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ash / 답습>진보?

7년? 그렇게 오래 된 줄 몰랐다. 다만 <Acid Rain>이나 <이빨>같은 지난 앨범의 곡들을 내 아이팟에 파워송으로 담아 운동할 때 들으며 ‘이 앨범은 이렇게 좋은데 새 앨범은 언제 나오나?’라는 생각은 꽤나 한참 동안 했던 것 같다(<Acid Rain>같은 경우는 이들의 노래도 아니지만 원곡보다도 더 좋다고 생각했고, 언제나 운동이 가장 힘들때 들어 페이스를 끌어 올려주는 곡이어왔다).

드디어 새 앨범이 나왔는데… 산 뒤 꾸준히 들어서 얻은 인상은, 실망이었다.

처음 홈페이지에서 <Crashday>의 비디오를 보았을때 받은 느낌은, ‘이렇게 오랜만에 앨범을 내니, 다 죽여 버리겠어!’ 라는 마음가짐으로 곡을 만들었나?’와 같은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Propaganda death ensemble burial to be(아직도 이걸 기억하고 있다니…)’라며 슬레이어의 <Death Ensemble>을 부르게 만들었던 이 노래는 그 길었던 공백기 동안 맺힌 한이라도 풀려는 듯, 처음부터 끝까지 완급조절없이 밀어붙인다. 데뷔 시절부터 이들의 음악을 죽 들으면, 비단 프로그래밍한 음들을 넣기 시작했던 시절이 아니더라도 언제나 사람을 흔들흔들, 하게 만드는 ‘그루브’가 있다고 생각해왔는데(<이빨>과 같은 곡에서 정말 두드러진다고 생각한다.물론 2집으로 거슬러 올라가 <Turn to Dust>같은 곡들만 해도 리프가 단순하지만 그루브가 돋보이지 않았던가), 거의 모든 곡들의 분위기를 만드는 16분 음표의 촘촘한 리프-그것도 꽤 고음인-들을 듣고 있노라면 요즘 이런 음악을 가까이에 두고 듣지 않아 놓치는 게 있는가? 라는 생각 밖에는 할 수가 없다. 그렇게 완급조절을 못하는 분위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끊임이 없는데, 모든 곡들이 너무 비슷비슷하게 들려 지루하다.  글을 쓰기 위해 이 앨범을 정말 여러 번 되풀이해서 들었는데, 그때마다 그만 듣고 전 앨범을 다시 듣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그렇게 밀어붙이는 군데군데 조금씩 느낌이 다른 보컬을 넣어 그걸로 완급조절이나 분위기 전환을 하려는 것처럼 들렸는데 안흥찬의 클린톤/나레이션은 <최후의 날에>부터 지금까지도 별로 나아진 것 없이 똑같이 들린다. 그의 강점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원년 멤버였던 윤두병의 복귀가 팀의 그림을 생각할 때는 의미가 있을거라 나도 생각하지만, 음악만을 놓고 볼때는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윤두병은 대부분의 경우 펜타토닉에 의존하는 기타리스트였는데, 윤두병이 나가고 나서 그 다음의 앨범들에서 프로그래밍한 음들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집어넣고, 리프가 보다 더 그루브를 가지기 시작한 상황에서 두드러졌던 ‘왜미+단조 위주의 음계’ 솔로들이 아주 잘 어울렸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15년 전과 별 다를 바 없는 패턴을 꽤 들을 수 있는 그의 솔로가 그가 복귀했다는 사실만큼 반갑게 들리지는 않는다. 게다가 두 기타리스트(하/윤) 모두 순수하게 ‘기타리스트’로는 좋아할 수 있지만, ‘뮤지션/송라이터’로는 어느 만큼의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터라, 이 두 사람의 공동 작업이 곡들에 어떤 긍정적인 역할을 했는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앨범 속지를 보면 친절하게 누가 솔로를 했는지 표기까지 해 주었지만, 굳이 들여다보고 싶은 생각이 안 들도록 지루한 패턴을 답습한다. 이런 걸 손버릇이라고 말해도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반갑게 들리지 않는 건 사실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 앨범은 크래쉬의 새 앨범이고 또한 너무 오랜만이므로 무척이나 반갑지만 그만큼 굉장히 지루하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내가 요즘 이런 음악을 아주 열심히 따라가며 듣지 않는터라 흐름을 몰라 그렇게 듣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이 앨범은 진보보다 답습처럼 들린다. 그 의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역시 지루했던 97년 작 <External State of Fear>보다도 어째 더 지루한 느낌이라고 할까… 어쨌든, 무슨 사정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7년은 너무 길다. 실망하더라도 판 사서 듣고 또, 공연도 보면서 실망할테니 앨범을 보다 더 자주 내 주었으면 좋겠다. 진짜 7년 만에 냈는데 이런 앨범이라면 좀 당혹스럽다. 이 앨범에서 처음 한 서너곡 정도 듣다가 계속 그 전 앨범으로 옮겨가고 있다. <Revolver>, <Creeping I am> 등이 좋다.

이 글은 사실 써놓고 좀 묵혀 두었던 것이다. 조금 더 꼼꼼이 들어보고 생각이 달라진 부분이 있으면 반영하려고 생각해서 묵혀두었던 것인데, 2주 정도 더 열심히 들었지만 기본적인 생각의 틀은 바뀌지 않았다. 곡들이 귀에 좀 더 들어오지만, 그래도 지루한 느낌이 가시지는 않는다.

 by bluexmas | 2010/09/14 23:58 | Music | 트랙백 | 덧글(7)

 Commented by Cheese_fry at 2010/09/15 02:06 

오랜만에 크래쉬 이야기를 들으니까 감회가..; 저는 그냥 to be or not to be 가 좋습니다. 10년도 더 전에 공연보러 가곤 하던 생각이 납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9/16 14:09

네 저도… 가장 좋았던 공연 가운데 하나가 크래쉬와 노이즈가든이 함께 했던 건데 1994년인가 그랬던 것 같네요.

 Commented by unnyun at 2010/09/15 12:17 

오랜만에 나온 앨범이라 기대와 실망이 만감을 교차하는 경우를 여러번 보게 됩니다.

허나 시간이 되신다면 10월부터 공연이 재개될 예정이니 공연장에서 한번 즐겨주셨으면..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9/16 14:09

뭔가 제가 이해를 못 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새 앨범을 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기는 합니다만…

 Commented by Raye at 2010/09/15 20:56 

아직 활동하고있다니 장해요.. 전 20대때 치과치료 소음을, 트레몰로+리버브+왜미+ 퍼지페이스 등등을 섞으면 그 소리가 나지 않을까 생각했었죠.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9/16 14:09

그러게요. 아직도 활동하고 있다니 참… 그래도 치과 소음은 지나면 잘 기억이 안 나는 것 같네요. 다행이지요.

 Commented by 순두부 at 2010/09/16 19:56 

그래도 뭔가 새로운 스타일에 도전했다는 것에 점수를 주고 싶네요.

저도 좀 빨리 질려서 아쉽기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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