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종류 봄의 2인3각

그러니까 저 사진을 찍은 그 해쯤 부터, 나에게 봄은 언제나 함께 찾아오지 않았다. 함께라니, 무슨 소리? 사람들은 잘 모른다. 봄이온다고 그게 그냥 봄이 오는게 아니라, 몸의 봄과 마음의 봄이 함께 찾아와야 정말 봄이 그들이 그렇게 알고 있듯 찾아오는 것이라고. 봄이 오는 과정은, 기나긴 겨울의 시작에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땅끝 어딘가에서 시작되는 2인3각 경주 같은 것이다. 각각 외두 봄이 한쪽 다리씩을 묶고 절뚝거리며 걸어오는 기나긴, 그리고 고통스러운 여정. 마치 기나긴 그 마라톤의 마지막이 사람들 가득 들어찬 경기장에서 사람들의 환호를 몸에 하나 가득 않으며 마무리 되듯, 두 봄의 여정도 봄의 기대로 밤잠조차 설치는 사람들이 가득 들어찬, 당신이 아는 그 어딘가에서 마무리 된다. 나의 두 봄은, 아니 마음의 봄은 언제나 마지막 모퉁이를 돌 때쯤 기력을 다해왔었다. 그래서 백 여 미터쯤을 남겨두고 비틀거렸고, 몸의 봄은 그런 마음의 봄에게 언제나 짜증을 냈었다. 짜증은 에너지가 될 수 없으니까 마음의 봄은 그 짜증에 아랑곳하지 않고 결국 쓰러진다. 몸의 봄은 완전히 바닥에 널부러진 마음의 봄을 발목에 매단채로 마지막 그 백 여 미터를 가보려고 안간힘을 써 보지만, 그도 지친지가 오래라 더 이상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어진다.그 사이에 많은 사람들의 두 봄이 그들의 옆을 스쳐 지나간다. 결국 짜증이 나 버린 마음의 봄은, 관중석 어딘가에서 누군가 열심히 흔들던, 나뭇잎의 색을 닮은 깃발을 빼앗아서는, 그 깃봉의 끝으로 널부러진 녀석의 눈을 사정없이 쑤셔버린다. 결국 몸의 봄은 파닥거리다가 숨을 거두고, 마음의 봄은 끈을 풀어버리고는 경기장 밖으로 걸어, 다시 언제나 겨울인 땅끝 그 어딘가로 사라진다. 그리하여 실격한 나의 봄은, 다른 사람들의 봄들이 제자리를 찾아와도 소식이 없었다. 그러니 봄에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우울했었다.

그러나 올해는 조금 다르다. 가을의 끝 무렵인가, 그 둘은 편지를 보내서는 그동안의 구린 팀워크에 대해 사과하면서 그동안 열심히 훈련을 했으니 올해는 실망시키지 않고 완주해서 나에게도 그럴듯한 봄을 안겨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이제는 그럴 때도 되었지, 나는 편지를 다시 곱게 접어 봉투에 도로 넣으면서 중얼거렸다. 굳이 혼잣말이어야 될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아무도 없었으니 뭘 말해도 이 공간에서는 혼잣말이었으니까. 올해는 경기도 별로 좋지 않고 사람들도 다들 너무 우울하다고 봄도 빨리 찾아올 예정이라고 하니 담요랑 물이나 챙겨서 나도 오랜만에 한 번 마중을 나가봐야겠다. 이제 며칠 남지 않았고 또 그럴 때도 되었다. 너무 오랫동안 이렇게 살아왔다, 남들에게 동정심 한 오라기 따뜻하게 건네 본 기억 없는 냉혈한인 내 자신이 스스로를 동정할 위기에 처하기 직전까지 그렇게 오랫동안.

 by bluexmas | 2009/02/16 15:18 |  | 트랙백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