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종 계원

 별로 특별하게 생각할 건덕지도 없지만, 오늘은 입대 13 주년이다. 무슨 요일이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날씨는 오늘처럼, 아니 오늘 보다도 훨씬 더 좋았던 듯.  매년 이 날을 맞아서 그 때 얘기를 하나씩만 써도 환갑 때까지는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정말 뭔가 마음 먹고 써 볼까 생각을 해 보면 딱히 내키는 얘기가 별로 없다. 좋은 기억이 없어서 그런걸까.

어쨌든 그 좋지 않은 기억들 가운데 정말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대인기피증을 가진 관심사병으로 분류되어 특별 관리를 받았다는 사실.  그렇다, 나는 군대에서 정말 인간 쓰레기 취급을 받았었는데 가장 큰 원인은 내가 순수하게 육체적으로 한 사람 몫의 군인 아니면 노동자의 역할을 해 낼 수 없는 비만이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써 왔던 얘기니까 이 블로그에도 몇 번 썼었던 것 같은데, 나는 신체검사에서도 4급을 받고 상근 예비역이나 공익 근무 따위를 하도록 판정을 받았었는데, 74년 생까지는 방위를, 76년 생 부터는 공익근무를 하도록 법을 바꾸면서 그 사이에 낀 75년 생은 다 현역으로 가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신검을 막 받고 나서는 뭐 현역은 가지 않겠지, 라고 나름 마음을 편하게 먹고 있었는데 그렇게 어물쩍 현역으로 가게 되었고 가뜩이나 그런 마음 가짐을 가지고 있다가 가게 된 군대라는 곳에서 나는 애초에 최선을 다 하겠다는 마음은 가져본 적이 없었으니, 그런 마음가짐과 나의 비만은 철저히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나를 일찌감찌 전력외 밥벌레로 분류시키는데 큰 역할을 해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어쨌든, 내 몸이 구렸더라도 마음이 구리지 않았다면 그 구린 몸을 벌충하기 위해서라도 뭔가 열심히 하려고 최선을 다 했을텐데, 돌아보면 나에겐 그런 마음이 전혀 없었고 지금까지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았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있다. 결국 나는 몇몇 보직을 전전하면서 자리를 잡지 못하다가(비만이다 보니 몸으로 때워야 하는 가장 군대스러운 일들은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아, 근 십 오년이 지났지만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아직도 참으로 부끄럽구나-), 일병을 반 정돈가 보내고 나서 부식관리병이 되어 쌀이나 고추장 따위의 재고를 관리하는 행정병이 되어서 그럭저럭 밥값은 하면서 남은 군복무를 간신히 마칠 수 있게 되었다. 사실은 내가 몸 담았던 부대가 사단 전체에 모든 물자를 보급하는 대대여서, 온갖 식재료가 아침마다 부대에서 나가곤 했는데, 나는 그 가운데 우리 부대의 200명을 위한 부식을 거기에서 조달해오고 또 관리하는 일을 맡게 되었던 것이다. 언제나 먹을 것들을 관리하다 보니 나에게는 언제나 여분의 무엇인가가 있어서 소위 ‘건빵주머니’ 라고 불리던 군복 바지의 다리 중간쯤에 달린 주머니에는 항상 간식으로 나오는 샤니 도너츠 따위가 들어있었는데, 그건 나보다는 간부나 고참들을 위한 것이었다. 언제나 나만 보면 ‘뭐 먹을거 없냐’ 라고 물었고 나는 얼른 주머니에서 빵을 꺼내서 바치곤 했으니까. 그 간식으로 나오던 빵도 IMF가 터지고 나서는 예산을 줄여서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었는데, 요즘은 뭐 다시 나오지 않을까…

그렇게 빵이 나오지 않고 나서도 나에게는 어떤 경로로 들어온, 유통기한이 조금 지난 전투식량인 동결건조 비빔밥이 몇 상자 있어서 자가 말도 경계 근무를 갔다오면 같이 나갔던 후임병에게 사발면과 그 비빔밥을 먹이곤 했었다. 지금이야 뭐 차라리 개밥을 먹으면 먹었지 그 따위 비빔밥은 먹지 않겠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동결건조 비빔밥이라는게 물만 부으면 정말 한끼 식사로 충분한 정도의, 전투식량 치고는 나름 실한 종류여서 늘 상한가를 쳤었으니, 그걸 몇 상자 가지고 후임병을 먹이던 나는 그들한테는 조금 사람취급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것도 나중에 중대 행정보급관에게 들켜서 빼앗기고야 말았지만.

