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일기(18)-두 번째 시험

실업자는 되었어도 면허시험 날짜는 다가오는구나- 한 가지 차이점이라면 시험에 붙어도 시험비용을 돌려 받을 회사가 없다는 것. 어쨌든, 방금 두 번째 시험을 보고 들어왔다. 아마 이 시험이 내 생애에 가장 공부 안 하고 본 시험으로 기록될 것. ‘이야, 이제 회사 갈 일이 없으니까 빡세게 공부해서 꼭 붙어야지’ 실업자가 된지 아직 채 20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런 생각을 했던 때가 마치 영원인 것처럼 기억되는 이유는 대체 뭘까… 역시나 필기가 어렵고, 단 한 번 집에서 연습해본 실기는 생각보다 쉬워서 선방했다고 생각하니 뿌듯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붙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단지 떨어지고 붙고의 확률이 80:20에서 55:45 정도로 생각될 만큼 시험을 보았다는 정도…

실업자가 되기 전전주 금요일이었나, 언제나처럼 M 선배와 점심 쌀국수를 먹고 근처 커피가게에서 땡땡이를 치고 있었는데 그는 또 나에게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은 눈치였다. 뭐랄까 그건 참으로 정기적인 행사와 같은 것이었다. 두 달에 한 번 정도? 언제나 내용은 같았다. 너는 내가 와서 뭘 하나고 물어봐도 잘 대답을 안 하고, 또 하고 있는 일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뭐 이제 그와도 회사를 같이 다닐 일이 없으니(사실은 만나게나 될지 모르겠다. 난 언제나 그렇듯 회사 안 다니면 회사 사람들하고 연락 하나도 안 하고도 마음 편하게 지내니까… ), 이제는 생각해야 될 필요도 없지만, 그는 가끔 나에게 와서 뭘 하는지 물어보거나 또 뭘 하는지 알면 그 가운데 이런저런 것들을 찝어서 물어보곤 했다. 그런 상황이 오면 나는 언제나 잘 모른다고 얘기하곤 했고, 그게 어느 정도 기간 동안 쌓이면 그는 꼭 오랫동안 참아왔다가 얘기하는 것처럼 너는 왜 일을 하는데 별로 아는 것 같지 않냐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서 그때에는 한국에 살지도 않는데 자기도 한국에서의 방식처럼 이렇게 누군가에게 무엇인가 얘기를 하는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언제나 대체 그게 나에게 혹은 내가 무엇이 되기를 바라고 저런 걸 물어보는지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알고 있더라도 뭔가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뭔가 다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모르는 것도 꽤 됐겠지. 어쨌든, 청개구리 기질이 만만치 않게 있는 나로써는 어떤 수직관계에서 아래에 있는 사람이 뭔가 모르는 게 더 문제가 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상황을 늘 싫어했었다. 그저 내가 모르는것만 문제가 되는거지. 가끔은 대답하지 못할 것 같은 종류의 물음들을 던지고 싶은 때도 있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걸 남들도 똑같이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아는 걸 자기가 모르는 건 별로 상관하지 않으면서.

어쨌든, 그에게 내가 가진 진짜 삶의 목표라는게 건축의 밖에 있고 그건 이런저런거라는 얘기를 했다면, 그가 더 이상 나에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았을지 궁금했었다. 그럴지도…하지만 단 한 번도 얘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위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범위 내에서만 반응한다. 관심을 가지든 안 가지든 그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만 때로 사람들은 그럴 수도 있다는 사실까지도 잊어버린다. 얘기가 길었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나를 모자란 사람 취급했었다. P는 어떤 자리에서 나에게 역정 비슷한 걸 내면서, 나이가 그렇게 먹었으면 더 늦기 전에 길 하나를 정해서 가야되는 것 아니냐고 얘기했었다. 그런 사람들은 내가 자신에게 말을 하지 않으면 내가 그런 생각 따위도 없이 그냥 밥이나 먹고 사는 줄 안다. 요즘은 그런 상황에 처하지 않으니까 마음이 편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진심으로 바라건데 그 사람들이 나라는 사람은 아예 없었다는 것처럼 기억하지 않아줬으면 좋겠다. 살면서 스쳐갔던 모든 사람들에게 기억될 필요도 없지 않나? 어쨌거나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정리해고를 당하고 나니 뭔가 아이러니 비슷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 사람들, 내가 자기들이 얘기하는대로 하지 않아서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려나?

 by bluexmas | 2009/02/17 08:22 | Life | 트랙백 | 덧글(2)

 Commented at 2009/02/17 23:2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2/21 06:49 

덧글을 너무 늦게 달았는데, 붙으셨어요? 저도 운전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필요에 의해서 하니까 뭐 어쩔 수 없죠.

1 Response

  1. Capri says:

    몇일전 우연히 검색하다 팟캐스트까지 요즘 듣고 있는중인데 눈팅족으로만 있기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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