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일의 사건사고

 오늘, 그러니까 월요일 아침은 새벽 한 시 반에 시작되었다. 한동안 자리를 비울 날이 며칠 남지 않아서 가기 전까지 조금이라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생각에, 오늘은 제발 회사에 좀 일찍 가아지, 라는 마음을 먹었고 그렇게 일찍 일어나기 위해서 다른 일요일보다 일찍 침대에 누웠다. 그게 열 두시 반이었다. 그러나 뭔가 너무 뒤죽박죽이라 내용을 기억할 수 없는 꿈을 꾸고는 눈을 번쩍 뜨니 한 시 반, 그렇게 눈을 뜨고 나서는 네 시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잠도 안 오는 김에 올림픽이나 보자, 라는 마음으로 그 때까지 중계를 보았다. 미국의 중계도 방정맞기는 마찬가지네, 라는 생각만 계속했다. 여자 체조를 보았는데 어리고 가냘픈 여자아이들이 실수를 저지르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좀 그랬다. 알고보면 나는 올림픽 경기 보는 걸 정말 좋아한다. 특히 비인기 종목일수록 더 좋아하는데 특히나 높이뛰기나 삼단뛰기 같은 비인기 육상종목을 정말 좋아한다. 내가 운동경기, 특히 육상을 보기 즐겨하는 이유는 아마도 비만아동 시절에 뭔가 장애아 비슷한 취급을 받던 시절에서 우러나온 트라우마 같은 것이 나로 하여금 그렇게 잘 하는 운동 선수들을 보면서 대리만족 같은 걸 느끼게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금의 나는 그런 상황도 아니지만(어제도, 오늘도 10km씩 뛰었다. 50분 안쪽으로-), 아직도 그런 경기들을 보면 같은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 어쨌든 내가 지금 우리나라에 없어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경쟁하는 걸 보지 못해서 그런지, 정말 승부에는 초연하다. 거기에 연연하고 싶지 않다. 오늘도 중국애랑 이런 저런 올림픽 얘기를 하면서 그냥, 최선을 다해서 경쟁하는 모습만 봐도 기분이 좋다고 얘기했다. 앞으로도 그런 마음가짐이었으면 좋겠다. 자기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 정말 힘들다. 누구보다 내가 너무 잘 안다.