지금도 바뀌지 않았을거라 생각하는데, 국방부에선가 정한 표준양으로 밥을 해서 먹이면 아무리 배가 고픈 이십 대 초반의 군인이더라도 한 사흘만에 배가 터져 죽게 될 것이다. 쌀과 보리를 9:1로 섞어 밥을 짓는데, 그 양이 생곡식으로 하루에 700그램 가까이, 그러니까 한 끼에 200 그램이 훨씬 넘으니까. 또 그 생곡식으로 밥을 하면… 그래서 정량대로 밥을 하면 잔반이 너무 많이 남으니까 취사병들은 오랜 경험으로 부대 인원수에 맞춰 밥을 하고, 그럼 꼭 장부에 표준량에 머릿수를 곱해 산출한 이론적인 쌀 소비량과 실제 쌀 소비량 사이에 차이가 생기게 된다. 그래서 그 간극을 메꾸기 위해 국방부에선가 도입한 개념이 ‘소비절약.’  정기적으로 재고 조사를 해서는 이론과 실제 소비량의 차이를 장부에 재기입, 재고를 맞추는 방법인 것이다. 이게 은근히 귀찮은 과정이라 애초에 군생활 잘 하고자 하는 마음 따위는 입대하던 날 논산 훈련소 정문 앞 구멍가게에서 키우던 개에게 주고온 나 따위가 꼬박꼬박 지켰을리는 없고… 해서 얼마에 한 번씩 간부가 검사를 한다고 얘기하면 그 날 부터 피땀흘려 계산을 적당히 해서 맞추는 삽질을 정기적으로 했었다. 더 웃겼던 건 그 소비절약이라는게 결국 나도 그만 안 나도 그만이니까, 그 남는 쌀을 다른 용도로 쓰고도 적절히 장부만 메꾸면 아무도 알아차릴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보급바닥에서 가장 오래 잔뼈를 굵히신 대대장님께서 아셔서 부처님 오신날 같은 때에 사단 절에 떡 해먹으라고 한 두 푸대씩 하사하시고 사후 통보라도 해 주시면 나는 늘 장부를 조작해서 그런 일 따위는 일어난 일 없는 것처럼 증거를 없앴던 기억이 난다.

사회에서는 잘 먹지 않는 생선일 수록 군대에서는 자주 밥상 초대를 받게 된다.  예를 들면 이면수나, 그것보다는 조금 더 사람들이 많이 먹지만 또 알고 보면 그렇게 잘 먹지 않는 가자미 같은 생선들. 언제나 수협과 군용 마크가 찍힌 납작한 상자에 네모 반듯하게 얼려져 십 킬로들이로 들어오곤 했는데, 이 생선들이 너무나 맛이 없어서 만들어도 먹는 병사들이 없었다. 그러나 군대니까 조리는 해야 하는 법, 이면수 조림이나 가자미 조림 따위는 버리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생선을 안 가져와도 되느냐하면 또 그건 절대 아닌 법… 만약 정량대로 가져오지 않아서 급식에 차질이 생기면 담당 계원인 내가 영창에 가게 되는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조심 또 조심을 하면서 부식 수령을 해왔었는데, 가자미 조림이 저녁 반찬으로 정해졌던 어느 날, 한 상자 반을 가져와야만 하는 가자미를 반 상자만 가지고 오는 사고를 저질렀었다. 아무리 아무도 먹지 않는 반찬이라지만 달랑 오 킬로그램만으로 만들어 올려 놓는다면 누구라도 적정량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터, 나는 궁리 끝에 울타리를 맞대고 있는 옆 부대 공병대의 계원에게 SOS를 날려 오 킬로그램을 추가로 공수, 거기에 취사병들을 시켜 평소보다 많은 무우를 넣어 조림을 만들게 한 뒤 저녁 반찬으로 올렸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거의 아무도 가자미 조림은 먹지 않았고, 누구의 눈에 띌세라 미친 듯이 부대를 뛰어 가로질러 공수해왔던 가자미 오 킬로그램은 그대로 잔반통으로 향해 어디엔가 그 잔반을 먹고 토실토실 살이 찐다는 돼지들에게로 전해졌다. 어쨌든 그날 그 가자미를 가져오지 않았다면 나는 영창은 가지 않았어도 군장은 한 이틀 정도 돌지 않았을까 싶다.

참, 가자미나 이면수 말고도 거의 모든 생선들이 정말 너무나 맛이 없었는데, 그 가운데 종종 매운탕을 위해 나오던 대구는 88년 쯤에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러시아에서 얼렸다는 소문도 있었다. 보통 팔뚝만한 대구들이 딱딱하게 얼어 있으면 구타도구로 너무 안성맞춤이라 누군가는 창고 뒷쪽으로 끌려가서 대구로 맞았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by bluexmas | 2009/04/12 18:47 | Life | 트랙백 | 덧글(2)

 Commented by 나녹 at 2009/04/14 09:18 

상표는 기억이 안나지만 저때도 도너츠 나왔어요. 안에 팥들은 거였음. 생선은 가끔 고등어조림, 칼치튀김 정도가 먹을만 했던 거 같네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4/14 20:25 

어느 군이나 군단에 속해있으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샤니의 코코넛 도너츠일 확률이 높죠. 생선은 원래 튀기면 그래도 다 먹을만 하니까요. 그러나 이면수 튀김은 그래도 영 아니었던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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