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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번째 글.

그날이 무슨 요일이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2000년 1월이었던 것 같다. 몹시 추운 날이었고 내가 일을 배운답시고 차비만 받으면서 일했던 설계사무소의 팀에서는 회식이 있었다. 무슨 회식이었는지도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는다. 견습생이라는 딱지를 이마에 달고 일했던 그 겨울, 내가 발을 들여놓고 처음 있는 회식이었다. 그러나 나는 갈 수가 없었다. 오디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방학이면 거의 정기적으로 미국 나들이를 가지곤 했던 나의 상대역은 자기가 미국에서 돌아오는 바로 그 저녁에 오디션이 있을테니 준비하라고 통보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회식에 참석하지 못하겠다고 눈치를 보면서 얘기했고 사람들은 너무나 당연스럽게도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를 드러내놓고 풍겼다. 퇴근 30분 전,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만 하는 곳이 약속장소였는데 양말 발 뒷꿈치에 구멍이 나있음을 알아차렸다. 다행스럽게도 아파트촌과 이웃한 회사에서 일을 했던지라 근처 아파트 상가에서 부랴부랴 새 양말을 사 신었다. 늘 가던 LG 마트나 동대문 시장에 비해 가격이 턱없이 비쌌으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오디션을 봐야만 하니까.

다섯시 반을 조금 넘긴 시간에 퇴근해서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 약속 장소로 향했다. 회사도 그렇고 약속 장소도 그렇고 집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는 77번의 노선 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77번은 그러니까 내가 사랑하는 버스였다. 이상하게도 나에겐 같은 번호가 여러번 겹치는 버스와 인연 아닌 인연이 있었는데, 그런 인연 아닌 인연은 555번과 처음 맺었었다. 대학 새내기 시절, 지금처럼 수원에서 서울에 가는 버스가 많지 않았을때 나는 수원의 북문에서 사당역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종점인 사당역에서 내려서는 전철을 타고 학교까지 가곤 했는데, 가끔 시간이 많을때는 미친척하고 555번을 타곤 했었다. 이 555번이라는 버스는 사람들의 입에 미친 버스로 오르내리던 것으로, 사당역에서 탈 수 있었지만 거기가 출발점도 아니었고, 어딘지 지금은 기억도 안 나는 온갖 서울의 산동네들을 돌아다니다가 학교가 있는 왕십리까지 나를 데려다주고도 그게 끝이 아니었었다. 버스에 써 있던 바로는 종점은 망우리였다. 왕십리도 서울의 중심은 아니었지만 망우리라는 동네는 지금도 어디있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을만큼 멀리 있는 동네였다, 적어도 서울 사람이 아닌 나에게는. 어쨌거나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에 호기심이 언제나 많았던 경기도민이었던 나는 그렇게 시간이 남을때면 555번을 타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막히는 길만 골라서 가는 버스를 타는 신선놀음을 했었다. 그때는 지하철 5호선을 위한 공사가 한참 진행되던 때여서 어딘지도 지금은 기억 안 나는 산동네를 오르면 버스는 한없이 느린 걸음을 걷곤 했었다. 평균 한 시간이 걸렸지만 언젠가는 수업 시간으로부터 거의 두 시간을 남기고 버스를 탔는데도 지각한 적도 있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같은 번호가 반복되는 버스와 엉거주춤한 인연을 맺고는 마장동으로 이사를 와서 77번과 또 다른 인연을 맺었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면 언제나 성수대교를 건너 강남으로 향할 수 있는 노선이었지만, 그렇게 견습생으로 회사를 다닐때에는 어떻게 막힐지 모른다는 생각에 버스를 타고 출근했던 기억이 거의 없었다. 언제나 지하철을 타고 압구정역으로 향하곤 했다. 회사는 논현동, 지금은 없어진 시네하우스 바로 뒷골목이었으니 보통은 압구정역에서 내려서 걷곤했다. 지금 기억을 돌아보면 나는 그 길을 좋아했던 것도 같다.

