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 없는 29시간 통닭

동물, 특히 가금류를 통으로 익히는 조리법은 태생이 불완전하다. 부위마다 근육의 성질이 다르니 조리도 진도가 다르게 나가기 때문이다. 다릿살을 완전히 익히기 위해서는 가슴살을 희생시켜야만 한다. 그래도 동물을 통으로 냈을때의 그림이 좋으니 어느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흔해빠진 닭 한 마리를 통으로 굽는데도 굉장히 많은 방법론이 돌아다닌다. 그저 단순하게 바로 오븐에 넣고 굽는가 하면, 이번에 시도해본 <Modernist Cuisine at Home>의 레시피처럼 다소 귀찮고 긴 준비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도 있다. 바로 그 과정이 궁금해서 딱히 먹고 싶은 생각이 없음에도 도전해보았다.

이 통닭은 다음과 같은 조리과정을 거친다.

1. 손질: 가슴에 손을 넣어(;;;) 위시본을 들어낸다. 열전도가 잘 되어 조리를 돕고 이후 살을 발라내기 편해진다. 발목을 빙 둘러 칼금을 넣은 뒤 당겨 관절을 잘라낸다. 참고로 백화점에서 만 원 훨씬 넘게 주고 산 닭은 손질 상태가 엉망이었다. 먹으라는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내장도 그대로 들어 있었고 속을 씻은 것 같지도 않았다. 등쪽 껍질이 찢어져 있었으며 목도 잘라내야만 했다.

2. 염지액 주사: 목표 부위에 직접 염지액을 주사해 효과를 높인다. 가슴과 다리에 정해진 양을 주사한다. 용량이 크고 바늘이 달린 주사기를 찾으려고 약국 몇 군데를 돌았다. 염지액의 목적은 간보다 단백질을 변형시켜 수분을 많이 머금어 오랜 조리에도 부드럽고 촉촉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3. 데치기: 기름을 가셔내고 껍질을 팽팽하게 만들기 위해 끓는 물에 20초 데쳤다가 얼음물에 20초 담그기를 세 번 반복한다.

4. 간장 바르기: 물기를 완전히 닦아내고 간장을 골고루 바른다.

5. 휴지 및 건조: 식힘망에 얹어 덮지 않은채로 냉장고에 하룻밤~24시간 두어 물기를 완전히 말린다.

6. 굽기: 넓적다리에 온도계 탐침을 꽂아 62도 오븐에 3시간 가량 굽는다. 목표 온도는 60도대.

7. 껍질 바삭하게 만들기: 브로일러에 등과 가슴쪽을 각각 5분 이상 굽는다. 집의 토스터 오븐으로는 역부족이라 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자, 그래서 결과는? 웬만하면 치킨을 시켜 먹자.

 by bluexmas | 2013/07/15 17:54 | Taste | 트랙백 | 핑백(1) | 덧글(11)

 Linked at All-Season’s Lif.. at 2013/10/19 18:35

… 내려간 음식점 포스팅들도 좋았지만, 커피나 단백질 등 구체적 재료에 대한 글들도 매우 자세하게 쓰셔서 참 재미있게 읽었었다. 아, 그리고 솔직함이 묻어나는 요리 포스팅도 이 블로그만이 가지고있는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그의 포스팅들을 즐겁게 봐왔기에, 책으로도 만나면 어떨까 … more

 Commented by 笑兒 at 2013/07/15 18:09 
음….그냥, 1마리 통으로 사다가,

적당히 기름제거하고, 껍질과 몸통사이에 이것저것 고루 발라준후 (버터, 마늘, 허브, 소금, 후추 등)

오븐에서 고이고이 2시간 가량 구워내는 가장 간단한 레시피가 더 나아보이는건 ..)a

착….각 아닌거지요 ^^?

 Commented by gini0723 at 2013/07/15 18:14 
허 허허 … 노고에 비해 맛이 별로였나보군요 (…)

 Commented by grildrig at 2013/07/15 19:55 
사진으로만 봐서는 맛있어보이는데요…보기와는 다른가봐요.

 Commented by Ithilien at 2013/07/15 20:24 
마지막 결론이 참 슬프군요. 품에 비해 맛이 그리 뛰어나지 않았던건가요?

 Commented by 먹보 at 2013/07/15 21:56 
웃프네요. 29시간 고생했는데 결과물이..치킨 전문점의 노하우가 있는거겠죠.

 Commented by highseek at 2013/07/15 22:16 
웬만하면 치킨을 시켜 먹자 ㅠㅠ

 Commented by costzero at 2013/07/15 22:19 
절대공감

고등어 구이도 쉽지 않더군요.

지금은 전기오븐을 반찬가게에서 산 생선을 덥히는데만 사용합니다.

 Commented by 번사이드 at 2013/07/15 22:40 
시중 닭들이 고만고만해서..사실 공들여도 큰 차이 내기 쉽지않죠.

전 그냥 태국음식점에서 가이얌(태국식 오븐 닭구이.속 간은 잘 되어있지않음) 주문해 양념 찍어먹습니다~

 Commented by 지화타네조 at 2013/07/15 23:13 
기승전배달

 Commented by 애쉬 at 2013/07/16 01:48 
음..아쉽지만

원래 닭의 퀄리티도 한 몫 했나봅니다.

중국식으로 끓는 기름을 끼얹어서 표면을 익히는 과정을 넣어보는 건 어땠을까요?

한다면 오브닝의 전이 좋을까요? 후가 좋을까요?

뭐 시도하는 요리가 다 맛있을 수는 없지요^^ 그만큼 더 배운 수업료 내고 닭요리도 생겼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ㅎㅎㅎㅎ

 Commented by 위장효과 at 2013/07/24 02:00 
용량 큰 주사기 찾으시려면 차라리 대형병원앞에 있는 의료기전문점을 급습해보세요. 그러면 20CC 이상 물건도 쉽게 보실 수 있습니다. 대신 바늘은…낱개로 안 판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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