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 막김치

시험도 보고 나니 멍해져서, 아 멍해진 김에 김치나 담궈볼까, 생각하고 집에 오는 길에 대대적으로 장을 보아왔다. 돌아오자마자 배추부터 썰어서 절이고, 나가서 10킬로미터 달리기하고 저녁을 먹었더니 뻗었다. 결국 김치 담그기를 마친 시간은 자정. 재작년 집에 갔을 때였나, 아니면 두 양반이 오셨을 때였나 시골에서 빻았다는 고추가루를 챙겨주셨는데, 매운 고추가루랑 덜 매운 고추가루가 있으니까 김치를 담글 때에는 반반씩 섞어서 쓰라고, 딱지까지 붙여주셨는데 두 고추가루 모두 굉장히 매워서 김치에 고추가루가 섞인 정도로만 담아도 어머니가 담근 김치 같은 건 먹고 자란 적이 없는 사람이 만든 것 같은 매운 맛이 난다. 그래서 언제나 얼마나 간이 잘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매운맛에 가려서 짠맛을 느끼기 힘드니까. 어쨌든 그 실패를 만회해보고자 너무 짠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소금을 쳤다.

때깔 좋은게 라면 끓여서 같이 먹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어쩌면 미국에서 담그는 마지막 김치일지도 모르겠다. 두 양반은 아들이 돌아오는 걸 기정사실로 생각하고 계신지, 요즘 기분이 좋아보인다. 어머니는 어제 ‘오면 반찬은 나한테서 가져다 먹으면 되고…’ 아들도 지난 5년 동안 내공이 쌓여서 이젠 풀코스로 해드릴 수 있는데. 그러려고 음식 만드는 것 연습하지 않았나? 먹여주고 싶은 사람들 대접해주려고… 이제 회사 안 다니니까 불특정 다수를 위한 음식 안 해서 너무 좋다. 30명분 이런 건 이제 너무 버겁다. 다섯명 이내로만.

때깔은 좋은데 사진이 별로구나.

 by bluexmas | 2009/02/17 15:15 | Taste | 트랙백 | 덧글(4)

 Commented by slumber at 2009/02/18 07:20 

윽, 때깔이 너무 고와요. 집에서 만든 김치 못 먹은지 벌써 3년은 된 듯.

저희 냉동실에도 한국산 고춧가루는 고이 저장되어 있는데… 출장김치는 안 담아주시나요? -.-;;;

다음에 태어나면 저와 꼭 이웃하고 살아주세요. T_T

 Commented by 나녹 at 2009/02/18 08:02 

아 김치는 아직 넘사벽인듯해요.동네수퍼에서 걷절이 사다 1주일정도 묵혀먹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turtle at 2009/02/21 00:08 

김치 정말 겉보기로는 완벽해 보이는데 말이지요!

직접 시골에서 빻았다는 고추가루를 쓰셨다니 부러운데요? 요즘은 그런 진짜 고추가루 구하기가 쉽지 않대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2/21 06:48 

slumber님: 그렇다면 이제 담그실 시기인데요? 깍두기부터 시작하시면 될 것 같은데…^^ 다음에 태어나면 slumber님이 김치 담글 줄 아시고 제가 얻어먹을 수 있다면 이웃하죠 뭐.

나녹님: 넘사벽이 뭔가요? 이런 것도 알아야 고국생활 좀 할텐데…-_-;;; 그냥 김치보다 겉절이 익힌게 더 맛있나요?

turtle님: 익히고 있는데 어째 맛이 이번에도 좀 확실치 않아요. 배추김치는 언제나 실패할 확률이 너무 높아서요. 외가가 충남에 있어서 고추가루가 거기에서 올라오곤 해요. 역시 맛이 다르더라구요. 여기 수퍼마켓에서 파는 것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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