어쨌거나 오디션 장소는 회사처럼 77번이 지나가는 길 위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오디션을 마치고 집에 가는 버스를 타면 편하겠다고 생각했다. 아침에는 차가 막힐까봐 시도를 해보지 못했지만, 늦은 시간에 77번은 참으로 사랑스러운 버스였다. 압구정동이나 논현동 어딘가에서 잡아타면 강남의 일부인 그 동네를 한 바퀴 도는 서비스를 제공하고는 하나도 막히지 않는 성수대교를 살짝 느린 총알처럼 달려 15분 안에 마장동에 데려다주고는 했으니까. 그렇게 오디션 장소가 77번이 다니는 길 위라는 이유만으로 나는 좋은 예감을 가졌었다. 오디션이라는게 쉬운게 아닌데 이번엔 잘 할 수 있을거라는 예감이 있었다. 작은 성공이 크나큰 실패를 불러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차마 염두에 두어보지도 못한채.

오디션 장소는 나같은 경기도민이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무슨 한식당이었다. 애초에 나는 서울 사람도 아니었고 가족들도 외식과는 담을 쌓고 살다가 가끔 중국음식이나 먹어주는 촌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생전 처음 오는 이런 낯선 장소에 대한 경계심에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언제나 말했던 적이 있던가? 나에게는 엄한 부모님 밑에서 본능적으로 얻은 가식이라는 비밀무기가 있었다. 평소엔 아무 생각없디 살다가도 막상 그래야만 되는 상황이 닥치면 지금은 아무도 쓰지 않는 가정예절준칙 따위에 입각한 고어를 줄줄 늘어놓으며 마치 엄청나게 뼈대있는 집에서 조선시대 가정교육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그런 가식… 그래서 그런 자리에서 나를 만난 사람들은 내가 주말만 되면 친구들이 연주하는 클럽에 찾아가서 술과 담배에 쩌들어 사는 사람일거라고 감히 생각할 수조차 없었고, 그건 내가 한국에 스파르타가 있었다면 바로 이런 것이었겠지, 라고 짐작할 수 있는 가정환경에서 자란 사람으로써 전가의 보도처럼 쓸 수 있는 그런 비밀무기와도 같은 가식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가식이라면 자신있었다, 그게 바로 내 본래 모습인 것처럼 남들에게 아무 거리낌없이 보여줄 수 있었으니까~

그런 가식의 일환으로써 나 외의 모든 사람들보다 일찍 도착해 천장이 높아 썰렁한 방에서 기다리다가 상대역과 기획사의 남녀매니저, 그리고 아무런 의미없는 떨거지들 몇 명이 합석을 한 가운데 저녁식사를 가장한 오디션은 시작되었다. 지금도 기억나지만 이런 오디션에서 연기에 관련된 얘기는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되는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내 나름대로 가식을 바탕으로 한 연기를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보여주었던 것은 그 가식에 바탕한 최고의 연기… 주말이면 친구들과 밤이 새도록 술과 담배를 빨던 그 입으로 나는 “네, 저희 아버님께서는 X자 Y를 존함으로 쓰시고 한성대학을 졸업하신 다음에…” 와 같은, 지금이라면 화석으로도 여겨지지 않는 대사들을 읊어댔었다. 물론 그러면서 얼굴은 계속 웃음을 띄고 있었고 무슨 음식인지 알아차리지도 못한채 열심히 입에 우겨넣었었다. 어차피 비싼 식당에서 먹는 음식인데 뭔들 어떠리, 하는 마음으로. 그러나 그 어느 순간에도 나는 젓가락과 숫가락을 한 손에 쥐지 않았다. 그건 그 엄한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가정교육을 상기하기 이전에 교육방송 EBS에서조차 예절에 어긋난 행동으로 정의하던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난 젓가락을 내려놓을때마다 의도적으로 딱딱 소리를 내어가며 젓가락을 받침에다 내려놓곤 했었다. 싸가지 없게도 ‘이런 예의범절이라는 것도 있는데 들어는 봤나’ 라고 묻듯 그렇게… 여자 매니저는 사실 전에 한 번 만난적이 있어서 벌써 파악이 되어있었지만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남자매니저는 완벽한 포커페이스로 녹이기 쉽지 않은 상대였다. 결국 우리는 무의식중에 각자가 가진 가식의 한판 대결을 벌렸던 것이다. 이제와서 돌아보건데, 하하.

