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감증-나도 늙었나봐?

어제는 운동하다가 체육관 텔레비젼에서 가요 프로그램을 보았다. 솔직히 별 관심도 없고,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혼자든 여럿이든 나와서 노래든 춤이든 지랄떠는 꼴을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없다. 그냥 역겹다.

어쨌든, 거의 대미를 장식하는 차례에서 소녀#대가 나오던데, 자기네들 딴에는 ‘이만하면 애들의 컨셉에 맞게 귀여우면서도 섹시하겠지’ 라고 생각하며 무슨 제복 따위를 입혔던데, 나는 늙었는지 불감증이 극악에 달했는지 아무런 느낌이 없더라.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여러 명(몇 명이냐 소녀 시대가? 아홉인가?)이나 되는 애들이 똑같은 옷을 입고 나와서 무대에 오글거리고 있으니까 징그럽더라. 사람이 아니라 같은 옷을 입혀놓은 동물이나 로봇을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뭐 비단 이건 소#시대만을 보고 느끼는 건 아니다. 또 여자만 보고 느끼는 것도 아니고. 나는 일단 같은 성의 사람들이 셋 이상 모여 있는 걸 보면 징그럽고, 또 똑같은 옷을 입으면 더 징그럽다. 그래도 중고등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오글오글 몰려다니는 것 까지는 괜찮은데, 무슨 먹자골목 같은 곳의 길거리 술판에 남자들이 꽉 차 있다거나, 명동 한복판을 돌아다니는데 여자들 셋이 팔짱을 끼고 길거리를 막고 슬금슬금 기어다닌다거나 하는 모습을 보면 징그럽다고 느낀다. 그건 단지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 걸 보고 느끼는 기분과는 조금 다른 것이다. 스스로 편견이라고 생각하지만, 같은 성끼리 오글오글 모여있는 모습을 보면 그 모습 자체로 이성은 따돌리겠다는 아우라를 풍기는 것 같드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 우리 남자끼리 말인데’,’여자끼리 뭉쳐야죠, 남자들 때문에 삶이 힘든데.’ 살면서  ‘우리 남자끼리 말인데’ 라고 운을 떼며 얘기를 할만한 남자들을 만나본 기억이 드물고, 여자끼리 뭉치게 만드는 남자가 뭔지는 잘 몰라도 그게 안 되고 싶어서 별 발악 다 해도 그런 여자들에게 나는 그냥 남자일 뿐… 그럼 나는 대체 나를 어디에다가 위치해야만 하는거냐, 이 척박한 생물학적 이분법의 얼음지옥과 불지옥에서? 한 쪽은 너무 차고 또 한 쪽은 너무 뜨겁구나야.

그리고 #녀시대 얘기로 다시 돌아오자면, 난 그런 애들이 텔레비젼에 나와서 짓는 그런 표정들에 역겨움을 심하게 느낀다. 가식이라고 생각하니까. 강남역인가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무슨 시리얼 선전에 저런 애들 셋을 데려다가 사진을 찍어서 붙여 놓았던데, 그 귀여워하는 표정이 싫어서 그 회사 시리얼은 절대 안 사먹기로 했다. 뭐 그거 아니라도 안 사먹을테지만… 물론 무슨 다이어리 따위를 준다는 굽네치킨 따위는 돈이 썩어도 먹을 생각이 없다. 늘어놓기 시작하면 끝도 없는 이 얘기의 잠정적인 결론은 그거다. 1. 연예인은 역겹다. 우리나라는 곧 연예인 때문에 망할 것이다. 2. 나는 늙어서 아저씨가 되었고 따라 불감증에 시달리고 있다. 소녀시#를 보고 귀엽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니, 상식 수준에서 나에게는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아 또 그러나 내 나이 서른 다섯에 늙어서 불감증인가벼… 라고 마음 푹 놓고 씨부릴 수 없는 이유는, 토요일인가 아주 늦은 전철에 몸을 싣고 오산으로 돌아오는데, 맞은편 자리에 ‘아 나 좀 섹시하고 이쁘징?’ 이라는 아우라를 팍팍 풍기는 자태와 짧은 치마로 무장한 여자애가 화서에서 내리는데, 내 앞에 서 있는 아저씨가 정말 내릴 때 까지 노골적으로 뚫어지게 쳐다보더라. 난 정말 여자에 치마 뚫어지거나 아저씨한테 투시력이라도 있는 줄 알았다.

