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코이-결핍의 디저트
디저트의 생명은 세심함 또는 미묘함이다. 단백질이나 섬유질과 달리 물성의 변화를 통해 부피(mass)를 확보한다. 그래서 이젠 자기의 자리인 일반 요리(savory food)로 돌아간 전 wd~50의 패스트리 셰프 알렉스 스투팩은 ‘디저트는 가장 변성된 음식(denatured food)’라고 말한다. 바로 그 변성의 과정에서 조작을 통해 세심함과 미묘함을 원하는 대로 불어넣을 수 있다. 건축이나 조형적인 형태 잡기가 디저트에서 더 발달한 것도 같은 이치다.
그러한 측면에서 “자유영혼의 성지” 경리단길 초입 릴리코이(lilikoi, 하와이말로 패션프루츠)의 디저트(각 3,000~4,000원대)는 결핍이 너무 쉽게 눈에 들어온다. 모양과 맛 양쪽 측면 모두에서 만족감을 주지 않는다. 무엇보다 품목 선정의 의도가 궁금했다. 왜 미니타르트와 슈, 젤리일까. 혹 작고 독립적인 개체이면서도 만들기가 전형적인 ‘프티 가토’류보다 쉬워서 그런 건 아닐까. 개별 및 독립 품목으로서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소위 말해 ‘그림이 나는’ 마카롱마저도 비교해보면 타르트나 슈보다 손이 더 많이 간다. 물론 젤리는 말할 것도 없고. 신세계 본점 꼭대기의 페이야드에서도 늘어놓은 거의 대부분의 개별 품목이 케이크처럼 보이나 사실 그보다 쉬운 타르트 류인지라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곳의 디저트는 그보다도 더 개별 품목으로는 의미가 없다.
한편 의도보다 맛은 더 떨어진다. 이전 마카롱의 포스팅에서도 크러스트(또는 파테 수크레)의 딱딱함을 지적했는데 사진 맨 왼쪽 패션푸르트 타르트의 크러스트는 그보다도 더 완성도가 떨어진다. 마카롱의 것과 비교해서 색이 덜 나는 것으로 보아 더 짧은 시간 동안 구웠을텐데 더 딱딱하다면 반죽이 손을 많이 타 글루텐이 필요 이상으로 발달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거기에 필요 이상의 두께까지 감안한다면 과연 이러한 ‘미니어처’류를 완성시킬 기술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 간다.
한편 젤리는 흔히 쓰는 영어 표현을 빌자면 ‘runny,’ 즉 형태조차 유지하지 않을 정도로 묽고 흐르는 느낌이었는데 물론 이 상태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젤라틴 또한 액체를 미묘한 고체로 만드는 첨가물이므로 만드는 이의 설정에 따라 이 정도에서 아주 단단하고 탱탱한 질감까지 자유로이 연출 가능하다. 하지만 만약 이 질감이 철저하게 의도한 것이었다면 왜 숟가락을 줬는지 그걸 이해할 수 없었다. 애초에 숟가락으로 떠 먹기 불편한 질감인데다가 작고 깊이가 없는 1회용 요거트 숟가락로는 한층 더 떠먹기가 과제였다. 그래서 잔을 들고 마셔보았는데 풀 비린내와 혹 가루 제품은 아닐까 싶은 차의 향이 두드러지는 단맛과 만나 균형이 맞지 않았다. 또한 젤리라면 이보다 차가워야 되는데 거의 실온에 가까울 정도로 미지근했다. 애초에 균형을 못 맞춘 건지, 아니면 더 찬 온도에서 먹도록 설정했는데 어떠한 이유에서 온도가 맞지 않아 그런 것인지 분간이 어려웠지만 젤리의 상큼함, 시원함 등등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개중 가장 평범한 슈는 위에 얹어놓은 ‘fruit leather’ 질감의 장식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카롱에서도 에클레어 등 슈의 윗면에 바르는 초콜렛 글레이즈를 따로 만들어 굳힌 장식으로 대체하는데 이는 최소한 얇고 바삭해서 슈와 크림의 질감에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그걸 노렸는데 실패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데 내가 헤아리지 못하는 것인지도 판단할 수가 없었다.
디저트 전문 매장도 계속 생기고는 있지만 일단 시각적으로도 새로움을 주는 곳이 없다. 사실 그만큼 디저트를 잘 만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 변성의 과정은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업-휴지’의 단계를 여럿 거치는데, 한 단계에서 생긴 시행착오는 각 단계를 거쳐 쌓이며 더욱 증폭되어 최종 결과물을 망칠 가능성을 더 크게 만든다. 일단 눈으로 그렇게 느꼈고, 먹어본 바로도 이곳의 디저트는 아직 독립적인 가게의 판매용 제품이 될만한 완성도를 갖추지 못했다. 요즘은 못 만든 음식을 먹고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오랜만에 그럴 위기를 잠시 맛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몽고네 생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