어쨌든 비싼 식당답게 몇 시간이 걸리는,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뭔가를 끊임없이 먹은 뒤에 오디션은 막을 내렸고, 이제는 모두가 헤어져야 할 시간, 그래봐야 모두는 나와 나머지였고 차 한 대에 나머지 모두를 태울 공간은 있었지만 나를 위한 공간은 없었고, 나는 어차피 77번이 바로 그 앞을 지나가는 상황이었으므로 혼자 가겠다고 얘기를 했다. 그렇게 처음 만났던 남자 매니저와 끝까지 가식으로 채워진 악수를 나누고 길을 나서는데 나를 제외한 나머지를 태운 중형차가 식당 주차장을 나서고 있었고, 나는 길에 서서 오던 차들을 잠시 막아 세우고 그 나머지를 태운 차를 위한 길을 내어주었다. 차는 곧 나머지들이 사는 집을 향해 사라져갔고 나는 그 차가 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잠시 서서 바라보았다. 그렇게 그 차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던 순간에 처음 깨달았다. 살다 보면 어떤 순간엔 세상이 나, 그리고 나머지로 이루어진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거라고. 그렇다면 그때 나의 감정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우월감, 아니면 그 완전 반대 축에 머물고 있는 차마 입에조차 담을 수 없는 그 감정? 앞에서 말했던가? 내가 사랑하는 77번은 그 일대를 한 바퀴 돌면서 나같은 촌놈에게 투어의 기회를 준다고? 그러나 가식으로 가득찬 이 오디션에 너무 몰두해있던 나머지 번화가 투어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그냥 그 길을 걷고 또 걷다가 어느 모퉁이를 돌아 또 걸어 집 방향인 국세청에서 77번을 탔고, 이미 열 한시가 다 된 그때 내가 사랑하는 그 버스는 살짝 느린 총알처럼 거리를, 그리고 다리를 가로질러 나를 마장동에 내려놓았다. 언제나처럼 아무도 찾지 않는 그 빵집 바로 건너편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언제나처럼 사람들은 하이타이에 곱창을 빨고 있었고 나는 그 날 밤, 두 매니저가 모두 오디션에 만족했더라는, 상대역으로부터의 소식을 들었다. 그 모든 것은 결국 나의 가식 덕분이었지만 그 짧은 순간의 성공은 그보다 더 긴 기간동안의 실패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가식과 무지에 대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뤄야만 했다.

 by bluexmas | 2008/10/20 14:51 |  | 트랙백 | 덧글(5)

 Commented by 모조 at 2008/10/20 16:18  

다음편이 기대됩니다!

 Commented by rune at 2008/10/20 22:48  

가식여부와 상관없이 무지의 댓가는 어느상황이나 혹독하잖아요. 오디션까지는 선택이셨잖아요. 무대를 원한게 무지였다면 그건 원망할 수 있겠지만, 무대를 바랐던 가식까지 탓하지는 마세요. 하지만 bluexmas님이라면 어쩐지 원망하지도 탓하지도 않는다고 대답하실 것 같아서 나쁘지 않으면서도 쓸쓸해요.

 Commented by 무명 at 2008/10/20 23:41  

여러번 망설이다가….

쓸쓸한 어깨 한번 토닥, 하고 갑니다.

 Commented by basic at 2008/10/21 03:52 

음……이것은 픽션인가요 논픽션인가요…그리고 이건 문맥과 조금 상관없는 질문이긴 한데;;; 하이타이(세제이름?)에 곱창을 빨고 있다는 게 뭔가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10/22 10:56 

모조님: 아쉽게도 다음 편은 없어요. 그냥 700번에 77번 버스에 대한 글을 쓰면 맞을 것 같아서…

rune님:… 남탓 하다보면 결국 돌고 돌아서 자신을 탓하게 되더라는, 뭐 그런 옛날 얘기가 있죠. 사실은 쓸쓸한 얘기 하려고 쓴게 아니라 웃자고 쓴 얘긴데 그렇 분위기가 안 풍겼나봐요. 전 막 웃으면서 썼거든요, 믿거나 말거나…

그나저나 블로그 없으세요? 아이디는 처음 보는 것 같아요.

무명님: 위에서 말한 것처럼 쓸쓸하다는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쓴 건 아니지만 토닥거려주시니 감사히 받겠습니다…

basic님: 글쎄 뭐 실환지 아닌지 따지는 건 별로 의미가 없지 않을까요? 그럴수도 아닐수도… 곱창과 하이타이는, 그 식당에 납품 나가는 곱창을 마장동 가게들에서 물로 빠는데, 하이타이를 쓴다고… 하이타이 쓰는 건 보지 못했는데 곱창 빠는 환경이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하죠. 곱창 좋아하는데 그 동네 살고 나서 잘 안 먹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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