더 웃기는 건, 그렇게 서 있는 아저씨 앞에 마누라로 보이는 사람이 앉아있었다는 것이지. 그런 아저씨도 야한 옷 입은 여자애들을 보면 쪽팔리는 줄 모르고 동물적 본성에 푹 젖어 행동하는데, 난 대체 이게 뭐냐고? 소#시대가 컴백 무대에 야한 제복을 입고 나와도 아무런느낌도 없고.

 by bluexmas | 2009/06/29 23:41 | Life | 트랙백 | 덧글(8)

 Commented by 펠로우 at 2009/06/30 00:31 

그냥 서구권에서 좀 체류하셔서 문화차이를 느끼는 걸 수도 있겠죠^^; 서구권에선 아무래도 개인의 취향과 색깔이 드러나는 반면, 인구많은 동아시아에선 개인의 스터프만 갖고는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일단 뭉쳐서 권리/이익을 인정받고 보자’ 는 경향이 있는듯 해요.

유학 중인 지인도 잠시 한국에 오고선 ‘다들 복제인간 같더라’ ‘만난 사람들이 전부 원더걸스 [텔 미] 춤을 출줄 안다.희한해’ 그러더군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7/03 00:36

저는 뭐 옛날부터 그런 걸 느꼈고 연예인을 워낙 싫어했거든요. 어쨌거나 뭉치는 건 질색이에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가리고 싶어하죠. 불이익 당하는게 싫으니까요.

 Commented by 닥슈나이더 at 2009/06/30 08:47 

그런데…. 그 집단화의 무서움이…..

그런거 무지 싫어하는 사람도….. 여러 매체에 의해서 세뇌당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그런 모습이 익숙해져 버리게 된다는거죠…ㅠㅠ;;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7/03 00:37

그래서 아예 텔레비젼을 안 보는거죠. 그래도 수신료는 내야 된다네요. 집에 텔레비젼이 있으면.

 Commented by 나녹 at 2009/06/30 09:17 

몇달 됐지만, 케이팝 좋아하는 이쪽 친구가 손담비가 그렇게 이쁘고 섹시하다고 난리를 치길래 유튜브에서 봤더니만 비쩍마른 초딩5학년이 관심 좀 받을라고 발버둥치는 느낌이었습니다…아이돌가수의 존재자체에는 불만 없지만 솔직히 누구의 어디가 섹시한 건지는 영 알 수가 없어요-_-a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7/03 00:40

미국애들이 좋아하나봐요. 저도 체육관에서 하도 토요일 밤 이런 노래 쳐 들어서, 대체 손담비가 누구야? 그러고 유투브 찾아봤는데 정말 비쩍 마른 초등 4학년이던데요? 관심 안 가더라구요… 그러나 미국애들이 좋다고 답글 달아 놓은 건 많이 봤어요.

연예인 섹시하다고 생각 거의 안 드는 저는 완전 불감증인거죠.

 Commented at 2009/06/30 13:2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7/03 00:42

그러나 온통 섹시하게 보이도록 꾸미고 나오잖아요. 그래서 더 싫어하는거죠 뭐. 그런식의 컨셉 만들기에 염증을 느껴요 저는. 저도 어디 지나가다 계단 올라가는데 가방으로 가리는 여자들 보면 거기에 눈길 우연히라도 안 돌리려고 노력하는데, 그게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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