 철에 수플레를 했다가 다음 철에 세부 재료만 바꿔 또 다른 수플레로 대체하는 건 내 관점에서는 메뉴 개편이 아니다. 그걸 지속적으로 고안할 수 있는 것이 결국 셰프의 역량이며, 받춰줘야만 장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족 3: 이런 업소는 인테리어도 굉장히 중요한데 전체적으로 다소 갈팡질팡하는 듯한 인상이었다. 그래픽 작업한 것의 색감과 석재 식탁, 나무 의자의 조합이 특히 그러했다.

 by bluexmas | 2013/12/16 16:21 | Taste | 트랙백 | 덧글(4)

 Commented by 번사이드 at 2013/12/16 22:30 

이런 디저트카페일수록 메뉴 개편이 참 중요하다고 봅니다. ‘디저트리’도 처음엔 참 좋았는데, 시간이 지나도 잘 바뀌지않고 어중간해진 듯 하더군요~

 Commented at 2013/12/31 00:19비공개 답글입니다.
 Commented by 맹한 북극여우 at 2013/12/16 23:42 

평소에 포스팅 열심히 보고있어서, 포스팅내용이 왠지모를 칭찬으로 느껴집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3/12/31 00:20

다소 중립적인 입장입니다. ‘우와 다른 메뉴 먹으러 빨리 가봐야지!’라는 생각은 아직 안 들고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