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소적인 나

“기분 나쁘더라구요.”

“뭐가요?”

” 냉소적인 사람이라는 얘기를 듣는게.”

“뭐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아직도 그런 얘기를 듣고 기분이 나빠지고 그런대요? 그리고 본인이 냉소적인거 누구보다 잘 알지 않아요?”

“그래도 기분 나쁜 건 나쁜거죠. 사실 나는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 그런 얘기를 앞에서 대놓고 한다는 사실에 더 당황했어요.”

“뭐 듣고보니 그건 그럴만도 하네요. 뭐 어차피 다시 만날 사람도 아닌데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바로 그런 사람들 덕분에 내가 하루하루 지날 수록 혈중냉소농도를 증진시키고 있는지 알라나 모르겠어요.”

“냉소적이기만 하면 뭐 그럭저럭 봐줄만한데, 냉소적인거랑 유치한거랑 손을 잡으면 정말 짜증나거든요. 혈중냉소농도라니, 거참 간만에 제대로 유치하네요?”

“나를 비난하는 걸 보니 역시 당신도 내 편이 아니군요. 잘 알았어요. 난 그냥 이렇게 생겨먹은대로 살꺼니까 당신도 이제 사람답게 사는 법 따위 알려주겠다고 나서서 잔소리하지 마시고 그냥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가지 그러세요?”

“네, 좋으실대로.”

2.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을 우연히 만날 일이 있다고 치자. 30분도 좋고 뭐 한 시간도 좋고 그보다 조금 더 긴 서너시간도 좋으니 생전 처음 만난 누군가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수다를 떤다고 치자.  그렇게 별로 길지도 않은 시간동안 수다를 떨고 나서 내가 상대방한테 예를 들어 “얘기해보니  성격이 굉장히 쪼잔하신 것 같아요.” 라고 말하면 상대방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오슬로에서 이틀 머무르는 동안 몇 번이나 마주친 모녀가 있었는데, 워낙 한국사람 없는 여행지를 다니다보니 진작 아는체 할만도 했는데 귀찮아서 안 하다가 베르겐으로 가는 길에 벌어지는  그 피요르드 맛보기 관광의 마지막 두어시간 동안의 버스-기차 여행에서 다른 혼자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야말로 무작정 떠난 대여섯살 어린 여자 직장인과 수다를 떨게 되었다. 나는 벌써 일정의 2/3를 끝냈고 이 동네 주요 도시들을 돌아보아서 나에게 어디에 가면 뭘 보면 좋은지를 주로 물어보았고, 우리나라의 그 딱 한 권 있는 북유럽 안내책자가 몇 년은 묵은 일본 것을 번역한 것이라서 별 볼일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Rick Steves의 책을 보여주면서 이런 저런 내가 보았던 것들을 얘기해주고 그 밖의  시간은 그야말로 시간을 죽이기 위한 수다로 때웠다. 시간이 되어 기차가 베르겐에 도착해서 기차 사진도 찍고 뭐 이런저런 사진을 찍다가 각자의 길로 향하려는 찰나, 서울에서 모 대기업엘 다닌다는 모녀의 딸(역시 나보다 대여섯살 어린 것으로 추정)이 나에게 “블로그 하세요? 하시면 사진 찍은 거 가서 다운 받으면 되는데… 그런데 냉소적이셔서 블로그는 안 할 것 같아” 라는 말을 던지고 나는 약간 망연자실. 그 이유인 즉슨,

1. 대체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안다고.

2. 설사 나를 안다고 해도 과연 저런 종류의 ‘평가’ 하는 말을 대놓고 할 수 있는 건가.

물론, 내가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지라 나에게 냉소적인 구석이 있다는 것, 나도 너무 잘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처음만나 몇 시간 얘기한 사람에게 냉소적인 사람이라는 얘기를 들어야 된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사실 사람들 만나서 이런 일이 한 두번 벌어지는게 아니라 사실 그렇게 기분 나쁜 일도 없고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요즘이지만 아직도 사람들의 그런 행동에 대해서는 잘 이해가 안 된다.

그냥 2. 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상황이 여행 도중에 있었다. 그냥 이런저런 생각에 오는 비행기에서 심심풀이 겸 끄적거려 놓았는데 사실 내가 생각한 것과는 조금 다른 글이 되었고 내가 생각했던게 나도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서 그냥 버릴까 생각도 했는데 그건 또 아까워서 올린다. 며칠동안 곰곰히 생각해본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다 다르므로 내가 누군가를 보고 나를 기준삼아서 평가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거기까진 그럴 수 있다고 치더라도 과연 그걸 그 평가의 목적격이 된 사람에게 대놓고 말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다시 말하자면 누군가가 냉소적인 인간인 것과 그 사람에게 대놓고 냉소적인 인간이라고 말하는 것 둘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저급한 인간의 가치인 것일까? 글쎄, 나야 뭐 냉소적인 인간이니 알 턱이…

 by bluexmas | 2008/09/24 12:13 | Life | 트랙백 | 덧글(9)

 Commented by zizi at 2008/09/24 13:28 

맞아요. 타인에 대해서 뭘 안다고.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가 대단히 ‘사람보는 눈’이 있다고 믿는 나머지, 그런 말을 서슴없이 하더라구요.

(그나저나 ‘혈중냉소농도’라니 재미있는 표현이네요.)

 Commented by basic at 2008/09/24 14:09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한국사회의 빈번한 병적현상이라고 생각합니;;;; 더 웃기는 건 좋은 말은 절대 안 해주고 흠이 될 만한 점만 지적한다는 것. (저는 냉소적인 게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요. -> 사실 저도 좀 냉소적임 ㅋㅋ)

 Commented at 2008/09/24 15:5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천재소녀 at 2008/09/24 16:20 

공감가요. 이 글을 읽으니 예전에 있었던 일들이 생각나네요.

정말 기분 나쁘죠.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9/25 12:34 

zizi님: 유치한 표현이죠 뭐, 하하..비행기에서 심심해서 생각해낸거에요. 그건 그냥 사람보는 눈이 있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그냥 분별력이 없어서, 였을거에요^^

basic님: 성급한 일반화라기보다 그냥 개념없음으로 치부하면 안될까요?^^

전 사실 냉소의 왕이에요, 왕…하하…

비공개님: 누구한테 혼나셨어요? 왜소라는 단어는 사실 좋은 의미는 아니죠. 저희 아버지의 키가 사실 굉장히 작으셔서, 왜소하다는 단어는 옛날부터 쓰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냥 뭐랄까 어휘력이 딸리거나 싸가지가 없거나 둘 다 아니고 어려서, 아니면…

천재소녀님: 덧글은 두번째로 기억하는데, 잘 지내셨어요? 학교 졸업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이후의 삶이 마음에 드실까 모르겠어요. 사실, 뭐랄까 저는 저를 잘 알고 있어서 냉소적인 인간으로 사는 것, 내지는 타인에게 그렇게 인식되는 것 자체에는 별 신경이 안 쓰이는데 그런 얘기를 면전에서 듣고 싶지는 않아요. 이것도 모순일까요?^^

 Commented by 나녹 at 2008/09/25 23:12 

저는 딱히 그런 인상 못받았지 말입니다. 저와 여자친구 사이에선 아틀란타의 욘사마로 통하고 있으심-_-+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9/26 13:00 

별 말씀을… 두 분 잘 지내시죠? 아틀란타 한 번 놀러오시죠. 다 같이 갈비 구워서 포도주라도 드시면…^^

 Commented by 나녹 at 2008/09/26 21:04 

갈비에 포도주-ㅠ- 꼭 놀러갈게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9/27 13:34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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