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는 옛날 이야기 두 꼭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금보다 옛날 옛적,  한때 군인이셨던 분들이 늘그막에 커리어를 바꿔 나랏님으로 군림하셨을 그 때의 국가복지 수준이 지금 보다 더 월등하지 않았나 싶다. 자라나는 새싹들에 벌레가 꼬일까봐 매년 두 번씩 범 국가적인 배설물 검사마저 해 줬으니까.  그저 뭐든지 군대에서 하듯 단체로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는지 제대로 먹고 자라지 못해서 화장실도 매일 못 가던 어린 새싹들을 다 같은 기간 내에 화장실에 가서 그 배설물을 봉투에 담아 오라고… 그래도 집이 조금 먹고 살만 해서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종류 불문하고 고기를 먹을 수 있던 새싹들이라면 정해진 기간 내에 채취가 가능했지만, 그렇지 못한 집이 더 많았으므로 마감일이 다가오면 교정의 분위기는 살벌했다. 온갖 협박 속에 선생들이 꺼내 들었던 마지막  카드는, 기한 내에 가져오지 않으면 칠판 밑에 신문지를 깔고 거기에서 가장 신선한 표본을 채취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것… 상황이 거기까지 이르면 다들 다급해져서 단체로 화장실에 몰려가, 수세식이 보급되지 않았던 조악한 지방의 현실을 적극 활용 변기의 테두리에 붙어 있던 그 무엇인가를 채취해서 내곤 했으니, ‘사람 것이 아님’ 이라는 결과를 받아드는 것도 결코 드문 경우는 아니었다.

어쨌든, 내가 속했던 학급에서는 단 한 번도 그 칠판 밑에 신문지를 깔고 모두의 앞에서 신선한 표본을 채취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선생들이 신사적이었는지, 미리 준비해둔 표본 채취 킷-봉투와 나무 젓가락, 신문지-를 주고서는 화장실에 가서 해결하고 오라고 했으니까. 그러나, 4학년 때였나? 옆 반에서는 정말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고, 아침 조회 시간 이후에 온 복도가 시끌벅쩍했었다. 실제로 보지 않았으니 믿을 수 없었지만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면 그 새싹들은 벽을 보았을까, 아니면 같은 반 새싹들을 바라보았을까.

2. 기억을 더듬어 보면, ‘받아쓰기’ 라는 게 있었다. 선생이 의자에 편히 앉아서 문장, 예를 들자면 ‘아버지가 밥상을 뒤엎으셨다’ 따위를 읊으면 새싹들은 그걸 그대로 시험지에 받아 쓰는 일종의 쪽지시험이었다. 맞춤법이 가장 중요했지만, 띄어쓰기 역시 간과될 수 없었다. 선생들은 늘 ‘아버지가 방에 들어 가신다’ 를 예로 삼곤 했다. 띄어쓰기를 안 지키면 ‘아버지가방에 들어가신다’ 가 된다고, 아버지가 방에 들어 가시는지, 가방에 들어 가시는지 알 수 없게 된다고. 교사 연수하면 그 문장만 주고 예제로 백만 년 우려 먹으라고 가르쳤는지, 달이 바뀌고 해가 바뀌고 선생들이 바뀌어도 언제나 아버지는 방에 들어 가시는지 가방에 들어 가시는지 알 수가 없었다. 현실에서 아버지들이 언제나 가족과 직장 사이에서 엉거주춤 걸쳐 있듯, 국어 시간에 아버지들은 방과 가방 사이에 엉거주춤 걸쳐 있었다. 그러나 대체 어느 아버지들이 방 말고 가방에 들어가기를 원했을까… 그러나 그렇게 유치한 예제라도 그때는 잘만 먹혔었다.

