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1924-부드러움: 최선의 미덕?
10년마다 한 번씩 내놓는다는 진로의 한정판 소주 1924를 마셔보았다. 이번 건 90주년 기념으로 39,000원(발매시 기사에는 23,000원이었다고 들은 걸로 기억하는데, 몇몇 기사를 찾아보니 가격에 대한 언급이 없다). 숙성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는 것으로 보아 때에 맞춰 적당히 만들어 내놓는 듯. 냉동실에 두었다가 모처에서 과메기-문어 숙회-백고둥-새우구이-생태 지리의 한식 해산물 코스에 곁들여 보았는데, 딱히 못마땅한 구석 없이 그럭저럭 어울렸다. 다만 왜 이런 술엔 꼭 부드러움만을 강조하는지 그건 좀 이해가 어려웠다. 그저 술술 잘 넘어가면 좋겠지만, 곡물 증류주의 미덕이 비단 부드러움 뿐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부드러움을 강조하면 대부분 정말 적당히 부드럽기보다 선을 넘어 밋밋하고, 향 또한 거의 없애버린다는 느낌으로 지워버리는 경우가 많다. 나는 목에서 넘어갈때 어느 정도의 ‘bite/kick’이 있는 걸 더 선호한다. 본의 아니게 보드카의 맥락을 자꾸 생각하게 되는데, 한참 부드러움을 최고의 미덕인 양 내놓았던 그레이구스나 시락 같은 부류에서 별 재미를 못 느꼈던 것과 같다. 더군다나 이 술은 35도. 이 또한 부드러움을 추구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증류주치고는 역시 어중간하다. 일행은 물을 좀 타서 10도대 후반이나 20도대 중반의 희석식 소주처럼 마셔보라는 의도가 있을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그렇게 마셔도 딱히 매력적이지 않았으며, 40도에도 그건 충분히 가능하다. 게다가 기억이 맞다면 화요만큼은 향을 지워버리지는 않았지만 그 부문으로 아주 매력적이지는 않다. 물을 타도, 또한 온더록스로 마시더라도 얼음이 녹으면서 향이 아주 매력적으로 피어난다거나 할 것 같지 않다. 최선은 그냥 스트레이트인듯.
뻔한 이야기지만, 국산 술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적어도 한 번쯤은 마셔볼만 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강조하는 건 ‘한 번쯤’이다. 어차피 한정판매(그러나 마트에는 아직 재고가 남아 있다)이기도 하지만, 한정판이니 진로니 소주니 하는 맥락에서 들어내고 본다면 비슷한 가격에 선택지가 다양하기 때문. 한 번 마셔보았으니 됐고, 일반적인 경우라면 쉽게 마트에서 살 수 있는 압솔루트를 냉동실에 두었다가 마시는 쪽을 택하겠다. 하지만, 최소한 마트에 있는 재고가 금방 없어지도록 호기심에 한 번씩 시도해볼 수 있을 정도의 가치는 병 가운데 크게 박힌 두꺼비 때문에라도 있을듯.
진로에서 처음 내 놓은 소주(증류식)가 35도라서 35도로 나온 것이 아닐까요?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다만 어중간하다는 생각은 여전히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