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들러 본 홍대 앞 바 두 군데

금요일 밤, 모종의 일로 혼자 홍대 앞에 있는 바 두 군데를 가 보았다. 굳이 ‘모종의 일’ 이라고 토를 단 이유는 미치도록 술 자체가 마시고 싶어서 혼자 굳이 바를 들른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굳이 마시고 싶으면 집에서도 얼마든지 마실 수 있으니까. 게다가 술 마시고 집까지 오는 길이 번거롭기도 하고…

애초에 가려고 정해둔 바가 있었는데, 눈에 띄어 충동적으로 들어갔던 바, 럭키 스트라이크. 그렇지 않아도 상수역 근처에서 술을 마시다가 여러번 보았던 곳이다. 담배로써의 럭키 스트라이크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데, 그 그래픽은 좋아하는 터라, 그걸 따서 바를 만들었다니 눈에 좀 띄었다고나 할까? 내부에도 담배갑이나 성냥이 인테리어 소품처럼 군대군데 자리잡고 있었다. 어떤 종류의 가게도 쉽게 들일 수 없을 만큼 아주 좁은 공간이라서, 차라리 바를 들여놓은 것이 참신하다고 생각했다. 채 2미터가 될까말까 한 너비의 가계에 바를 중심으로 손님의 공간과 주인의 공간이 자리잡고 있다. 의자는 한 대여섯개 정도? 마침 끝자리가 비었길래 거기 앉아서 보드카 온더락스를 주문했는데 김치냉장고처럼 위로 열리는 냉장고에서 덩어리째로 얼린 듯한 얼음을 부숴서 잔에 담고 다른 잔에 보드카를 내왔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얼음을 꺼내기 위해서 들어내는 각종 음식재료 비슷한 것들을 보니까 얼음에 냄새가 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얼음이 잔에 비해 너무 커서, 정작 술을 섞었을 때에 마시기가 쉽지 않았다. 잔도 작았고, 또 밑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여서 차라리 평범한 온더락스 잔이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바는 남자고 여자고를 떠나 자기들끼리 술마시면서 얘기하기 위한 공간이라기 보다는 일하는 사람을 어느 정도 끌여들여서 같이 얘기하면서 마시는 공간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내 옆으로 앉은 대학생 또래의 여자애들 둘은 차라리 이렇게 좁은 바 보다는 적당히 넓고 탁자가 있는 공간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좋다고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뭐 내가 오라가라 말 할 수 있는 처지는 절대 아니지만, 두 사람이 이야기를 하는 상황을 옆에서 원하지 않는데도 듣고, 또 보고 있으려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내 옆이 아니고 그 옆에 앉은 여자애가 엄마와 강원돈가 어느 동네를 여행가서 찜닭을 먹었는데 무려 감자도 엄청나게 컸는데 맛있었고, 국물이 많아서 밥을 비비는 게 아닌, 거의 말아먹는 수준이었다는 얘기를 귓구멍이 열렸다는 이유로 듣게 되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재떨이에 침 뱉는 걸 보는 건 왠지 그렇게 유쾌하지 못했다.

남자와 여자가 한 사람씩 일을 하는데, 단골이 아니라면 굳이 말을 거는 분위기는 아닌 것으로 보였다. 일부러 몇 번 말을 붙여 보았으나 돌아오는 대답도 그렇게 썩 말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지 않아서, 온더락스 한 잔과 생맥주 두 잔을 마시고, 채 한 시간이 되기 전에 자리를 떴다. 온더락스가 육천원이고 맥스라는 생맥주가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은 가운데 삼천원이어서 술값은 괜찮은 편이었는데, 앞에 현수막까지 걸어놓고 사람들이 편히 들어오도록 유도하는 집치고는 안에 있는 사람들이 만드는 분위기는 그렇게 붙임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했다. 여러번 가서 얼굴을 익히면 나아지려나? 간신히 바가 자리잡을 수 있는 공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 좁은 편이기 때문에 그렇게 발걸음이 잘 내킬 것 같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트는 음악은 최소한 싸구려 가요는 아니어서 괜찮았지만, 달린 텔레비젼에서 나오는 게 무슨 케이블 음악 방송의, 연예인 일색의 시상식이어서 바의 분위기와는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차라리 무슨 영화라도 틀어놓지.

