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동] TOC TOC- 음식은 음식, 그림은 그림

현대건축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장식적인 요소의 배제였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스승인 루이스 설리번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고 말했고, 이에 영향을 받은 오스트리아의 아돌프 로스는 <장식과 죄악>이라는 책을 펴냈다. 간단히 말해 단순히 장식적인 요소는 쓸모 없다는 주장이었다.

음식에도 마찬가지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아예 먹을 수 없거나, 먹을 수는 있되 맛보다는 장식에 치우쳐서는 안된다. 물론 아름다움을 추구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보기에 당연히 좋되 기능에도 충실해야 한다. 중간지점에서 동시에 만족 가능한 지점을 찾아 접시에 담는게 요리를 고안하는 셰프의 역할이다. 그래서 어렵다.

“캐주얼 다이닝” 톡톡(TOC TOC)에서 저녁을 먹었다. 먹고 돌아오는 길에 저런 건축의 ‘만트라’가 자꾸 생각났다. 코스를 내지 않는 곳이라 단품을 몇 가지 시켰다.

직접 굽는다-칭찬 아니다. 단지 사실을 나열할 뿐-는 빵은 평범한 수준이었다. 지방이 들어가지 않은 빵은 껍데기가 얇으면서도 생각보다는 질겼다. 조금 더 가볍고 바삭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돼지 안심 햄(Pork Loin Ham, 모든 음식 이름은 메뉴에 영어로 표기)>은 세 가지 가운데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요리였다. 일단 중심인 “햄”이 문제였다. 지방이 전혀 없어, 돼지 안심은 맛있는 부위가 아니다. 전통적으로 가공육의 대상이었던 이유가 있다. 냉장시설이 없던 시절, 돼지를 잡아 기름기 많고 맛있는 부위를 먹은 뒤 남아 처치가 곤란한 고기를 절여 훗날을 기약했을 가능성이 높다. 맞다, 가공육이라면 일단 소금간이 넉넉해야 한다. 요즘이야 냉장시설이 발달했으니 부패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맛은 신경써야 한다. 간이 아주 약해 밋밋했다.

저민 두께도 문제였다. 이런 부위를 낸다면 아주 얇아야 한다. 그야말로 종잇장 같아야 한다. 그나마 기름기가 더 많은 다리(사실 이게 진짜 ‘햄’이다. 부위의 명칭이기 때문이다)로 만든 프로슈토나 하몽도 기계로 아주 얇게 저민다. 두꺼우면 질기기 때문이다. 어림짐작으로 1.5mm 쯤 되도록 두꺼웠고, 따라서 질겅질겅 씹어야만 했다.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건 콘셉트였다. 왜 하필 콘소메인가? 베트남 쌀국수 등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에 담근 고기가 싫다는 이유를 댄다. 완전히 공감한 적이 없었는데, 이걸 먹으니 그 기분을 알 수 있었다. 질겅질겅 씹어야 하는 고기를 국물에 담가 놓으니 그 식감이 전혀 유쾌하지 않았다. 차라리 국물이 없었더라면 “페타(메뉴에는 그렇게 설명하고 있지만 리코타에 가까웠다. 페타 특유의 부슬거리는 질감이 아니었을 뿐더러, 소금물에 담근 짠맛도 전혀 없었다. 차라리 진짜 페타였다면 간이 맞아 고기의 느글거림을 덜어주었을 것이다)” 치즈의 부드러움이 고기를 상쇄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체를 물에 담가 놓으니 재료의 장점이 가시고 단점이 한층 더 두드러졌다. 왜 국물인가? 생선에 다시나 콘소메를 깔아 내오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그럴 경우 살이 조각조각 쪼개지는(‘flaky’한) 흰살 생선류가 그 대상이다. 돼지 안심처럼 한 번에 먹을 수 없어 접시에 따로 덜어 나이프로 자를 필요가 없다. 생선의 잠재적 퍽퍽함을 국물로 상쇄하라는 설정이다. 이런 경우라도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수프 수준으로 국물에 재료를 담가 내놓지 않는다. 그저 바닥에 자작자작 깔릴 정도다.

