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그랬던 빵 속의 파스타

요즘 빵을 파서 속에 크림소스 파스타를 채우는 게 인기라고 들었다. 티지아이 같은 데에서 따라할 정도면 사실 인기는 지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크림소스 파스타보다는 클램차우더처럼 걸쭉한 수프가 빵에 채우기는 제격인데, 그냥 아무 생각없이 토마토소스 파스타를 만들어 빵에 한 번 채워볼까,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통밀빵을 여러개 구울때 일부러 밥그릇 크기만한 빵도 구웠는데, 이게 결과적으로 조금 패착이었다. 너무 작아서 속을 파내도 파스타를 채워넣을만큼 충분한 공간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뻣뻣한 통밀빵이다 보니 껍데기를 얇게 남기고 파낼 수도 없었다.

물론 파스타는 아주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 팬체타를 볶아 기름을 좀 낸 뒤, 마늘을 넣고 미리 만들어 둔 다목적 토마토소스를 섞어 끓여주면 된다. 몇 번 한 얘기인 것 같은데, 면을 맛보기 위해서 만드는 것이므로 원칙으로는 소스가 파스타를 잠식할 정도로 많으면 안되고 또 소스와 파스타를 같이 조리할 때에는 항상 소스가 파스타를 기다려야만 한다.

그렇게 소스에게 대기발령을 내려놓고서는 스파게티를 삶아서 소스와 섞는다. 처음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었던 게 대학교 1학년 때쯤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에는 많이 먹기도 했지만 대체 얼마만큼 파스타를 삶아야 하는지 몰라서, 무턱대고 많이 삶았다가 정말 울면서 꾸역꾸역 먹었던 적도 꽤 많았다. 나중에 텔레비젼에서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아, 그 사이로 들어가는 양 정도면 대략 일인분이 된다고 배우게 되었다. 물론 배가 고프면 손가락을 좀 넉넉하게 말면 될 것이다. 그걸 가늠하기 위한 도구도 팔기는 팔던데, 그런 것까지 사서 집에 들여놓으면 삶이 너무 복잡해지므로 통과. 참, 그 어린 시절에 만들어 먹었던 파스타는 병에 담긴 소스를 기본으로 스팸과 양파를 볶은 것이었다. 십 오년이 지난 지금은 토마토를 사다가 소스도 만들고, 팬체타도 간단하게 만들어서 얼려두었다가 쓴다. 스팸은 기본적으로 영구추방…인데, 요즘 가끔 먹고 싶을 때가 있다. 특히나 매운 스팸은 자취시절 친구들을 불러서 카레를 만들 때 기본으로 쓰던 것이라 묘한 애착 같은 게 있다. 물론 그냥 스팸이 좋다. ‘녹차먹여 키운 돼지 햄’ 따위 말고. 그런 가공햄 만드는 데  참 잘도 녹차 먹여서 키운 돼지를 쓰겠지…  나도 요즘 육질 개선이 좀 필요한데 녹차 많이 먹어야 할듯.

어쨌든, 이 파스타의 가장 큰 문제는 파스타와 소스를 상봉시키고 나니 그 자체만으로 맛있어보였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빵 그릇 따위는 필요없는 건데… 일단 만들어 놓았으니 꾸역꾸역 한 번 쑤셔 넣어본다. 위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빵을 너무 작게 만들어서 얼마 들어가지도 않는다. 어쨌든 쑤셔놓고 별 맛도 없는 모짜렐라 치즈를 올리고 토스터에서 치즈를 녹인다. 그리고 그 위에 다른 치즈 몇 종류를 살짝 갈아서 얹는다.

맛은 역시… 파스타 자체는 별로 나무랄데 없는 맛이었지만, 빵은 그저 그런, 요즘 유행하는 말을 쓰자면 잉여스러웠다. 결국 파스타만 꺼내서 먹고, 빵에 채워넣고 남은 파스타까지 다 먹은 뒤 남은 빵은 두었다가 그 다음 날 전자렌지에 데워먹었다. 굳이 오븐을 쓰지 않은 이유는, 빵이 너무 딱딱해서 좀 눅눅하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뭐 그렇게 별 볼일 없는 빵 속의 파스타를 만들었는데, 다음에는 흰 밀가루로 좀 부드럽게 빵을 구워서 클램 차우더나 감자 수프를 끓여서 먹어봐야겠다. 이제 그런 음식을 찾는 계절도 다가오니까.

 by bluexmas | 2009/09/27 11:16 | Taste | 트랙백 | 덧글(18)

 Commented by guss at 2009/09/27 11:25 

파르마잔을 두껍게 갈아 올리면 어울릴 법도 한걸요?

바지락 사서 수프나 끓여봐야겠어요. 정말 수프 생각이 나요.

창문 열어 놓고 잤더니 완전 오들오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9/28 14:20

파자잔이랑 로마노랑 또 다른 무엇인가를 갈아서 올리긴 했어요.