2, 그래서 오늘도 늦게 일어났고 회사에 아홉시 반에 간신히 도착했다. 이런 날은 정말 내가 싫어진다. 나는 머리가 좋은 사람도, 천부적인 뭔가를 가진 사람도 아니라고 늘 생각해왔다.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면 정말 나는 가치가 없다. 요즘은 정말 종종, 나에게 가치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3. 보험때문에 골치 아픈 요즘이다. 6월 말에 겪은 교통사고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뒤로 계속 뒷목에 통증을 느꼈다. 물론 심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무시할만한 것도 아니었다. 3주인가 지나서 회사에 Chiropractor가 홍보차원에서 공짜 마사지를 해 준다고 찾아왔길래 증세를 얘기하고 한 번 들르기로 했다. 대여섯번만 오면 될 거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실제로 약속을 잡은 건 그로부터 3주 후였다. 대체 짬이 나야지… 가기 전날 상대방 보험회사에 전화를 해서 Chiropractor를 만나러 간다고 했더니, 사고가 경미하고 시간이 오래 지나서 돈을 줄 수가 없을 것 같다고 말하면서, $100을 줄테니 이 사고로부터 ‘영원히 (정말 forever라고 명시되어 있다)’ 가해자를 면제해주겠다는 서류에 서명을 해서 보내라고 했다. 받아놓고 서명해 보내려고 생각해보니 이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치룐지 맛사진지를 받으러 갔더니 자기네가 처리해서 돈을 받아내겠다고 얘기를 했다. 최악의 경우엔 한 번 찾아갈때마다 내야되는 부담금 $30씩만 내면 된다고 들었기 때문에 나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보험회사에서 몇 번 전화가 왔는데 받지 않았다. 결국 토요일에 집으로 편지가 왔는데, 내일까지 서명을 해서 보내지 않으면 $100도 주지 않고 사건을 종결시키겠다는 으름장을 담고 있었다. 결국 오늘 출근하자마자 Chiropractor에게 전화를 돌려서 처리하라고 얘기를 하고 나는 또 나대로 보험회사에 전화를 돌렸는데 $100 이상은 줄 생각 전혀 없고 그거라도 먹고 떨어지든지 아니면 말든지 맘대로 하고 변호사를 부리든 말든 자기들은 상관 안한다고 딱딱거리기 시작하는게 아닌가… 설상 가상으로 Chiropractor 쪽에서는 나 보험에 자기들을 쓸 권리가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쌓인 비용이 보험 분담 없이 $1,000이 넘는다고. 아하, 이게 혹 떼려다가 혹 붙이는 격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최악의 경우에는 그 모든 걸 그냥 내 통장에서 내버리고 자존심만은 지킬 생각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사고 같은거 나서 $1,000 정도면 그야말로 껌값인데다가 내가 무슨 거액의 합의금따위를 노리는 것도 아닌데 상대방 보험회사에선 나를 무슨 사기꾼 취급을 하기 시작했다. 돈은 손해보더라도 자존심은 손해볼 수 없는 일, Chiropractor에게는 한 번 들를때마다 $30씩만 받는다고 얘기했던 건 너니까 알아서 그거라도 받든지 말든지 맘대로 하라고 얘기하고, 보험회사에는 전화를 걸어서 내 생돈을 쓸지언정 $100을 받고는 합의 못하겠다고 얘기했다. 최악의 경우에도 나는 $120만 내면 되니까. 그 정도는 얼마든지 써 줄 수 있다. 이 모든 상황에 자존심이 너무 상해서 오후엔 사실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을 뻔도 했다. 얼른 마음을 가다듬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요즘의 내 일에는 실패의 여지가 별로 없다.

4. 일곱시까지 일을 하겠노라고 마음 먹고는, 일곱시가 되자 30분만 더 해야지, 라는 생각을 했는데 15분이 지나자 책상에 앉아있기가 너무 고통스러웠다. 오늘은 하루 종일 무슨 일을 했냐면, 지금 하는 프로젝트의 단면을 보여주는 단면도가 총 열 다섯갠데, 그 가운데 2/3 이상이 잘못된 치수의 기둥을 가지고 있어서 그 기둥의 치수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바꾸는 일을 했다. 직업상 어쩔 수 없기 가지고 있는 가짜 완벽주의를 만족시키는, 거의 자위에 가까운 직업적 성취감을 빼놓고는 사실 아무도 누가 뭘 했는지 티가 안 나는 그런 일이었다.

5. 언제나 그냥 집으로 돌아와서 널부러지고 싶은 욕망에 휩싸이지만 꾹 참고 공원으로 향한다. 그리고 달린다. 누구한테 농담조로 다음 올림픽에 마라톤 국가대표 도전을 목표로 뛴다고 얘기했는데, 여자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루마니아 선수가 서른 여덟이었다.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되는 것 아닐까, 생각을 해보니 머리가 너무 커서 안 될 것 같았다. 오늘의 목표는 5마일이었는데, 그냥 6.2마일, 10km를 뛰었다. 달리기를 마치니 랜스 암스트롱의 축하메시지가 흘러나왔다.

6. 내 블로그, 내 공간이니까 내 마음이 원한다면 뭐든지 해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늘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실 어떤 글을 올리고 나면 며칠 동안 계속해서 마음이 편치 않을때가 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그렇다. 몇 백명이 오는 블로그가 아닌데도. 왜 그럴까… 사실은 600번째 글로는 이걸 삼부작으로 써야지, 라고 꽤나 오랫동안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쓰고 나니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그건 그 글이 실제로 벌어진 일을 바탕으로 쓰여졌다/아니다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럼 대체 뭐가 문젤까? I remember I said, “I don’t have thick skin, and that is the problem.”

