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얼 무용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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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아주 오랜만에 콘푸로스트를 먹었다. 에너자이저 나이트레이스에 참가한 덕분. 간만에 그, 연구실에서 심혈을 기울여 보정한 대량생산식품의 맛을 보았다. 적당히 달면서도 그 여운이 만만치 않은 짠맛과 연결된다. 덕분에 물리지 않고 계속 주워 먹을 수 있다. 데이비드 장의 모모푸쿠는 이 콘푸로스트를 우유에 우려 만든 디저트를 대표 메뉴로 삼았다. 물론 뭘 어떻게 먹어도 호랑이 기운은 절대 솟아나지 않는다. 정제탄수화물의 헛된 포만감이라면 또 모를까.

최근 동서식품이 자체 검사에서 대장균이 검출된 시리얼을 섞어 제품화했다가 적발된 일이 있었다. 한국 기업의 윤리에 큰 믿음이 원체 없으므로 그쪽으로는 ‘또 한 건 했군’ 정도의 생각 밖에 나지 않지만, 그 중심에 있는 시리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핵심은 간단하다. 이걸 꼭 먹어야만 하는가? 과연 아침 시리얼이라는 음식군이 총체적으로 합당한 아침식사 거리인가? 그렇게 생각하기가 어렵다.

그건 시리얼 탄생의 역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래엄 밀가루를 발명한 목사 실베스터 그래엄이 있다. ‘외식의 품격’에서도 잠깐 언급한 것처럼, 요즘은 콘푸로스트나 마찬가지로 대량생산 과자로 유명한 그래엄 크래커의 원료는 사실 철저히 종교에 입각한 건강 식생활을 위한 것이었다. 그 그래엄 밀가루로 현재 시리얼의 원형인 ‘그래눌라(Granula)’를 처음 만든 사람은 실베스터 그래엄의 추종자였으며, 이를 현재의 시리얼로 만든 사람들이 ‘켈로그’와 ‘포스트’다.

시작은 켈로그가 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켈로그 형제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신자이자 의학박사인 형 존 하비 켈로그는 미시건 주 배틀 크릭에서 배틀 크릭 요양소를 차려 교리에 입각한 식생활 등을 통한 치유를 실행에 옮겼다. 목표 가운데 하나가 자위와 변비의 치료였는데, 그 원인이 섬유질의 결핍이라 보고 스스로 개발한 그래눌라를 보조제로 제시하려 시도했다. 그 결과 콘 푸레이크가 탄생했는데, 처음엔 잘 팔리지 않았다. 이후 온전히 종교와 치유 목적으로 쓰려는 형 존 하비와, 설탕을 넣어 상업적인 제품을 만들려는 동생 윌리엄 사이에 이견이 생겼고, 동생이 주도권을 손에 넣어 현재의 켈로그로 발전했다.

한편 이번에 문제가 된 동서식품이 라이센스 생산하는 포스트의 창업주 찰스 윌리엄 포스트는 요양차 배틀 크릭에 들렀다가 아이디어를 얻고, 자신도 시리얼 제조 판매에 뛰어든다. 마케팅의 귀재라는 당시의 평가처럼, 그는 주로 효능-병을 낫게 해준다는-을 내세워 ‘그레이프 넛’ 등의 시리얼을 팔았다.

그래서 따져보면 시리얼의 현재를 일군 양대 원동력은 종교와 마케팅이며, 물론 둘 다 건강을 목표로 삼고 있다. 하지만 정말 시리얼이 건강식품인가? 빠다코코넛 같은 과자를 우유에 적셔, 또는 말아 아침으로 먹으라고 하면 대부분 ‘아니, 과자를 아침부터…’라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리얼이 그런 과자류와 크게 다를까? 탄수화물+당이므로 결국 당이며, 과자와 또 달리 건강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더 능동적으로 보정할 수도 있다. 태생도 또 실제 본성도 이런 음식을 마치 건강식품인듯 먹는다면 시리얼이 처음 나온 100년 전의 가치를 별 다른 검증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나 다름 없다. 동서식품 적발건을 계기로 사람들이 시리얼 무용론에 대해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맛이 좋아 먹는다면 그건 개인의 선택이지만, 건강을 위해 먹는다는 생각을 한다면 이미 100년 전 흥한 라이프스타일 마케팅에 넘어가는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