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컬릿 황후-잘못된 부가가치 추구의 돌연변이
숙성이란 대체 무엇인가. 발효장류나 김치가 전통 음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숙성의 개념을 남용하는 경향이 있다. 따지고 보면 그 발효장류도 이제 대부분 공장 제품에 기대는 현실 아닌가. 방법론도 그 결과도 이해 안 가는 것들이 많다. 그렇게 남용되는 숙성의 발효와 숙성의 개념이 이제 초콜릿에도 파고 들었다. 발효카카오효소로 발효를 시킨다는 ‘초컬릿 황후‘라는 제품이다.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기본적인 트러플이라고 할 수 있는 경순공주(80g 20,000원)을 먹어보았다. 간단히 말하자. 당혹스럽다.
발효와 숙성의 과정이 초콜릿의 제조 과정에 필요한 건 사실이다. 문제는 시점이다. 초콜릿 가공 과정은 크게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콩을 수확해 커버춰로 만드는 과정이 1단계, 그 커버춰를 재가공해 맛과 모양을 불어넣는 과정이 2단계다. 발효나 숙성이 적극적으로, 또한 의미있게 개입할 수 있는 시점은 1단계다. 다음의 영상을 보자.
이들은 미국의 마스트 브라더스로, 이들은 콩을 들여와 1차 가공부터 해 초콜릿을 생산하는, ‘빈 투 바(Bean to Bar)’ 개념의 가공업체다(매년 밸런타인데이에 스텀프타운의 커피와 함께 선물셋트를 낸다). 약 2분 30초 시점에서 숙성 과정을 보여주는데, 콘칭이 끝난 초콜릿을 온습도가 통제되는 환경에서 30일까지 둔다고 설명한다. 이들처럼 빈 투 바 개념으로 초콜릿을 가공하는 업체라면 모를까, 그대로 먹을 수 있으니 완성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커버춰를 들여다가 2차 가공만 한다면? 발효와 숙성이 정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초콜릿과 딸려온 팜플렛을 열심히 읽어보았는데, 어디에도 초컬릿 황후의 제품이 직접 콩을 직접 1차 가공해 만든 것이라 설명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카카오 콩의 로스팅이나 콘칭 등이 포함되는 1차 가공은 웬만큼의 대단위 공정이나 기술이 없이는 섣불리 손을 댈 수가 없다. 국내에서도 시도를 하는 곳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시도와 상용화, 즉 먹을 수 있는 초콜릿을 만들 수 있는 노하우는 분명 다르다. 발로나니, 칼리보니 하는 상표의 커버춰가 유통되는 이유 또한 이미 대단위+발달한 기술과 노하우로 1차 가공을 마친 커버춰를 가지고 쇼콜라티에가 2차 가공해 부가가치를 불어 넣는 시스템이 정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품의 표기에 의하면 초콜릿의 원산지는 벨기에. 커버춰를 썼다는 또 다른 반증이기도 하다. 게다가 팜플렛에서 명시하는 숙성 기간은 “최소 3일”이다. 과연 숙성을 위한 것으로 보자면 짧은 그 기간 동안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날까? “100일 이상 장기보관이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미 생산자를 떠난 제품의 보관 조건은 이상적이라고 보지 않는 게 맞다. 그것이 정말 숙성이라고 해도, 소비자의 손에 맡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이래도, 저래도 상관은 없다. 맛만 있으면 그만 아닌가. 그런데 그게 가장 문제다. 맛이 없다. 아니, 그냥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먹을 수가 없다. 한두 개 먹고 나면 뒷맛이 너무나 불쾌하기 때문. 원인은 둘 중 하나로 본다. 정체불명의 효소인 ‘카카오황후베이스’거나, 아니면 이들이 발효 및 숙성이라고 일컫는 저온 보관이 사실은 산패의 결과를 낳는 방치라는 것.
나는 왜 굳이 ‘우리 입맛’이나 ‘전통’에 서양의 것을 맞춰야 하는지 이해를 못한다. 무엇보다 그를 위해 제시하는 방법론에 명확한 논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과도 대부분 형편없다. 1차 가공된 초콜릿에 기존의 방식으로 얼마든지 의미 있게 부가가치를 불어넣을 수 있다. 녹여 예쁜 모양을 만들어 낼 수도 있고, 향신료, 리큐르, 과일, 견과류 등을 더해 지방의 풍부함에 새로운 표정을 불어넣을 수도 있다. 또한 우유 크림 등을 섞어 질감의 변화를 준 뒤 또 다른 질감의 초콜릿과 결합할 수도 있다. 이러한 방법이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갖춘 쇼콜라티에 사이에서 아직도 통하는 건, 초콜릿이라는 재료의 속성을 정확하게 이해한 바탕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통상적이나 의미있는 방법에서 빗겨나가, 이 초콜릿은 정확한 근거가 없는 발효 숙성으로 부가가치를 더했다. 그 결과 생산자는 버는 돈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소비자는 맛의 측면에서 수긍이 불가능한 돌연변이가 나왔다. 이렇다 저렇다 주절주절 말을 잔뜩 가져다 붙일 수 있지만, 사실 음식의 문제는 아주 단순한 하나의 소실점으로 수렴된다. 먹을 수 있는가? 맛이 있다/없다의 문제도 아니고 ‘먹을 수 없다(inedible)’는, 지극히 생물학적인 반응 밖에 나오지 않는 식료품의 방법론을 지지할 이유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특허? 그런 것 없이도 맛있는 초콜릿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이건 애초에 발상 자체가 잘못된 제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