짠맛 만큼이나 신맛의 부재도 뼈아팠다. 서버가 권하는대로 콘소메를 빵에 찍어 먹어 보니 간이 괜찮았으니(첨언하자면 기름기 없는콘소메를 굳이 빵에 찍어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크림 등으로 보다 더 걸쭉한 스프라면 모를까. 우유에 찍어먹는 빵과 물에 찍어 먹는 빵을 비교해보라. 느낌이 전혀 다르다). 간이야 같이 먹으라는 의도라고 생각하고 넘길 수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돼지고기와 함께 떠먹으라고 숟가락을 준 것도 아니니 큰 의미는 없다. 균형을 감안할때 지나치게 매운맛이 강한 꽈리고추의 존재는 완전한 ‘미스 캐스팅’이었지만, 만약 초절임으로 그 매운맛을 상쇄하며 신맛을 주었다면 전체를 아우르는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이게 “튀김”이었다는 건 나중에 메뉴를 다시 확인하고 나서야 알았다. 전혀 바삭하지 않았다. 그랬더라면 무르고 질긴 전체 식감에 균형을 잡아주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이 요리는 완전하고 철저한 실패였다.

존 도리 즉 달고기 튀김을 내는데, 제주도에서 재료가 올라오지 않아 새우로 대체한다길래 주문했다. 옷 역할을 하는 가는 국수는 바삭하고 새우도 잘 익었지만 금새 떨어져버려, 포크와 나이프보다는 젓가락으로 먹는 편이 나아 보였다.

파슬리 소스는 제역할을 해줬지만 오렌지 껍질 콩피는 단맛도 단맛이지만 시트러스 특유의 씁쓸함(긍정적인 의미에서) 때문에 튀김의 곁들이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리고 해산물의 상태가 좋다면 치즈, 특히 파르메지아노 레지아노 같은 건 더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리고 스테이크. 이것이야말로 진정 접시에 그림을 그리는 수준이었다. 물론 그림도 그릴 수는 있다. 음식으로서의 의미가 장식으로서의 의미에 앞선다는 전제 아래서다. 구웠다기보다 데친 것으로 보이는 채소는 소금간도 약했고(거의 전무?), 드레싱을 더하지 않았으니 샐러드의 역할도 못했다. 분명 장식은 장식이되 고기의 맛을 거드는 역할을 해야하는데, 그보다는 장식적인 역할이 훨씬 더 강했다. 접시의 양 옆에 담긴 으깬 감자는, 질감은 훌륭하되 달았다.

스테이크도 내세우는 산지(양평 개군)나 등급(1++)에 비해 조리의 수준이 처졌다. 이 정도의 두께라면 겉의 크러스트가 조금 더 진하고 바삭해야 한다. 여기에서도 손님들이 지진 스테이크를 탔다고 불평해서 저 정도로 조리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속이 익은 상태를 감안한다면 분명히 이보다는 나았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겉의 묘한 질감으로 보아 혹 저온조리 때문은 아닌가 짐작했다. (조리 수준의 차이를 감안했을때) 스테이크, 특히 채끝을 저온조리로 익힐 경우 종종 겉의 식감이 이상해진다. 한마디로 꼭 찝어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너무 오래 익혀 부스러지는 양지머리와 비슷하다(이를 영어로는 ‘chalky’라고 표현한다). 꼭 그런 느낌이 났다.

