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 깐풍기의 경발원 방문기+a

사실은 맛 보다 호기심 때문이었다. 들려오는 얘기를 들어보니 대체 어떤 맛의 깐풍기를 하는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오산에서 지하철을 타고 꾸역꾸역 회기역까지 올라갔다. 왕년에 왕십리대를 다닌 적이 있어서 왕십리나 청량리까지는 늘 갔었는데, 회기역은 가본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한 번쯤인가? 고대랑 왕십리대 앞의 나그네 파전은 먹어봤으니 경희대 앞 나그네 파전도 먹어서 나그네 파전의 삼위일체를 뱃속에서 이룩해야 된다고 가 봤던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에서 얘기가 많으니까 다른 얘기는 걷어 내고, 그냥 먹은 음식 얘기나 하자. 대표메뉴라는 깐풍기와 짬뽕을 시켰다. 문 옆 자리에 앉았는데, 주인아저씨(할아버지라고 하기엔 젊어보이시던데…)께서 주문 직후 생닭을 손질하시는 걸 보았다. 한 시쯤 도착했더니 그 전 손님들이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상황이어서, 별 기다림 없이 깐풍기를 받았다. 음식을 막 받자 마자 깜짝 놀랐던게, 닭이 튀김옷을 입지 않았던 걸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에서 보았는데 왜 몰랐을까? 옛날옛적, 집에서 손님을 치른다고 닭강정을 할 때, 튀김 옷 없는 닭 튀김조각을 훔쳐 먹던 생각이 났다. 어쨌든, 이 깐풍기는 지금까지 먹었던 깐풍기와는 전혀 다르다. 닭을 썼으니, 또 조리 방법이 그러하니 깐풍기겠지만, 다른 깐풍기와는 비교할 수가 없는 맛이었다. 통상적인 깐풍기는 튀김옷을 입힌 닭을 소스에 약간 물기가 자작자작할 정도로 볶는 것이라면, 이 깐풍기는 튀긴 닭을 물기 없이,그냥 야채와 볶는 것이고 소스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새콤함도 없다. 그에 비해 매운 맛이 압도적인데, 그 매운 맛도 물기 있는 소스가 아닌 약간 매운 맛의 생 파란 고추와 아주 매운 빨간 말린 고추로 낸다. 계속해서 소스 얘기를 하는데, 소스가 없기 때문에 매운 맛이 목구멍을 넘어가지 않고, 그냥 입만 죽어라 맵게 만든다. 그래서 먹을 때는 불지옥이지만, 다 먹고 나면 아주 금방 평화가 찾아온다. 또 보통의 깐풍기가 아주 작게 깍둑썰기한 야채와 함께 나온다면, 경발원의 깐풍기는 길게 자른 부추와 파란 고추와 함께 나온다. 먹으면서 여려모로 신기하다는 생각을 만이 했는데, 간장을 썼는지, 아니면 소금으로만 간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쨌거나 간이 조금 안 맞아서 간장을 찍어 먹어야만 했다(늘 간이 잘 안 맞는다는 얘기를 하는데, 이게 소금을 적게 넣어 싱거운 것과는 조금 다르다…경발원의 깐풍기는 어디는 조금 짜고 어디는 조금 싱거운, 그런 상황이었다).그리고 생닭을 손질하셨는데, 어느 토막은 너무 작거나 뼈 일색이어서 먹을만한 살이 별로 없었다.