7. 배고프다. 그러고 보니 아직 저녁을 안 먹었다.

8. You already knew it.

 by bluexmas | 2008/08/19 11:44 | Life | 트랙백 | 덧글(10)

 Commented at 2008/08/19 13:3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j at 2008/08/19 17:33  

마라톤 연습, 응원을 보내요!

5번의 메시지에서 블랙유머의 아우라를 느꼈어요 ^^

 Commented at 2008/08/20 06:5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8/08/20 11:5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8/20 12:12 

j님: 반쪽 마라톤인데 설마 응원도 반쪽만 해 주실 건 아니죠?^^ j님은 다른 블로그 세계에 계셔서 찾아가기 가끔은 어려워요. 5번은 블랙유머가 아니라 처참한 자학개그랍니다. 하하… 머리가 커서 슬픈 사람이에요 저.

비공개 2님: 앗, 반가와요! 주단이라도 깔아드려야 될 것 같아요, 하하… 언제나 느끼는 건데, 우리나라에선 언제나 빨리 졸업하고 대학가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쫓겨서 해야 된다는 대국민적인 강박관념이 파릇한 젊은이들을 너무 몰아붙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별로에요. 제가 학교 다닐때랑 별로 다르지 않거나 더 어려워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 일까요. 사실 멋진 미래란 반드시 거창할 필요는 없답니다. 원하는 걸 할 수 있다면 일단은 되는거에요. 설사, 정말 설사 자기가 100% 원하는 걸 하지 못하게 된다 할지라도, 거기까지 가기 위해 노력했던 과정에서 얻는 힘은 또 앞으로 살아가면서 버틸 수 있는데 긍정적인 에너지가 되거든요. 그러니까 너무 어려워하지 마세요^^

아, 그리고 이 글을 쓴 다음에 배가 고파져서 밥 먹었답니다. 달리기 하고 나면 사실 물만 마시게 되지 식욕이 너무 없어져요. 물론 다이어트엔 좋죠…

비공개 3님: 그… 몇 번 비공개로 걸려있었던 걸 알고 있었거든요. 하하.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는 워낙에 얼굴 두꺼운 사람이 아닌데 누구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면 제가 뭔가 잘못한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죠. 잘못하지 않았다는 건 아닌데 그냥 내가 뭔가 잘못한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는게 싫다고나 할까요. 왠지 어딘가, 아니면 세상에 폐끼치고 사는 것만 같은 생각, 가끔 그런 생각을 하는데 그게 너무 싫어요.

사실은 언제나 의도적으로 섞어놓곤 해요. 사람들은 누굴까, 그게 저인지, 아니면 그냥 제 삼자인지, 아니면 남자인지, 또는 여자인지.. 대체 뭘 배달시킨건지. 그건 다 사실 거의 대부분 계획/기획된 것이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건 사실 모순적인 개념들을 일부러 섞어놓는 것이라서요. 도망을 쳐도 자유를 위해 도망치는게 아니라 속박을 위해 도망치고 뭐 등등…

쓰는 의지가 꺾인적은 없어요. 또 쓸건데 뭘 어디까지 써야되나 생각하고 있어요. 미리 생각했던 결말이 있는데 그냥 그렇게 넘어가도 되나 싶어서요.

 Commented by basic at 2008/08/20 14:15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면 정말 나는 가치가 없다. 는 말. 너무 슬퍼요. 흙; 모든 사람은 가치있는 존재잖아요. 보험 때문에 골치가 많이 아프시겠어요. 힘내세요!