바지락 수프 맛있겠네요. 올리브 기름 두어방울 넣고 살짝 볶다가 드라이한 백포도주 넣고 끓이시면…취향에 맞춰 크림을 섞어도 되구요. 느끼하면 빨간 고추를 적당히 다져도 괜찮겠네요^^

 Commented by 잠자는코알라 at 2009/09/27 12:16 

헉~! 진짜 맛있어 보여요 -_-;;; 저도 점심으로 파스타 해먹었는데! 다만 전 오일파스타였어요 -_-; 사진도 찍었는데 블루마스님의 솜씨에 비하면 비루하네요-_-; 식구들이 먹고 다 기절했어요. 너무 매워서요ㅋㅋ 제가 보기엔 빵이 진짜 맛있어 보이는데! 치즈로 모자 쓴 것 같아서 귀여워요.. ㅠㅠ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9/28 14:21

저는 매운 파스타도 좋아해요^^ 그렇지 않아도 거의 모자쓴 분위기라 모자만 들어서 먹는, 뭐 그런 느낌이더라구요.

 Commented by 푸켓몬스터 at 2009/09/27 13:13 

저는 파스타와 마늘빵을 만들어서

파스타먼저 다 먹어버리고 남은 소스를 찍어서 먹는걸 좋아하는데

저것도 괜찮은 시도같지만 번거로울거 같아서 패스해야겠네요 ㅋㅋ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9/28 14:21

아무래도 좀 번거롭기는 하던데요? 그냥 빵이랑 따로 먹는게 더 낫더라구요.

 Commented by 큐팁 at 2009/09/27 13:19 

와..판체타를 만들어서 쓰시는군요.

저도 무척 해보고 싶은데

처음인지라 추운 겨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훈연이 아니다보니 살짝 걱정이 되어서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9/28 14:23

제가 만든 팬체타는 말리는 건 아니구요, 음식 만드는 데만 쓸 수 있게 소금에 절여두었다가 오븐에 익히는 거에요. 그걸 만든 다음에 썰어서 냉동실에 넣어두면 상하는 걱정은 안 하셔도 될거에요. 카르보나라 만들어 먹을 때 레시피 올리려고 지금 대기중인데, 곧 올려볼께요^^

(말리는 레시피도 있는데, 그건 질소 소금을 넣어야 되거든요. 어디에서 구하는지 몰라서 안 만들고 있어요)

 Commented by 큐팁 at 2009/09/29 08:12

질소소금이면 핑크쏠트인듯 한데

국내에 아웃도어/바베큐 요리 동호회에서 최근 공구를 하고 있는듯합니다.

소금과 아질산염을 고온에서 용해한뒤 다시 분쇄하여 만들어서

함량비 6% 뭐시기를 안정적으로 맞추었다고 하더군요.

http://blog.naver.com/kee21c

저도 구매를 문의할까 했거든요. 다양한 레시피도 있으니 눈이 심심치는 않습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9/29 10:55

네 핑크 솔트 맞아요^^ 그것만 있으면 웬만한 건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제가 알고 있는 레시피에는 주니퍼베리 따위가 들어가는데, 이거 우리나라에서 구할 수 있나 모르겠네요. 뭐 안 넣어도 상관은 없지만…

팁 감사합니다. 저도 가서 보려구요^^

 Commented by 제이 at 2009/09/27 22:28 

빵속의 수프는 좋아요~ ^^ 가장 궁합이 좋은건 클램차우더-감자수프-옥수수스프 순서였는제 적당히 식기를 기다리면 빵속에 챡 스며들어서 조금씩 뜯어먹으면 짭짤하니 좋더라구요. ^^

빵수프도 기대하겠사와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9/28 14:23

빵 속의 수프라면 역시 클램 차우더가 최고죠. 날 좀 더 차가워지면 한 번 만들어 볼께요~

 Commented by 조신한튜나 at 2009/09/28 15:21 

어떻게 하면 좋은 방법으로 파스타를 넣을 수 있을까 괜시리 고민해 보는데 쉬이 답이 나오지 않네요

마늘빵처럼 얇게 잘라 그 위에 파스타를 소복히 얹어 치즈를 올리면..완전 번거롭겠네요 그래도 한입씩 들고 먹기에 재밌을 것 같기도:9

녹차를 너무 먹이다가 무지방돼지가 되겠어요 히히히^^

기상청 예보만큼 춥진 않네요 그치만 아쉬운대로 모닝빵에 수프 찍어서~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9/29 10:53

그냥 빵을 썰어서 바닥에 쭉 깐 다음 파스타를 얹고, 그 위에 치즈 얹고 오븐에 살짝 치즈를 녹여주시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돼지는 비계가 생명인데 녹차 너무 먹이면 안 되겠네요^^ 삽겹살 적게 나와서…

아직도 낮에는 굉장히 더워요. 닭한마리 사다가 육수 내서 수프라도 끓이고 싶은데 아직은 덥네요.

 Commented by shortly at 2009/09/28 19:15 

아아 맛있겠네요 미리만들어둔 토마토 소스라니 아아-

빵에 담은 파스타는 크림소스를 흠뻑 빵이적실정도로 담아줄 때..같은 경우에 빛을 발할것 같아요 ㅎㅎㅎㅎ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9/29 10:53

아무래도 빵에는 크림기본 소스나 크림을 넣은 수프가 잘 어울리는 것 같죠?^^

 Commented by 햇살 at 2009/09/28 23:00 

오오오옹 맛있겠어요 =ㅂ=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9/29 10:54

파스타는 맛있었구요. 빵과 먹은 파스타는 그저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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