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아이스크림 베이스
사실 아이스크림 정도 만드는 건 따로 글까지 쓸 이야깃거리가 못된다. 다만 너무나도 오랫동안 만들지 않았으므로 오늘만 예외인 것. 왜 만들지 않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게을러서? 그거와는 조금 다르다. ‘이야깃거리가 못된다’고 말한 건 이제 딱히 큰 일이라 생각하는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게을러서 못 만들 건 아니라는 말이다. 몇 줄이면 설명할 수 있다. 기본 레시피는 외우고 있으니까. 냄비 하나, 대접 두 개를 준비한다. 하나의 대접에 크림 250g(한 팩의 절반, 따라서 눈대중 가능)을 담고 그 위에 체를 받친다. 나머지 크림과 우유 250g, 설탕 150g과 소금 약간을 냄비에 담아 가장 약한 화구의 가장 약한 불에 올린다. 나머지 하나의 대접에는 계란 노른자 여섯 개를 모아 거품기로 푼다. 우유의 온도가 올라가면(끓으면 안된다) 한 국자 떠서 노른자에 섞는다. 또 한 국자 더해 저은 뒤 그걸 냄비에 더한다. 역시 가장 약한 화구의 가장 약한 불에서 스패출라로 저어가며 익힌다. 점도가 올라가 베이스가 스패출라에 막을 입히고, 그걸 손가락으로 훑었을때 자국이 남을 정도가 되면 체를 올려둔 크림 위에 부어 잘 젓는다. 식으면 냉장실에 넣는다. 아이스크림 제조기의 사양에 맞춰 돌린다. 냉동실에 다시 얼린다. 끝.
하여간 이렇게 별 것 없는데 한 번 만들지 않다보니 관성이 붙어서 크림만 사다놓고 안 만들고, 또 크림만 사다놓고 안 만든지가 6개월은 된듯. 이러다 영영 안 만들다가 죽겠다 싶어 열두 시 다 된 시각에 꾸물럭거리며 만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말 채 십 분도 걸리지 않아 허무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이런 걸 열심히 만들 마음의 여유는 없다. 한 일주일 정도 더 쉬다가 다음 책 쓰기에 들어가려던 찰나, 갑자기 교정지가 아주 빡빡한 일정으로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보다 전에 정해놓은 외고의 마감까지 맞물린 상태라 엎친데 덮쳤다. 또한 작업 환경 이전 및 집안 청소도 하다 말았다. 하루 종일 일한답시고 집에 앉아 있으면 종종 정리하다가 말아서 평소보다 더 번잡스러운 집구석 꼬라지에 울화통이 갑자기 치밀어오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어쨌든, 아이스크림 이야기나 마저 하자. 위에서 읊은 베이스엔 적당히 어떤 재료라도 섞어 맛을 낼 수 있다. 가장 속편한 건 역시 바닐라. 추출액만 써도 대세에 지장 없고, 굳이 바닐라 빈을 쓰겠다 싶으면 세로로 반 갈라 긁어서 우유+크림을 끓일때 한데 끓였다가 30분 정도 우러 나오도록 두면 된다. 이번엔 홈플러스에서 할인가에 집어온, 죽음의 로터스 스프레드를 두 숟가락 섞었다. 재료 등등의 측면에서 거슬리는 구석이 분명 있지만, 그 표정 자체는 역시 식품공업의 승리다. 다음 세상에는 살 안 찌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소파에 누워서 땅콩버터와 누텔라, 로터스 스프레드 같은 것들이나 번갈아가며 퍼먹고 살았으면 좋겠다. 인생 별 것 있느냔 말이지. 입맛은 주관적이라며. 아아무런 의미가 없다. 음식 글을 쓰라면 중학생 일기 같은 문장을 더듬더듬 늘어놓다가 막판에 가서 ‘오오 글을 쓰는 순간에도 침이 고이는 구나. 000 먹고 싶도다!’로 끝나는 게 태반인 현실에서 뭐가 그렇게 의미 있겠나. 오오, 정말 글을 쓰는 순간에도 입에 침이 고인다. 쓴 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