 Commented by 은사자 at 2008/08/20 23:54 

얼마 전에 어떤 분이 제 글에 약간 오해를 하시고 어떤 덧글을 달았고 거기에 저도 굉장히 장문의 덧글을 달았던 적이 있는데 (그 덧글 달고 나서 지쳐버렸다는;;;;) 블로그가 “말”만 존재하는 곳이다 보니까 참 답답하더라구요. 그 분이 오해해서가 아니라 (“말”만 있기때문에 한 쪽 방향으로 길을 잡고 읽기 시작하면 얼마든지 오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그건 괜찮았어요) 제가 덧글을 다는데 혹시 이 글에 또 오해의 소지가 있는게 아닐까. 내가 실수하는 게 아닐까 이런게 너무너무 조심스러워지는 거예요. 그 일로 블로그가 약간 두려워졌어요.

전 사실 블로그가 작은 거라도 글을 쓰는 습관을 갖고 싶어서도 있고, 그냥 제가 재밌어하고 나누고 싶은 것들을 쓰면서 같이 재밌어 하면서 즐거워하고, 또 제가 느낀 것에 대해 일기처럼 기록도 하고 싶고, 또 슬플 때는 글로 옮겨 쓰면서 마음을 위로해보려고도 하고 이런 용도들로 쓰이는 편안한 공간인데 요즘들어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안타까우려고 해요. 뭐 그래도 전 꿋꿋이 하고 싶은 거 쓰겠지만 확실히 블루님 말씀처럼 현실이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블루님 블로그를 보면 많이 용감하신 걸요, 충분히. 전 아주 극단까지 심리적인 핀치에 몰려서 최후의 방법으로 글이라도 끄적여서 이 감상에서 좀 헤어나와야겠다 싶은 때가 아니면 제 감정, 특히 슬프거나 우울한 감정 드러내는 걸 잘 못하겠는데 블루님은 숨기지 않고 글에 감정을 살짝이라도 싣고 계시잖아요. 그래서 제가 블루님 글을 좋아하는 거기도 하지만. 그러니 흔들리지 마시고 꿋꿋이 고고씽-하세요 ^^

그나저나 블루님 대단하세요. 전 널부러지고 싶은 욕망에 이겨본 적이 별로 없는사람이라서 그 바쁜 일상을 마치고 스스로를 독려해서 결국 나가서 뛸 수 있는 사람의 그 의지력이라던지 자기 통제력이 너무 부러워요. 제가 제일 갖고 싶은게 그거거든요. T.T 오랜만에 놀러와서 글이 길었어요~ 오늘도 힘내세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8/21 13:35 

basic님: 보험은 그냥 제 돈 쳐박고 끝냈어요. 더 이상의 실랑이는 힘들어서… 잘 지내고 계신거에요?

은사자님: 언제나 바라기를, 다른 모든걸 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말만이라도 내가 갈고 닦은 그래도 남들에게 줄 수 있었으면… 이라구요. 지금이 그런 시기에요 사실은, 생각보다 좀 오래 지속되고는 있지만.

사실 전 요즘 밸리 같은데 뭔가 올리지 않은지 굉장히 오래 되었어요. 요즘 쓰는 글들이 밸리에 올릴 종류도 아니긴 하지만, 지금 블로그를 꾸려나가는 상황에 100% 만족한다는 의미가 되겠죠. 제가 쓰는 것도, 오시는 분들도…

우리는 모두 삶을 살고, 살다보면 슬픈 일도, 기쁜 일도 있기 마련이니까 그 어떤 감정이든 그것에 대해 글을 쓰는 건 사실 그렇게 두려운 일은 아니에요. 단, 언제나 금기처럼 입에 담지 않는, 그리고 글에서 다루지 않는 단어/주제가 있기는 하죠. 그게 뭘까요? ^^

 Commented by 은사자 at 2008/08/22 03:00 

음… 다른 블로거에 대한 비판? 아니면 블루님의 사랑이야기? 아니면 가족 이야기? 뭘까요…..??? (이런 거 한번 궁금해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데 T.T)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8/22 13:06 

하하…궁금증 곧 풀어드릴테니 기다려주세요. 요즘 또 야근투성이라서 시간에 쫓기며 살고 있거든요. 곧 글 쓸 시간이 좀 날 것도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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