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생 파스타

스파게티 일색인 코리안 파스타의 현실을 준엄하게 비난하는 글을 쓰다가 생각이 나서 오랜만에 생파스타를 해먹었다. 피에몬테 지방의 ‘타야린’처럼 흰자는 빼고 노른자와 중력분, 우유와 올리브 기름 약간을 섞어 반죽했다. 스탠딩 믹서에 파스타 밀대가 있어서 편하지만 이 정도 면이라면, 또 칼국수를 즐겨먹는 우리 민족이라면 밀대만으로도 충분히 밀어 만들 수 있다. 힘이 없지는 않지만 반죽이 워낙 부드러우므로 조금 도톰해도 괜찮다(정말, 서민 음식이라고 손칼국수 싸게 파는 현실에서 왜 생파스타를 안팔지? 이해가 안된다).

생파스타의 진짜 매력이라면 준비가 아주 간단하다는 점이다. ‘면>소스’이므로 기본적으로 파스타의 준비는 복잡하지 않지만, 생면은 더더욱 간단하다. 버터/크림/올리브기름의 지방으로 팬을 달궈 좋아하는 허브의 향을 내고 치즈 약간으로 마무리해주면 된다. 면도 3~4분 이상 삶을 필요가 없으니 간단함에 한 몫 보탠다. 이 파스타는 세이지/크림/브르타뉴 발효 버터로 만든 소스에 버무렸는데 마침 세이지를 산 김에 닭다리살, 지리산 생햄을 써서 솔팀보카 비슷한 걸 만들어 얹었다. 솔팀보카는 대개 송아지 고기를 프로슈토에 싸서 세이지 잎을 얹어 지져 소스를 곁들이는데 닭고기로도 만들 수 있다. 지리산 생햄은 우리나라에서 만든 서양 식재료 가운데 가장 훌륭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100g 17,000원으로 가격이 꽤 높다.

 by bluexmas | 2013/04/12 18:08 | Taste | 트랙백 | 덧글(9)

 Commented by 랜디리 at 2013/04/12 19:52 
안 그래도 아래까지 읽으면서 ‘앗 지리산 생햄 사셨군요!’ 할랬는데 가격까지 친절하게 나와있군요. 요즘 동네 근처에 아주 괜찮은 하우스 맥주집이 생겨서 맥주 마시는 재미가 더 쏠쏠해졌는데, 언제 그런 거 한 번 사 들고 가야겠네요 ^^;

 Commented by 번사이드 at 2013/04/12 21:38 
겉멋은 들어오고 문화 그 자체는 자리잡히지 않았나봅니다.. 일본 로손 편의점에 가니 395엔?인가에 까르보나라 생파스타가 있던데 꽤 잘 만들었더군요~

 Commented by leinon at 2013/04/15 00:56 
피에몬테의 따야린은 달걀과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로 반죽하는 생파스타입니다. 피에몬테는 전통적으로 올리브유를 쓰는 레시피가 없고, 우유를 넣으면 반죽이 너무 단단해집니다.

생파스타 파는 집은 상당히 많구요.

생파스타의 진짜 매력이 준비가 아주 간단하다는 점은 틀렸네요. 거의 모든 파스타는 원래 생파스타로 먹는 것이었고 건조 파스타가 오히려 나중에 나온 식재료입니다. 언급하신 따야린조차 원래는 ‘가정에서 몇시간에 걸쳐 만든 라구 소스’ 와 ‘피에몬테산 최고급 버터와 세이지만으로 향을 낸’ 2가지 버젼이 가장 유명할 정도로, 그냥 간단하게 만드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지방과 허브로 파스타를 만들 때는 버터나 크림 올리브유가 평소에 쓰던 것보다 훠어어어어얼씬 더 고급이어야 한다는 점도 지적해야겠네요. 그리고 생면을 만드는 과정이 건면보다 훨씬 복잡한데 몇분 덜 삶으니 간단하다는 말도 틀렸구요.

 Commented by Recce at 2013/04/15 19:30
그렇게 고급인 재료를 쓰면 이탈리아 서민들은 어떻게 해먹는건가요? ‘ㅅ’

제 이탈리아 친구들도 생면 만들때 집에 있는 걸로 그냥 써서 만들던데 그게 틀린건가요?

 Commented by leinon at 2013/04/15 20:09
이탈리아의 동네마다 전통이 다 다르지요. 피에몬테는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와 달걀 밀가루가 매우 저렴합니다. 그리고 소스로 쓰는 버터 자체가 그 동네는 그냥 다 매우 좋습니다.

