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집 꿀 쟁점 정리
모두가 아무 것에도 안심할 수 없는 사회가 된 가운데 일주일에 한 번 먹어도 많다고 할 수 있는 벌집 아이스크림에 대한 반응이 이렇게 폭발적이라니 놀라서 이것저것 찾아보았다. 어제 프로그램의 게시판에 올라온 반박글을 보고 조선밀봉기료원에 전화해 사모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채밀(꿀만 거두는 것)용 벌집에는 파라핀 소초를 쓰고, 벌집까지 먹는 경우는 밀랍 소초를 쓴다. 그에 대한 설명은 바로 위 링크의 반박글에서 전문가가 자세히 설명했으니 그걸 참조하면 된다.
2. 밀랍 소초는 채밀용 벌집에서 추출하므로, 소초에서 떠내어 추출한다고 해도 파라핀이 추출될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사모님은 누가 ‘100% 순밀이냐?’고 물어보았길래 ‘순금도 99%?라고 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고. “순밀 98~99%” 이라고 대답할 수는 있다고).
3. 그래서 병꿀/벌집꿀에서 파라핀이 검출될 가능성은 있지만 미량일 확률이 높다.
4. 또 다른 가능성도 있다. 벌집 아이스크림의 인기로 인해 물량이 딸리자 벌집 매입 납품 업자들이 2~3월에 월동 먹이판(채밀용-파라핀 소초 사용)이라도 납품해달라고 요구했다는 것. 이에 양봉업자들이 응해 납품했다면 역시 파라핀이 검출될 가능성이 있다. 그에 대한 글은 여기에 달린 답글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아이스크림 판매 업체는 ‘우리는 순밀 소초로 만든 꿀이라고 알고 받았다’고 답할 확률이 높겠지만. 이건 아무의 책임도 아니거나, 소비자까지 한꺼번에 싸잡아서 책임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
6. 벌집의 빠른 수확을 위해 두꺼운 소초를 쓸 경우 밀랍이라도 씹힐 수가 있다. 하지만 기초만 얇게 깔아주고 그 위에서 벌집을 떠낸다면 씹힐 확률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7. 게다가 어쨌든 파라핀은 인체에 무해하다. 문제는 파라핀 사용 여부가 아니다. 그건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등급(식용도 존재한다. 치즈 등의 포장 재료)을 확인하는 게 맞다. 색소도 마찬가지다. 비싼 마카롱도 진한 색을 내려면 색소의 힘을 빌어야 하는데, 그게 인체에 유해하겠나?
여기까지는 들은 이야기고 내 생각을 보태자면, 가장 큰 문제는 “천연” 재료를 찾는 사람들의 말도 안되는 욕심이다. 키운 소에서 짜낸 우유와 인위적인 환경에서 채취한 꿀로 만들어 현대 과학의 산물인 기계로 만든 아이스크림에서 “천연”을 찾는다는 게 말이 되나? 가축은 이미 고기든 우유든 최대한으로 뽑아내기 위해 오랜 세월에 걸쳐 극단적인 품종 개량을 거쳤고, 양봉 또한 자연의 벌집을 따서 꿀을 짜내는 게 아니다. 소비자가 부화뇌동하니까 매체에서도 저런 식으로 선정적인 ‘프레이밍’을 통해 프로그램을 뽑아낸다. 그래서 생산자가 망가지면 그 손해는 다시 고스란히 소비자에게로 돌아간다. 벌집 아이스크림으로 인해 망해가던 양봉업계가 활기를 좀 띄었는데 이번 방송으로 난리도 아니라고 한다. 전체적인 흐름은 우리가 늘 겪는 모든 일에서 너무나도 흔한 패턴이라 딱히 놀랍지는 않지만 왜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만 난리가 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말은 참으로 무책임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저렇게 사안을 단순하게 만들어 프로그램을 내놓아도 전혀 의심조차 하지 않고 받아들인 다음 불특정 다수를 향해 분노를 쏟아낸다는 것. 하다 못해 인터넷 검색만 좀 해보아도 양봉의 파라핀 사용에 대한 자료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살균소독을 위해 쓰고 뉴질랜드에서는 파라핀 코팅된 설비로 양봉을 해도 유기농 인증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관련 글). 그런 의미에서 이영돈 PD는 이런 혹세무민 프로그램 좀 그만 만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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