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동] 바닐라 키친-디저트와 후각적 요소의 부재, 가니시의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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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점부터 이야기해보자. 잘 만들었다. 한마디로 달고 부드럽다. 너무 단순한 평가 아니냐고? 당연히 맞다. 하지만 그것조차 디저트답게 맞춰 내는 곳이 생각 외로 드물다. 거의 언제나 뻣뻣하고, 거의 언제나 밋밋하며 느끼하다. 당신이 단백질 중심의 끼니 대신 탄수화물, 특히 당으로 끼니를 채우겠다면 그건 자유지만, 그걸 위해 디저트가 달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이건 언제나 식사의 끝에서 조금만 먹어 입을 가시는 음식이다.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지방과 설탕을 아껴 쓸때 디저트는 뻣뻣하며 느끼하고, 그럼 먹어야 할 이유를 잃는다.

한편, 단점 또한 여느 양식당 또는 베이커리 등등에서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후각적 요소의 부재다. 스파이스가 없다. 언제나 말하지만 스파이스 또는 허브를 활용한 후각적 요소의 조정은 그 이전까지 똑같은 조리 과정을 거친 음식에 드러나게 다른 표정을 불어넣을 수 있다. 이는 우리가 흔히 ‘맛’이라고 말하는 것이 사실은 냄새라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다. 게다가 말한 것처럼 디저트의 핵심은 지방, 대부분의 스파이스가 지용성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를 쓰지 않는 건 굉장히 큰 기회 또는 잠재력을 그냥 날려버리는 것과 다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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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몽 머랭 케이크의 경우 다른 가게의 케이크 대부분보다 (굳이 수치화하자면)  1.5배 정도 달지만, 자몽 켜가 지니고 있는 시트러스 특유의 쓴맛이 꽤 치고 나오는 편이라 균형이 잘 맞고, 그 전체를 머랭이 잘 감싸서 아우른다. 그 뒤에 향만 엮어준다면 전체의 여운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데, 쉽게 찾을 수 있는 재료 가운데는 생강이 한 가지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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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바나나 케이크는 아무래도 그 제누아즈 류의 시트보다 퀵브레드에 가까우므로 좀 덜 부드럽고 입자가 더 굵은데, 살짝 질척한 크림이 질감의 균형을 잡아준다. 바나나를 카라멜화하며 뉴텔라를 쓴다고 들은 것 같은데, 둘 다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한편 이쪽은 케이크의 특성상 짝지어 줄 수 있는 스파이스의 가능성이 더 넓다. 기본의 기본인 계피를 좀 더 적극적으로 쓸 수도 있고, 너트멕이나 올스파이스, 클로브 등도 적절히 조합하면 계절과도 더 잘 어울릴 수 있다. 한편 바나나는 견과류와 언제나 좋은 짝이므로 아몬드 케이크를 응용해 구운 아몬드를 갈아 적절히 더하는 것도 좋다. 물론 열대과일이므로 럼 등 또 다른 가능성이다. 특유의 냄새 없는 음식 문화가 없고, 한식도 김치, 된장 등 예외가 아니므로 왜 디저트, 또한 넓게 보아 서양 음식 자체에서 냄새의 적극적인 활용을 찾아보기가 어려운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우리 음식이 아니니까? 요즘 자기 음식을 선보이는 셰프나 파티셰가 거의 대부분 교육기관을 거쳤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설득력이 약하다. 이러한 향신료의 기본 짝짓기 및 활용은 모든 레시피에서 아주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양파 수프의 로즈마리나 타임 등등). 따라서 설사 우리에게 낯선 요소라고 해도 학습의 자료는 차고 넘치니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아니면 기본적인 맛과 질감의 완성도를 구현할 수 있는 솜씨가 의미를 잃는다.

두 번째는 가니시, 즉 고명의 논리다. 기본적으로는 조화를 이루지 않은 고명, 즉 그저 보기에만 좋은 건 얹을 필요가 아예 없다고 생각한다. 케이크 자체만 맛있다면 충분하니 노동력을 쓸데 없는데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위터에서 웃음거리가 된 제이브라운의 에클레어처럼, ‘질보다 양’의 논리에 휘둘린다면 원래 케이크의 맛이나 질감과는 전혀 무관한 고명을 얹는 것이 요즘의 추세이기도 하다. 그 자체로 아예 독립적인 음식인 마카롱이나 오레오 등이 예다. 이날 먹은 두 종류 케이크의 가니시는 그 정도로 무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는 있어 보였다. 일단 자몽 케이크의 경우 저며 설탕을 입힌(candied) 자몽 조각은 지나치게 두꺼워 케이크의 질감과 어울리지 않았으며, 또한 전체의 단맛을 감안할 때 거의 설탕의 혜택을 입지 못한듯 보였다. 케이크의 맛이 좋으므로 굳이 얹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다. 한편 바나나 케이크에 얹는 바나나 칩 또한 두께가 케이크의 전체 질감에 비해 두꺼우며(기성품?), 크림의 수분을 흡수하므로 물러지고 흡수하지 않는다면 딱딱하다. 함께 얹은설탕 입힌 피칸까지 감안하면 들인 노동력 만큼의 효과를 주지 못하므로, 차라리 바나나 칩과 견과류(피칸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단가가 높을 뿐더러 벗기기 어려운 껍질이 방해가 될 수 있다)를 갈아 튀일 같은 쿠키를 만들어 얹은 것이 나으리라 본다.

마지막으로 전체의 단맛 수준. 물론 두 조각 밖에 먹지 않았으니 후보정이 필요하겠지만 단맛의 격차가 좀 있다. 둘의 평균을 내면 딱 맞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 물론 모든 디저트가 지닌 단맛의 키가 아주 똑같아야 할 이유는 없겠지만 레스토랑의 미덕이 일관성이어야 한다는 걸 감안한다면 전체의 기본 표정이 공감대를 형성해야할 필요는 분명 있다.

*사족: 커피도 온도와 맛 모두 큰 결함은 없었다.

2 Responses

  1. 양파 says:

    태그 덕분에 한번 웃고 갑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