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 동안 잡담

회사 바로 앞, 그러니까 문자 그대로 10초만에 갈 수 있는 바로 앞의 콘서트 홀에서 Magnetic Fields의 공연이 있다, 28분 뒤에. 학교에 가서 운동을 하고 돌아올까, 아니면 남아서 일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그냥 책상에 붙어서 일을 했다. 오늘도 아침엔 아침 만드는 삽질하느라 늦게 오고 일은 복잡해서 손에 잘 안 잡히는데다가 또 할만하면 컴퓨터가 말썽이고… 도저히 다섯시 반, 여섯시에 퇴근해서 운동하러 갈 수가 없었다. 요즘은 계속 이런 식이다. 제 시간에 퇴근하려면 뭔가 일을 하다가 만 것 같은 기분.

이번 아침 준비는 정말 삽질 중의 대삽질이었다. 시간을 줄일 수 있을까 생각해서 선택한 메뉴가 반대로 시간이 더 많이 걸려서 다 챙겨서 집에서 나온게 아홉시 십 오분이었다. 감자 스물 다섯개 채칼로 써는데 거의 이십 분이나 걸리고, 미리 채 썰어져 파는 치즈는 달라붙지 말라고 가공처리를 하는데 그게 싫어서 덩어리 치즈를 샀더니 집에 있는 강판으로는 도저히 갈리지가 않는 사태가… 결국 믹서에 딸린 고기갈이를 꺼내서 치즈를 갈아야만 했다. 어제 대강 준비를 했는데 잠이 안 와서 두 시반까지 멍청하게 있다가 세 시간을 자고 일어나서 치즈를 갈려니 팔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천도복숭아는 반으로 갈라서 씨를 빼냈더니 그 씨를 빼낸 부분은 먹을 수가 없어서 반쪽짜리 천도복숭아 50개의 속을 하나하나 숟가락으로  파내는 노동을… 거기에 최악의 재앙은, 오븐을 몇 년 째 쓰고도 브로일러가 오븐의 밑에 따로 달린 줄을 몰라서 그냥 오븐에 음식을 넣어놓고서 왜 바닥이 뜨거워지는 걸까, 왜 아무런 변화도 없는 걸까 의문에 빠져 한참을 소비했다는 것(맨 위에 치즈를 얹는 음식은 마지막 마무리를 브로일러에서 하면 치즈가 아주 잘 녹은것과 완전히 타 버린 것의 중간 어딘가에 머물면서 crust를 만들어준다)… 그래서 준비한 음식들이 별로 마음에 들지도 않았고(간을 봤는데 어딘가는 짜고 또 어딘가는 싱겁고…), 시간은 또 시간대로 늦고 해서 기분이 최악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다들 맛있게 먹어줘서 한시름 덜 수 있었다. 냉동식품만 먹는 애들이라서 맛있게 먹어주는건지 참… 나 혼자 먹을 음식 만드는 건 문제가 없는데 이렇게 서른 명 분을 한꺼번에 만들면 정말 예상치 않은 부분에서 문제가 생겨 난감할때가 많다. 덕분에 부엌은 완전히 쓰레기통이라 돌아가기가 무서운 상황이다.

내일은 Mila Kunis(우리나라에 개봉했는지 모르겠는데 Forgetting Sarah Marshall에 나오는데, 영화도 재미있고 Mila Kunis도 깜찍하다…That 70’s Show의 그 Mila Kunis) 때문에라도 Max Payne을 보려고 했더니 평가가 그야말로 최악이라서 그냥 집에서 청소나 할 것 같다. 넥플릭스에서 음식남녀를 빌려서 그거라도 보면 되는데, 이제서야 음식남녀 보는 사람은 나 밖에 없을 듯.

(나가야 되는데 주말에 집에서 좀 볼까 출력하는 도면들의 용량이 너무 커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 프로젝트가 복잡하면 이래서 힘들다. 프로젝트 자체를 이해하기도 힘들고 파일도 크고 컴퓨터도 느려지고…)

공연을 보고 나서 새 앨범이랑 묶어서 글을 썼으면 좋겠다. 옛날엔 정말 아무 생각없이 음악에 대한 글도 마구 써 댔는데 요즘은 왜 이렇게 쓰기 힘든지 잘 모르겠다. 거기에다가 의식적으로 영어 표현을 안 쓰려니 더 어렵다. 하여간 마지막 도면이 막 나왔으니 내용도 없는 잡담은 여기에서 접고 공연장으로.

 by bluexmas | 2008/10/18 08:52 | Life | 트랙백 | 덧글(9)

 Commented by 무명 at 2008/10/18 11:41  

bluexmas님의 뒷모습 사진이라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10/18 13:48 

어째 장난치시는 것처럼 들리는 건 제가 민감한 탓이겠죠? 메일 주소라도 남겨주시면 주말에 뒷모습만 찍어서 보내드리는 걸 고려해보겠습니다…

 Commented by 모조 at 2008/10/18 14:35  

저는 뒷태말고 영업용 미소사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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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좋았나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10/18 14:45 

단성사 뒷골목에서 2년전에 비자용 사진을 찍었는데, 그거 장난 아니게 영업용이에요. 너무 영업용이라 어디에 내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가식의 미소가 철철 넘쳐흐르죠.

공연, 당연히 좋았는데 어제 세 시간 밖에 못 자서 졸립더라구요. 오프닝땐 아예 잤어요. Papa was a Rodeo도 불렀어요^^

 Commented by 산만 at 2008/10/18 14:57 

느리게 도착한 달팽이각시가 설겆이를 해두지 않았을까요?

음식남녀 신나서 본 영화는 아닌데, 가끔씩 다시보고싶게 하더군요. 입꼭다물고 덤덤하게 요리하던 그녀가 생각나서.

 Commented at 2008/10/19 00:1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8/10/19 01:5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보리 at 2008/10/19 05:02 

아, 목요일날 음식남녀 봤어요. 보고나서 뽐뿌받아서 이번주말엔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있죠. ^^ 그나저나 아침식사 준비하시느라 수고하셨어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10/20 12:15 

산만님: 너무 느려서 설겆이는 언감생심이라죠. 게다가 저의 집은 금녀의 집이라 그 흔한 우렁각시도 출입을 금하고 있는게 현실이죠. 수도원과 같은 분위기에요.

음식남녀 저도 오늘 봤는데 생각보다는 별로더군요.

비공개 1님: 음식 포스팅이 아닌데 배고프다고 하시니 약간 난감한데요^^;;; 그나저나 덧글 말투가 제가 언제 알았던 사람과도 비슷한데, 혹시?

비공개 2님: 위에서 덧글 단 것처럼 금녀의 집이라서…;;;;

보리님: 보셨군요. 저는 딸내미가 회사 아예 그만두고 음식 만드는 길로 접어드는 얘기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더라구요. 역시 저의 무지가…

그나저나 이번 아침식사는 정말 초대형 삽질이었어요. 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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