이 곳을 나와 두 번째로 들른 곳은, 이름을 밝히고 싶은 생각은 안 드는데 인터넷을 뒤져서 일부러 간 곳이었다. 거듭 밝히지만, 아마도 이런 종류의 바, 아니면 술집은 내가 가장 가고 싶지 않아하는 공간일 것이다. 뭐 이유를 들자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술값도 그렇고 대부분의 일하는 사람들이 꺼내는 화제라는 게 너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뭐, 애초에 이런 식의 공간은 나의 생리랑 거의 전혀 맞지 않는다. 게다가 나는 반바지에 배낭을 멘 차림이었으니 뭐, 이런 공간에 어울릴만한 손님으로 보일리도 만무하고(근처 빵집에서 빵을 사서 그 봉투를 들고 들어갔더니 뭔가 알 수 없는 비아냥거림 비슷한 말도 들었다-)… 생각보다 넓은 공간에 벽을 따라 죽 바가 딸려 있고, 가운데는 완전히 텅 비어 있으며 입구 옆의 벽 쪽으로 정말 어떻게 처리할 수 없어 놓은 탁자가 두 갠가 있는 공간이었는데, 아홉시 정도여서 이른 시간이었는지 사람이 별로 없었고, 가게를 들어서자 디귿자로 꺾여 있는 바의 완전히 한 가운데로 안내받았고 금새 여자 둘이 달라붙었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분위기였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살짝 더 마음에 안 드는 종류여서 잠시 당황했다. 메뉴를 보니 뭐 생각했던 것처럼 별로 탐탁치 않은 수준이었고 역시 보드카 온더락스를 달라고 했으나 자기네는 온더락스 따위는 안 판다는 분위기, 대강 보고 마티니를 주문했는데 입구 간판의 ‘All Bartender’s Woman’ 이라는 문구에서처럼 바에 달라붙어 있는 사람들이 다 여자는 맞지만, 그들이 칵테일을 만들지 않으므로 바텐더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자기들을 바텐더라고 일컫고 있었으니 조금 웃겼다. 뭐 술을 따라주기야 하겠지(나는 여자가 술 따라주는 것도 싫어한다. 아니, 아주 친한 사람이 아니면 누군가 술 따라주는 것을 싫어한다. 술이 잔에 따라질 때의 그 순간이 너무 어색하게 느껴져서).어쨌든, 마티니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원료로 쓰는 술과 나머지의 비율이 안 맞는다는 느낌이었고, 또 살짝 미지근했다(막말로 돈값 못하더라는 이야기, 뭐 이런 곳에서 그런 걸 바라냐고 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달라붙자 마자 술을 사달라고 그래서 정말 가짜처럼 보이는 모히토를 시킨 두 여자-나이도 나와 별 차이가 없어서, 이런 곳에 이렇게 나이가 많은 여자들이 일하나? 그럼 보통 이런데 자주 오는 남자들이 좋아하나? 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는 내가 예상했던 종류의 화제-거의 호구조사에 가깝도록 귀찮고 짜증나는 종류: 나이는 몇 살이냐, 뭐하는 사람이냐-로 일관했는데, 손님이 없어서 그랬는지 대체 내 앞을 뜨지 않고 거의 달라붙어 있다시피 해서, 시간이 거듭될 수록 더해지는 불편함을 느꼈다. 대체 어떤 것이 이러한 종류의 술집에서 통용되는, 일하는 사람들의 행동양식인지는 모르겠지만 둘씩이나 달라붙어서 술조차 즐기기 뭐한 분위기를 만들어가며 말을 붙여대니 나중엔 정말 귀찮아져서, 앞에 놓인 마티니를 비우고는 일어섰다. 나중에 계산서를 받아보니 4만원이었는데, 마티니가 만원이었고 그 가짜처럼 보이는 모히토가 만 오천원이었다. 속으로 웃으며 자리를 떴다.