그렇게 깐풍기를 넘기고 다음은 짬뽕. 인사동 단골집의 햐얗고 뽀얀 굴짬뽕을 빼놓고 나는 빨간 짬뽕을 거의 먹지 않는다. 그냥 국물만 빨갛고 기름 범벅인데다가 면에는 맛이 하나도 배지 않은 경우가 너무 많아서… 게다가 언제나 볶음밥과 짜장면을 더 좋아했으니까. 그러나 경발원의 짬뽕은 내가 아는 다른 짬뽕과도 너무 달랐다. 무슨 해산물이 들어갔는지 얘기를 하기 이전에, 국물이 굉장히 가벼웠다. 짬뽕의 매운 맛도 역시 깐풍기의 그것과 느낌이 비슷해서, 칼칼한 느낌이 있지만, 그 여운이 아주 오래 가는 것은 아니었다. 배추와 오징어가 많이 들어 있었고, 나중에 얘기 들었지만 손님들이 안 좋아해서 깐풍기에서는 뺀다는 닭가슴살을 다진 것도 들어 있었는데, 이 닭가슴살의 조리 상태가 아주 훌륭했다. 그러나 이렇게 국물 얘기를 했지만, 이 짬뽕에서 정말 좋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면이었다. 보통 중국집의 면 두 개를 포갠 넓이의 면이었는데, 정말 면 두 가닥을 포갠 듯 면과 면이 맞닿는 부분이 파여 있었고, 식감이 다른 면들과 조금 달랐다. 어떻게 보면 잘 끊어지는 것 같지만 더 찰진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솔직히 깐풍기보다는 짬뽕이 음식으로서는 더 좋은 느낌이었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면의 반죽이 다른 집과 다르고 ‘거의’ 손으로 반죽한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손으로 반죽한 것과 ‘거의’손으로 반죽한 것의 차이를 나는 잘 모르기는 하지만.

UPDATE: 쓰다 보니 닭 튀김에 대한 얘기를 빼먹었다. 주인 아저씨께서 얘기하시기를, 튀김 옷 안 입히고 닭 튀기는게 더 어렵다고… 사실 튀김옷이라는게 기름기나 수분이 지나치게 빠져나기기 쉬운 재료의 보호를 위해 입히는 것이라 생각하면 그 말씀이 맞다. 닭도 튀김옷 없이 튀기면 뻣뻣해지기 쉬우니까. 경발원 깐풍기의 닭은 정말 잘 튀겨졌다. 고기나 생선 튀김을 할 때 제 1 원칙은, 재료로 기름기 많은 부위를 쓰지 않는 다는 것이다. 탕수육도 그렇고 하다 못해 Fish n’ Chips 같은 경우도 기름기가 많은 부위나 생선을 쓰면 안된다. 기름이 다 배어 나오니까. 탕수육을 삼겹살로 튀기고 Fish n’ Chips를 연어로 튀겼다고 생각해보자…

음식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나머지는 음식 밖의 얘기. 언제쯤 붐비는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갔던 시간에 비교적 가게가 한산해서, 처음 주문을 하고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돈을 받으시는 주인 아주머니한테 너스레를 떨었다. 저어 멀리 오산에서부터 이 집 음식 맛있다고 들어서 먹으러 왔노라고… 사실 나는 음식 블로거도 아니고 사진은 더더욱 못 찍으니까, 음식점에 갈 일이 있어도 사진기를 꺼내서 손에 들고 다니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그 앞에 너무 황당한 예식장 사진을 한 장 찍느라 사진기를 손에 든 채로 들어갔더니 아주머니가 바로 보시고는, 인터넷에서 왔냐고 약간은 농담조로 경계하시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셨다. 나는 뭐, 별거 아니라고 했지만…

