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레이 페라이어&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더 필즈 협연 후기
클래식 연주를 보러간 적이 있던가. 구반포에서 실수-반대방향 정류장에서 기다렸다-로 406을 한 대 놓치고는(그것도 눈 앞에서!), 생각보다 긴 시간 다음 버스를 기다리며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없다. 유일하게 기억나는 게 수원 시민회관에서 어머니와 함께 보았던 기타리스트 리오나 보이드의 공연이었던 것 같다. 중학교 1학년이었던가. 그나마 마그네틱 필즈의 공연이 공연장만 클래식을 위한 것이었으리라. 공연 보는 걸 꽤 좋아하면서도 여태껏 이렇게 살았던 건, 보고 싶어도 뭘 보아야 할지 몰라서일 것이다. 물론 지금도 아는 건 전혀 없다.
그렇게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머레이 페라이어의 공연을 보러 갔다. 그는 그나마 이름을 알고 음반도 듣는, 몇 안 되는 연주자다. 몇 번 잡담을 통해 밝혔다고 기억하는데, 나는 피아노와 밥벌이의 연결 고리를 끊은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물론 내가 피아노를 쳐서 돈을 번 것은 아니지만… 가족의 생계라는 것이 한두 대도 아닌, 몇 대의 크고 무거운 악기가 동시다발적으로 만들어 내는, 음악 아닌 소리였던 시절을 십 수년 보내고 나면 음악이 음악으로 다시 들리는데 시간이 꽤 걸리게 마련이다. 엄살인가.
어쨌든, 아는 게 없으니 별로 할 말도 없다. 또한 이상하게도 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두 시간 가까운 공연이었으니 분명 시간 축 위에서 선과 같은 경험이어야 하는데, 마치 점처럼 남아 있다. 그냥 아주 잠깐, 어딘가 휩쓸려 갔다가 또 휩쓸려 돌아온 느낌. 어쩌면 급하게, 미친듯이 교정지를 끝내 부랴부랴 보내고 서둘러 밥 지어먹고 갔다가 술에 적당히 취해 돌아온 탓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렇게 전체가 모호한 가운데, 그가 피아노에 손을 올려 놓는 순간 결코 생기가 없지 않았던 분위기가 확 살아나는 느낌은 굉장히 선명하다. 원래 이런 연주는 그런 맛으로 보는 것인가. 물론, 알리가 없다. 좌우지간 ‘즐거운 경험이었다’라고만 말하기엔 뭔가 엄청난 기억이었고, 이제 표값 카드 할부 갚는 일만 남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비싼 표를 질렀더니. 그래도 기꺼이 카드 할부 또 갚을 수 있으니, 다음에는 독주회로 찾아와 주시기를.
[PROGRAM]
멘델스존 신포니아 7번 라단조
모차르트 : 피아노 협주곡 21번 C장조 K.467
-인터미션-
바흐 건반 협주곡 7번 사단조 BWV 1058
하이든 : 교향곡 94번 <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