세종대왕께서 아무리 ‘나랏말쌈이 둥귁과 다름’ 을 가련히 여겨, 뭇 백성들을 위해 훈민정음을 창시하셨다고 해도 뛰어 놀기에 바쁜 새싹들에게 우리 말은 너무 어려웠으니 보통 열 개의 문장을 쓰곤 했던 받아쓰기에서 언제나 좋은 점수를 받기는 힘들었다. 때로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셨어야 되는데 가방에 들어가셔서는 밥상을 엎는 경우도 있었고, 방에는 맞게 들어갔는데 그 사람이 아버지가 아니고 ‘아머지’ 인 경우도 있었다. 선생들은 받아쓰기가 끝나고 나면 시험지를 다 걷어서는 그런 걸 하나하나 까 뒤집어서 모두 앞에서 비웃으면서 돌려주는 걸 낙으로 삼곤 했다. ‘박철수(가명), 아버지가방에 들어가셨구만’ 뭐 이런 식으로. 선생들도 사람인지라 전날 밤 부부싸움이라도 있었던 것 같은 낌새면 비웃음의 강도는 한층 더해질 때도 있었다. 손바닥을 맞거나 나머지 공부를 하면서 틀린 문장을 백 번씩 쓰는 것 정도야 뭐 굳이 여기에서 들먹을 필요도 없고.

그러나 이렇게 들리는 걸 그대로 받아 적을 수는 있으나 쉽지 않은 훈민정음의 체계 덕분에 헛갈려서 틀리곤 했던 새싹들과는 달리, 아예 들리는 것과 전혀 다른 문장을 적는 아주 소수의 새싹들이 있었다. 분명히 선생은 ‘아버지가 밥상을 뒤엎으셨다’ 라고, 전날 밤에 일어났던 자기 가정의 불화를 묘사하는 문장을 읊어댔는데 ‘미놀라지쁘 나르베라죠 차드라’ 라고 적는. 이런 새싹들은 다들 어려서는 대체 자기가 왜 그런 문장을 적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새싹들이야 어려서 그렇다 쳐도 선생들 조차도 새싹들이 왜 그런지 이해를 못했다. 그래서 받아쓰기가 끝나고 선생만의 특권인 까대는 시간이 찾아오고 또 그런 새싹들의 차례면 선생들은 눈에 불을 켜고 입에서는 불을 토했다. ‘아니, 분명히 아버지가 밥상을 뒤엎으셨다, 라고 불러줬는데 왜 미놀라지쁘… 넌 어디가 모자른게 아니…’ 새싹들을 일으켜 세워 놓고 때로 선생들은 5분씩, 10분씩 불을 뿜었고 새싹들은 그저 얼굴이 빨개진채로 고개를 숙여 그 뿜어대는 불을 말없이 흡수하기만 했다.  그렇게 애들 앞에서 자기들이 신인양 군림했던 선생들 조차 그 때는 ‘난독증’ 따위의 단어는 몰랐는지 그런 종류의 진단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들은 그런 새싹들을 그저  ‘지진아’ 라고 불렀고, 다른 새싹들도 곧 그 말을 배워 그들을 지진아라고 불렀다.

1-1. 검사 결과가 도착해서 벌레 따위가 꼬인 새싹이 발견되면 친절하게도 국가에서는 애들에게 약을 보내주었고, 그 약 역시 받아쓰기를 하고 난 뒤 질책을 당하듯 다른 새싹들 앞에서 한바탕 개망신을 당하고 나서 먹여지곤 했다. 먹는 것도 싸는 것 역시 모두의 앞에서 이루어져야만 했다. 나중에서야 사실 주어진 약은 위약 placebo이고, 새싹에 꼬인 벌레들은 모두의 앞에서 당한 숙주의 개망신에 부끄러워 박멸되는 것이라고 밝혀졌다. 그렇게 꼬인 벌레들마저 죽게 만드는 개망신에도 끄덕없이 자라난 새싹들은 그 때 얻은 강인함으로 지금 이렇게 기성세대가 되어서도 이런 환경에서 꿋꿋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by bluexmas | 2009/04/16 09:36 |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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