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

어딘지도 모를 동네의 아파트를 알아보신 뒤, 어머니가 눈에 띄게 조심스러운 어투로 사시는 아파트 바로 옆 단지가 새로 지어졌는데 오산에서 사는 건 어떻겠냐고 물어보셨을 때, 나 역시 평소 어머니에게 쓰는 것보다 훨씬 조심스러운 어투로 오산은 좀 그렇다고 얘기했었다, 처음에는.

사실 이런 상황에서 들어가는데 굳이 어디에 살아야 되겠다고 까탈스럽게 이런저런 조건들을 달아 내세우고 싶은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아예 집도 미리 봐 주시면 좋겠고, 고르시는 데면 어디라도 가서 살겠다고 얘기했던 것이었다. 덧붙이기를 옛날처럼 마장동에 가서 살고 싶은 생각도 있다고 했었고.  미리 봐서 정해놓으시면 설사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적응하고 살려 들테니까.

그렇지만 오산은 너무 멀었다. 사실 부모님마저도 오산에 무슨 연고가 있어서 거기까지 내려가신 것은 아니었다. 지난 삼십 몇 년을 수원에서만 쭉 사시다가 마지막에 다다랐던 곳이 그때 막 아파트가 들어서던 수원 영통 지구였는데, 그때만 해도 제대로 된 버스편 조차 없던 곳이 몇 년을 살다 보니 너무 복잡해졌고, 그래서 조금 더 한적한 곳을 찾아 내려오시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사시다 보니 마음에 드셔서 근 십 년 동안 떨어져 살아왔던 자식이 근처에 좀 살았으면… 생각하셨던 것.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계획이 제대로 진행된다면 나는 또 내년 가을이면 이곳을 뜨게 될 테고 그럼 또 언제 부모님이랑 가까이 살 수 있게 될지 모르니까… 라고 생각하니 나 역시도 멀리 떨어져 살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게 되었다.

뭐 그렇다고 단지 부모님 생각만 해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은 또 아니었다(굳이 이런 얘기를 꺼내는 건 아, 나 효자 되고 싶어서 나 불편한 것 감수하면서도 부모님 옆에 있으려고 하는 개착한 아들이에요- 라는 식의 인상을 주고 싶지 않기 때문). 당분간 돈을 벌지 않는 대신 하려고 하는 일들이 있는데, 사실 친구도 거의 없기는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너무 가까이 두고 살다 보면 그 생각했던 것들을 추진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 같기 때문에, 나 역시도 스스로를 좀 이런저런 것들로 부터 격리시켜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뭐 누구들처럼 산에 들어가거나 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그래서 당분간은 부모님 집에 얹혀 살고, 짐이 오면 바로 옆 단지에 살면서 어머니가 해 주시는 밥도 얻어 먹고 같이 차 몰고 장도 보러가고,  시간나면 산에도 같이 가면서 살 생각이다. 밥을 얻어 먹는 대신 나는 빵 굽는 기술을 좀 연마해서 그거라도 좀 조달해 드려볼까, 라는 생각에 관련 책과 빵틀, 뭐 이런 것들을 좀 사서 짐에 챙겨 넣었다. 우리밀 밀가루가 얼마나 비싼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밀가루 사서 베이글 이런 거 만들어 드리고 그러면 좋지 않을까… 부모님과 떨어져 산지가 십 년? 그 십 년의 시간 동안 온갖 일들을 겪고 내 발로 부모님 가까운 곳에서 살겠다고 마음 먹게 되는 이런 상황을 다른 사람의 일처럼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참 사람 산다는게 별거 아니구나, 라는 너무 평범해서 말도 안 된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결국은 이렇게 되는 것을 참…

 by bluexmas | 2009/04/11 20:26 | Life | 트랙백 | 덧글(2)

 Commented by starla at 2009/04/11 21:24 

부모님께서 정말 좋아하시겠네요. 사실 아웅다웅 하더라도 잠시라도 곁에 있어 드리는 게 진짜 효도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그걸 못하죠. -_-

암튼, 쓰신 대로라면 이것이 일시적 체류가 되실지도 모르겠지만, 좌우간 한국 생활 잘 시작하세요~ 행운을 빕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4/12 09:52 

나이 먹을 만큼 먹다보니 부모님이랑도 싸울 일이 없더라구요. 사실 뭐 계속 같이 지내면 어떨까 모르겠지만, 아직은 그런 걸 생각할 필요가 없음에도 왠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뭐든 아웅다웅 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만들더라구요.

돌아오니 날씨가 참 좋아서 마음이 편하더라구요. 더 따뜻해야 될 아틀란타는 제가 오기 직전에 눈도 오고 추웠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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