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버린 몸들의 밤

회까지 한 점차이로 앞서고 있던 브레이브스는 8회말을 맞이하여 대량실점, 3:2 였던 점수를 6:3으로 벌려놓았고, 그는 야구를 볼 의미를 완전히 잃어버려 텔레비젼을 꺼버리고 새로 나온 언니네 이발관의 앨범을 듣고 있었다. 약간은 뜨뜻미지근한 감정으로 세 번째 곡을 듣고 있는데 어디에선가 역한 냄새가 밀려왔다. 살과 살을 맞대어 비비면 나는 냄새였다. 냉방때문에 창문을 꼭꼭 닫아놓았는데도 냄새는 꾸역꾸역 밀려들어왔다. 몸들이 밀려오는구나, 그렇지 않아도 텔레비젼을 보면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경보방송이 나오는 것을 들은 기억이 났다. 지난 주말에 끓인 육개장이 너무 매워서 정신을 못차리면서 먹고 있을때여서 제대로 머릿속에 새기지 못하고 지나친 모양이다. 그러나 문은 아까도 말했지만 냉방을 하려고 꼭꼭 닫아둔터라 안심이었다.

언제나 변하는 마음의 변덕에 참지 못하는 몸들이 마음을 버리고 달아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들이 찾는 것은 자유가 아닌 속박이었다. 변화없는 속박… 속박을 위해 도망치다니, 도망의 정의에서 비껴나가도 한참 비껴나간 도망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사실 알고보면 몸들이 도망치는 이유는 마음이 가진 변덕에 대한 질투라고 누군가가 귀띔해주었다. 몸은, 변덕을 부릴 수 없잖아. 일단 다 자라고 난 다음에는 자기 마음대로 형태를 바꿀 수도 없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늙어서 쭈글쭈글해지는게 자기들이 가질 수 있는 변화의 전부니까. 그게 진짜 이유라니까, 몸들이 기를 쓰고 부정하겠지만.

그렇게 역한 살 비비는 냄새는 곧 소리와 함께 다가왔다. 가뜩이나 피부가 건조해 추운 계절이면 고생하는 그가 목욕하면서 발바닥을 돌로 밀때 나는 소리, 아니면 새로 임플란트 해 넣은 이를 치솔로 닦을때 나는 그것들과 비슷한 소리였다. 대체 어떤 형상으로 몰려다니길래 이렇게 지독한 냄새와 소리를 동반하는지 궁금했지만 블라인드를 올려 창 밖을 내다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언젠가 체온을 나눈 적이 있었던 몸을 보게 될까봐 너무 두려웠다. 그건 어젯밤 우연히 만나 충동적으로 살을 섞은 사람이 오늘 아침에 시체로 발견되었을 때 맛보게 되는 공허한 소름끼침과는 조금 다른 기분이라고, 겪어본 누군가가 얘기하는 걸 들은 기억이 났다. 내 체온에 아직도 그 사람의 체온이 섞여있는 것 같은 느낌인데 정작 그 체온의 주인은 싸늘하게 식어었더라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그의 체온쪼가리를 나눠주면 일어날까? 라는 생각을 정말 오랫동안 했었지, 그 겨울이 다 지나가고 봄도 막바지에 접어들때까지도, 팔은 언제나 몸을 감싸고 있었다니까. 조금이라도 오래 죽은 사람의 체온쪼가리를 품고 있다가 혹시라도 필요가 있다고 누군가 말하면 써먹어보려고. 이번엔 두 손으로 귀를 막을지, 아니면 한 손만 써서 코를 막을지 생각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채 그냥 멍하니 소파에 앉아있었다. 어째 소리와 냄새는 그의 집 앞에서 머무르고만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죽은 듯 가만히 앉아있었지만 노래는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넌 원래 그런 사람이야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 들으면 바로 눈물을 흘리지 않을까, 생각했던 노래들은 의외로 무덤덤했다. 동글동글해야만 할 음표의 콩나물대가리들이 누군가의 입을 빌어, 손을 통해 나오기 전에 뭉툭하게 닳아버린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냥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사실을 말할께 오해야 모든게 마지못해 말했지.

 by bluexmas | 2008/08/20 11:52 |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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