반면에 이탈리아 중부나 남부는 버터나 생크림이 많이 나지 않고 품질도 피에몬테보다 떨어지며 올리브가 매우 흔하므로 우리나라에서는 병당 3~4만원 할 정도로 고급인 올리브유를 마구 써서 요리합니다. 그 이탈리아 친구들이 생면 만들 때 집에 있는 것으로 그냥 쓰는게 우리나라 어지간한 레스토랑에서 쓰는 수준입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백화점에서 파는 엄청나게 비싼 기무치보다 훨씬 맛있는 김치를 대부분의 가정에서 서민들이 먹고 있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시면 편하실 겁니다^^

 Commented by leinon at 2013/04/15 20:08
참고로 이탈리아는 망해간다 망해간다 해도 GDP 3만 7천불로 우리나라의 거의 두배 가까이 소득이 많은 나라입니다. 그리고 한국은 농수산품에 소득의 5.7%밖에 쓰지 않는 나라임에 비해(한국농촌경제연구원 2012년 자료입니다.) 이탈리아는 농수산품에 소득의 10% 이상을 쓰는 나라여서 서민들이 우리나라에 비해 매우 좋은걸 먹고 살아요. 추가로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도는 5%가 채 안 되는데 이탈리아는 100%가 넘어서, 수입 농수산물을 먹지 않으므로 기본 식자재는 같은 퀄리티일 경우 굉장히 싼지라 더 좋은 식재료를 쓰기도 굉장히 좋은 환경입니다^^;

유럽은 기본 자재가 싸고 인건비가 비싼 나라인지라, 직접 이탈리아에 가서 장을 봐 보시면 의외로 대부분의 농수산품이 한국보다 싸거나 비슷하고 더 비싼 것이 별로 없는걸 알 수 있으실 겁니다. 반면에 인건비가 비싸니 남이 해준 밥을 먹으면 한국보다 훨씬 비싸지지요.

 Commented by leinon at 2013/04/15 20:04
추가로 이 분께서는 레스토랑에서 왜 이렇게 안 하느냐를 말씀하시는 것이라 서민의 예를 드는 것은 좀 다를 것 같네요.

 Commented by Reverend von AME at 2013/04/23 19:38
” Tajarin are long, flat noodles made of flour, eggs and water. The best pasta makers in Piemonte will often make their tajarin with egg yolks only, and sometimes even add a bit of parmigiano to the dough. While tajarin is the Piemontese word for these noodles, they are also often referred to as tagliatelle.

The Piemontesi have many opinions as to the appearance of tajarin, but they do agree on one vital detail: tajarin must be cut by hand! How wide you cut them is up to each individual family. Some Piemontesi like their tajarin finely cut, but most will cut them between a quarter of an inch and half an inch wide. The tajarin are usually served in one of two ways: with a butter sauce flavoured with truffles or herbs or with a sauce made of roasted or stewed meat or game. ” (Cream Puffs in Venice, The Food of Piemonte: Tajarin. http://creampuffsinvenice.ca/2006/02/18/the-food-of-piemonte-tajarin/)

” Tajarin is the egg-yolk-rich pasta from the Piedmont region of Italy. Their golden color comes

from the farmhouse egg yolks, which are almost orange in color, and their delicacy comes from

being cut into strands from 1/8 to 1/4-inch wide. One of the original recipes called for using 30

egg yolks to a little over 2 pounds of flour. Unless you have access to farm-fresh eggs, your

pasta will not have the rich, golden color of traditional tajarin. But this recipe does make a rich,

egg pasta with a silky, smooth texture. While tajarin is thePiemontese word for these noodles,

they are also often referred to as tagliatelle. Tajarin pasta is served simply, usually with butter

and freshly grated Parmesan cheese. During the truffle festival, tajarin is always served with

shavings of white truffles over a rich sauce. Since fresh white truffles are expensive and not

readily available, use packaged truffle butter, truffle oil, or preserved truffles. Go easy on the

truffle oil as a little goes a long way. The flavor may not be exactly the same but it is good none

the less. ” (Mangia Bene Pasta, Pasta from Piedmont. http://www.mangiabenepasta.com/pasta_piedmont.html)

 Commented by leinon at 2013/04/15 20:12 
스파게티 일색인 한국의 파스타 문화는 저도 무진장 싫어하지만, 그건 오히려 우리나라의 외식 문화가 너무 미국것이거나 미국을 통해 변한 다른 나라식 외식문화라는 점이 포인트가 되어야 할 듯 합니다.

우리나라에 제대로 하는 진짜 이탈리안 피자가 들어온건 살바토레 꾸오모의 DOC 피자가 들어온 것이 사실상 처음이고, 파스타도 그라노나 뚜또베네 같은 곳이 생기기 전까지는 진짜 제대로 하는 파스타라는게 아예 없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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