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P의 끝

휴가를 떠나기 직전에 서류를 보내면서 예상했던 것처럼 방금 나의 IDP가 끝났다는 메일을 받았다. IDP는 Intern Development Program의 약자로써 이 바닥에서 일을 시작한 사람이 면허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갖추도록 개발된 프로그램이다. 위에 올린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NCARB(National Council of Architectural Registration Boards)라는 국가기관은 건축회사에서 일하는 나같은 인턴들이 하게 되는 일들을 어떤 기준에 따라 분류를 시키고, 그 관련된 일을 한 시간을 점수로 환산해서 얼마 이상의 점수를 따면 그 영역에 대한 기본 소양 또는 지식을 갖췄다고 인증을 해준다. 그래서 이 영역에 따라 그들이 정해놓은 시간과 그 시간의 총합이 기준 이상이 되면, NCARB는 그 인턴사원이 인턴 개발 프로그램을 수료했으므로 건축사 면허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음을 인증하고, 지원자가 원하는 주의 담당기관으로 이 정보를 전달해 시험을 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준다.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점수의 총 합계는 700점인데, 하루 여덟 시간을 1점으로 계산하니까 700점이면 700일, 이는 일주일에 5일을 야근없이 일한다는, 이 바닥 아니면 지구상에 절대 존재할 수 없는 여건에서 일했을 때 2년 반 정도가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휴일까지 계산한다면 결국은 평균 3년 정도가 걸리는 셈인데, 사실 휴일이고 뭐고 야근하는 경우도 많으니까 아주 이상적인 경우에 2년 반이면 700점을 채울 수 있다.

그러나 700점을 채운다고 능사가 아닌게, 위의 그림에 볼 수 있듯이 실무를 너무 세분화시켜 놓은데다가 어떤 분야의 점수는 따기가 다른 것들보다 어려운 경우가 많다. 내가 한 여름 줄창 했던 의자 점검은 다 현장관리(CA, Construction Administration)의 영역에 속하는 일인데, 이건 진짜 지어지는 건물이 있지 않는 한 경험을 얻기가 어렵다. 그래서 그렇게 미친듯 의자를… 하여간 그런 이유에서 나의 경우에도 일한 날로 따져서 129일을 더 일하고 나서야 모든 분야의 점수를 골고루 갖출 수 있게 된 것이다. 2005년 5월에 일 시작했으니 저걸 제출한 날짜를 기준으로 2년하고도 2개월이 걸린 것이다. 사실 이걸 정말 속이지 않고 골고루 경험을 갖춰 마무리하려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최소한의 이해와 도움이 필요한데, 솔직히 나한테는 그런게 99% 없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어떤 분야의 경험은 그냥 ‘가라’로 넣기 보다는 진짜 얻기를 바랬었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려도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채울 수 밖에 없었다.

이걸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조지아 주의 담당기관으로 이전해서 시험을 보게 해달라고 요청을 하면 그 시점에서 적어도 40일이 걸린다고 했기 때문에 올해 시험을 다 보겠다는 생각은 아무래도 버려야 할 것 같다. 참고로 시험은 올해 6월까지는 실기 한 과목을 포함한 아홉 과목이었는데 최근 시험제도 자체를 전면개정해서 내가 보는 시험은 전부 일곱 과목에 거의 모든 과목마다 실기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각 시험의 평균 응시비는 $200, 붙은 과목의 비용은 회사에서 갚아주고 아니면 자기 돈을 그냥 쳐 박는다. 돈도 지지리 못 버는 직업이 시험과 면허제도로 더럽게 복잡하게…

어쨌든 끝났다.

참, 한 가지 그냥 심심풀이로 덧붙이자면 사람들을 만나서 건축회사에 다닌다고 얘기하면 건축’설계사’ 로 일하는 건 어떻냐는 질문을 받게 되는데 건축설계사라는 직업은 없다. 나 같이 면허가 없는 사람들은 인턴이고, 면허를 따면 그냥 Architect 건축가라고 불린다. 아니면 주에 등록된 건축가라서 Registered Architect이라고 불리거나. 그러니까 보험설계사는 있어도 건축설계사는 없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면허를 따면 건축사가 되었다고 일컫는다. 여행중에 어딘가에서 동포를 만나 잠시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계속해서 건축설계사가 어쩌구 저쩌구, 하는 통에 처음엔 그러려니 했지만 나중엔 꽤 거슬렸다. 그러나 어차피 안 볼 사람인데 ‘사실은…’ 이라고 얘기해봐야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 다들 자기 직업세계밖에 모르는거니까, 어차피 나도 그렇고. 

 by bluexmas | 2008/09/19 13:39 | Architecture | 트랙백 | 덧글(6)

 Commented at 2008/09/20 04:3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9/21 13:21 

앗, 저는 구만리 가지고는 어림도 없어요. 이게 지금 계획하고 있는 것의 거의 첫번째 단계에 불과하거든요. 그 다음엔 더 많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사실 제 커리어의 완결은 건축이 아니어서요. 이거 빨리 지나가야 되는데 나이는 계속 먹고, 이룬 건 없고… 어쨌든 마음 든든해지신다면 얼마든지 동무는 해 드릴 수…^^

 Commented by 산만 at 2008/09/21 13:36 

기나긴 길을 오셨군요. (작은 목소리로) 축하드립니다. 친한친구가 건축전공으로 미국 대학5년다니며 고민하던시기에 이 지난한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들으며 질려했던 기억이 났어요. 딱히 결절점이나 이벤트가 있거나 한 것은 아닌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축배”를 드셨기를…

 Commented by 샤인 at 2008/09/22 00:37 

그래도 정말 뿌듯하시겠어요 =)

타지에서 있으면서 친구나 가족들에게서 얻는 그런게 부족해서인지

무언가를 성취한다는 그런 만족감이 훨씬 크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암튼 축하축하!! =)

 Commented by turtle at 2008/09/22 01:39 

첫 관문을 무사히 통과한 셈이신가요? 🙂 축하합니다! 앞으로도 멋진 결실 거두시기 바래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9/22 13:48 

산만님: 큰 목소리로 축하해주시면 더 기쁠텐데요^^ 그냥 주말에 10불짜리 포도주로 축배를… 엄청난 대박 포도주였어요. 축하 감사합니다.

샤인님: 남의 나라에서 성취감 찾기 좀 힘들죠. 하여간 감사합니다. 언제 아틀란타 또 안 오세요? 같이 월남 쌀국수 먹으면…

turtle님: 왠지 결실은 제가 거둘 수 있는 열매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감사합니다. 시험 볼 생각하니 끔찍해요. 언제 볼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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