시간이 열 시를 향해 가고 있어서, 예전에 지나가다가 보았던 곳 한 군데를 더 들러볼까 가 보았지만, 밖에서 들여다보니 어째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사라져서 그냥 발걸음을 돌려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두 군데 모두 혼자서 술 마시기에 좋은 곳은 아니었다. 그러나 굳이 둘 가운데 하나를 골라서 가야 한다면 차라리 첫 번째를 갈 것 같다. 두 번째로 간 곳은 정말 이런 곳에 자주 가는 사람들이라도 별로 내키지 않을 것 같은 공간이었는데, 일단 아무 생각도 없이 한 인테리어가 휑덩그렁한 느낌인데다가,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공간의 벽 세 면에 바를 놓고 가운데를 완전히 비워놓아서 너무 썰렁한 느낌이었다. 사람들에 대한 얘기는 귀찮으므로 더 이상 언급하지 않은데, 의사소통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보았을때 바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나서서 의사소통을 주도하기 보다는, 손님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간간히 자신의 얘기를 해서 손님이 계속해서 부담없이 말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두 번째로 들른 곳에서의 일하는 여자들은 아예 자기들끼리 얘기를 했으므로 내 기준에서는 별로였다. 아니면 뭐, 다들 이런데 내가 너무 모를 수도 있는 노릇이거나 이런 생각을 하고 가 본 내가 멍청한 것일 수도 있고…어쨌든 저런 종류의 장소에 가는 걸 워낙 체질적으로 좋아하지 않는터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기분이 좀 엉거주춤했다. 남자로 살기도 참으로 쉽지 않구나, 으하핫 T_T

 by bluexmas | 2009/08/30 14:52 | Taste | 트랙백 | 덧글(7)

 Commented by 백면서생 at 2009/08/30 16:19 

요즘도 그런 표현을 사용하지는 모르겠지만, 읽으면서도 그 두곳은 전형적인 키치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뭐 그렇더라도 ‘제대로된’이라는 말도 우습고, 아무튼 주인이 저 것들을 세월에 따라 쌓아올린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가 주문대로 사다가 장식해놓은 느낌이 드는군요. 그런 곳이 많기도 하구요. 말씀하신대로 2미터 너비인데 ‘스탠딩 파티'(-뤼, 라고 되어 있군요)라니, 상상이 잘 안갑니다. 아주 오래 전입니다만 제가 가끔 가던 때의 홍대앞에는 그래도 말그대로 ‘카페’를 추구하는 괜찮은 곳들이 꽤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러고보니 압구정동도 그때는 작고 착한 곳들이 많이 있었어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8/30 18:48

가서 보면 디자이너의 손길이 간 것 같지도 않은, 그냥 되는대로 쌓아둔 듯한 분위기더라구요. 두 군데를 들렀다가 집으로 오면서 생각해보니, 바라는 공간은 사람이 완성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디 갈만한 곳이 없을까 모르겠어요.

 Commented by 백면서생 at 2009/09/01 00:06

한때 로렐라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곳이 괜찮아서였는지, 아니면 싸고 편해서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기억에 있습니다. 흠…

 Commented by 잠자는코알라 at 2009/08/30 16:40 

; 귓구멍이 열렸다는 이유로 들었다는 부분이 너무 공감되네요. -_-; 제가 과학자가 되면 귓구멍 자동 개폐시스템을 개발하고 싶어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8/30 18:49

귀마개라는 것이 있잖아요;;; 한 번 시험해보시는 것도-_-;;;;

 Commented by 잠자는코알라 at 2009/08/30 18:54

ㅋㅋ 사실 3M귀마개를 가지고 다니며 유난을 떨어본적도 있는데요 ;ㅁ;

들릴 소리는 다 들리더라고요.. ㅠ_ㅠ 그래도 잘때는 귀마개 애용합니다 =_=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8/31 23:31

하하, 그러시군요. 저도 생활 소음에 정말 미친 듯이 민감한 사람이라서 그 어려움이 이해가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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