어쨌든, 깐풍기와 짬뽕을 다 먹으니 가게에 손님이 하나도 안 남아서, 주방에 계시던 주인 아저씨가 객실로 나오셨는데 대뜸 아주머니께서 내가 오산에서 여기까지 왔다고 하셔서, 두 분과 잠깐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손에 든 카메라를 처음 보셨을 때부터 풍기는 분위기가 그랬듯, 두 분의 식당이 인터넷에 알려지는 것을 잘 알고 계셨고, 또 그렇게 알려지는 부분 가운데 일부에는 별로 좋은 느낌을 가지고 계신 것 같지 않았다. 이를테면 주방에 일하는 사람이 있는데 혼자 일하신다고 알려졌다거나, 중간에 쉬는 시간에 대해 사람들이 별로 좋은 얘기를 안 한다거나,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르니 빨리 가서 먹어보라고 얘기하는 것 등…부모님은 대만에서 오셨고, 우리나라에서 태어나셨다는 주인 아저씨는, 매일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서 직접 장을 보고 준비를 하시기 때문에, 더 나은 음식을 위해서는 중간에 휴식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손님이 그 시간에 오면 아무래도 힘들다기 보다 휴식이 끊길 수 있으니까… 정도의 뉘앙스를 풍기시는데,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 나는 불만이 없다. 갔다가 못 먹으면 짜증이야 나겠지만… 이런 저런 얘기를 좀 했으나 여기에 다 옮길만한 건 아니고, 음식과 관련된 얘기만을 하자면 결국 주인아저씨가 강조하셨던 건’ 진짜 중국의 맛’ 이었다. 내가 중국의 맛이 뭔지 잘 모르니 그게 정확하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음식을 먹어보고 또 말씀하시는 걸 듣고 넘겨짚어 보자면, 결국 그 분이 추구하는 음식 맛이나 스타일은 한국화된 중국 음식, 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몇몇 중국의 지방의 스타일이 아닌, 그 분이 뿌리를 두거나 음식을 배운 지방의 맛이나 스타일의 원형을 지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음식이든 가게 자체의 꾸밈새든 뭔가 원형으로부터 변하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경발원은 이제 하나의 컬트가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이런 음식을 이런 분위기의 식당에서 먹기 쉬웠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굳이 그 음식 맛을 보려면 굳이 경발원까지 가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볼 수 있는 맛은, 같은 이름을 달고 있지만 우리가 늘 먹어 익숙한 그 음식 맛과는 전혀 다르다. 깐풍기가 있고, 짬뽕이 있지만, 그건 우리가 아는 깐풍기와 짬뽕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음식으로서 먹은 깐풍기와 짬뽕에 대해서 말은 할 수 있어도, 늘 먹던 중국음식과의 비교를 통해 이 음식에 대해 말할 수는 없다.

참, 두 분 다 나에게는 참 친절하셨는데 다른 블로그를 보니 누구에게나 그런 것은 아니신가보다.

 by bluexmas | 2009/06/26 09:43 | Taste | 트랙백 | 덧글(8)

 Commented by 닥슈나이더 at 2009/06/26 10:13 

아~ 왕십리대 나오셨군요….

거기에 전공하신듯 싶은 꽈에… 고등학교 친구가 2명이나 95학번으로 다녔었더랬죠..^^;;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6/27 09:47

네 절대 H대 아니고 왕십리대입니다. 흐흐.

 Commented at 2009/06/26 11:0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6/27 09:49

저희 가족은 중국음식 외식을 엄청 많이 했는데요, 정작 짜장면과 탕수육은 거의 안 먹었어요. 삼선볶음밥이랑 난자완스, 기스면 같은 걸 많이 먹었죠. 워낙 그 집이 짜장면과 탕수육 전문이 아니었거든요.

저도 3년 전에 홍콩에 2박 3일 가 봤었는데, 음식이 정말 훌륭하더군요. 어느 식당에서어항에 있는 가재를 골라서 음식을 먹기도 했는데… 경발원의 맛은 그걸 위해서 꼭 거기까지 가세요, 라고 말씀 드릴만한 것은 아니에요. 제 취향에는.

 Commented by 펠로우 at 2009/06/26 11:13 

저도 카메라는 들지않고 가니, 생각보단 친절하더군요. 그저 카메라로 구석구석 찍어대는걸 싫어하는거겠죠..

말씀대로 짬뽕이 스타일있어서 좋았습니다^^; 요샌 경발원식의 면발 접하기가 힘들긴하죠~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6/27 09:50

네, 애초에 불친절하신 분들은 아닌 것 같아요. 전 사진기 가져가도 보통 음식만 한장씩 찍거든요. 나름 고집을 가지고 계신 분이니 앞으로도 계속 음식 만드셨으면 좋겠더라구요.

 Commented by 카이º at 2009/06/26 15:26 

경발원 깐풍기 참 유명하죠~

저도 한번 먹어보고 싶은데 기회가 좀처럼 안되네요 ㅠㅠ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6/27 09:50

담에 한 번 꼭 가 보세요.

 

 

2 Responses

  1. 11/16/2015

    […] 서울 시내에서 가장 과대평가된 곳-전체 식종을 통틀어-이라고 생각하는 경발원의 짬뽕. 그러나 정확한 의도의 결과인지도 모르겠고). 중식당의 면은 […]

  2. 12/22/2015

    […] 유명세의 기폭제와 같은 깐풍기는 잘 만든 음식이 아니다. 처음 먹고 쓴 글에는 호의적으로 평을 했지만, 이후 더 먹어보고 계속 생각해 낸 결론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