집에서 저온조리를 해보면 장점 만큼이나 단점도 많다는 걸 느낀다. 특히 겉을 지져야 하는 스테이크의 경우, 진공 포장해 익히면 그 자체의 수분과 기름에 젖어 마무리로 지지기 위해 겉면을 보송보송하게 만들기가 어렵다. 생고기 표면의 물기를 종이행주로 걷어냈을때 보송보송한 그 느낌과 전혀 다르고, 지지기도 더 어렵다. 게다가 전통적인 조리방식으로 익혔을때와 달리 부드럽지만 한편 전체가 독특한 질감의 덩어리(mass)로 변한다. 이는 예전 내한했던 미슐랭 별 두 개 셰프가 저온 조리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라며 말해주었던 것이기도 하다.

디저트. 주방 손이 딸려 정규 디저트는 낼 수 없다고 해서 시켰다. 장기간의 인력 수급이 어떤지 모르지만, 그날 그 순간에만 먹는 손님이 그것까지 이해해줘야 할 필요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만들 수 없다면 차라리 메뉴에서 빼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음식도 자기 표현의 수단인 건 확실하다. 다만 그 선을 그어야 할 필요가 있다. 손님이 경험하고 행복했을때, 한 접시의 요리는 비로소 완성된다. 모든 노력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인 먹기로 수렴하는 만큼, 셰프는 자신이 고안하는 요리가 자기 표현의 수단과 손님의 행복 사이 어느 지점에 자리 잡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어제 먹은 요리 세 접시는 모두 셰프의 욕심 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쳐 있어, 나를 조금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말한다. 음식은 음식, 그림은 그림이다.

사족

1. 서버, 특히 나이가 적어보이는 여자분의 응대는 훌륭했다. 적절한 수준에서의 서빙이 무엇인지 안다는 느낌이었다. 가식에 가까운 존대가 넘치는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적절한 응대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공손한 척 하는 하인 콘셉트거나 매장, 또는 브랜드가 자기 건줄 아는 명품 판매 직원 분위기를 풍긴다. 아니면 나이트 기도거나.

2. 저런 음식을 내고 “캐주얼 다이닝”이라는 콘셉트를 내세우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 레스토랑에서 캐주얼한 요소는 음식과 어울리지 않는 시끄러운 음식과 종이 냅킨 뿐이었다. 얼핏 높아보이는 가격은 요리의 양까지 감안한다면 무리 없는 수준이었다.

3. 홈페이지도 없고, 블로그에도 위치 정보 밖에 없으니 음식에 관한 정보는 어디에서 얻나? 빠워블로그?

4. 몇 일 숙성한 몇 등급 한우, 어느 동네에서 명인이 만드는 장 등, 재료의 수준을 앞세우는 경우를 많이 본다. 물론 좋다. 재료는 좋은 음식의 기본이니까. 그러나 정작 요리가 그 재료의 이름값을 못 살려줄 경우 그 비난은 고스란히 셰프에게로 돌아간다. 능력 딸리는 걸 재료로 덮으려는 시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니, 저렇게 좋은 카메라로 저 따위 사진을 찍어?’, ‘와, 쟤 기타는 깁슨 레스폴 커스텀인데 손은 중국산 에피폰이야. 아깝다, 아까워.’

 by bluexmas | 2013/06/05 12:28 | Taste | 트랙백 | 덧글(4)

 Commented by 알렉세이 at 2013/06/05 18:20 
공감합니다. 좋은 재료가 음식의 질까지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죠. 셰프가 그 재료를 사용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음식을 낼 수도 있고, 재료의 질을 그대로 살리는 음식을 낼 수도 있으며, 완전 망쳐놓을 수도 있으니.

 Commented by bluexmas at 2013/06/11 10:41
그냥 재료만 자꾸 부각시키는 게 영 못마땅합니다.

 Commented by Ithilien at 2013/06/05 21:46 
4번이 심히 공감됩니다. 좋은 재료를 쓰는건 좋은 솜씨를 통해 좋은 맛을 맛보려고하는거지 후달리는 솜씨를 커버하기 위해서 쓰는게 아니지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3/06/11 10:41
아마 자신이 후달리는 존재라고 생각을 못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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