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 후기

비단 잠 못 잤던 것 뿐 아니라 여러가지 복잡하게 얽히고 섥힌 상황으로 인해 나는 결국 오늘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다. 회사엔 점심시간이 끝날 때쯤 도착했는데 ‘Responsibility is my fuel’ 이라고 얘기했다. 게다가 오늘은 자원봉사를 가는 날이었다.

내가 미국에 살고 있으니 가끔 이 나라 애들의 전반적인 심성이 재수없는 경우를 맛봐도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짜증날때가 있다. 특히나 이런 자원봉사를 하러 갈 때면 그런 경우가 많다. 작년의 자원봉사 얘기는 쓰지도 않은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었냐면,

1. 내가 만든 쿠키를 빼고는 모두가 사온 음식이었다. 통닭은 홀푸드에서 사왔으니까 애써 그러려니 해도, 냉동 마늘빵에 냉동 감자에… 이거 정말 아픈 애들과 그 가족들이 먹는 음식 맞아? 라는 생각이 들었다.

2. 여자애 하나가 자기 엄마가 잘 만들어주던 후식이라면서 만드는게 사과를 흑설탕에 조린 것이었다. 그러니까 잼을 만들기 전의 뭉개진 사과 단계. 자기 엄마가 만들어서 자기가 맛있게 먹었으니 남들도 맛있게 먹어야 된다는게 미국애들의 거의 보편적인 마음가짐이다. 그건 무조건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는 음식이다. 자기가 그렇게 생각하니 남들도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거기에다가 대놓고 마음에 안들어하는 반응을 보이면 미움산다. 그건 미국애들이 어디에서나 자기 나라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그 우월주의와도 닿는 부분이 있다. 무지하도록 우월감을 가진다. 겸손따위는 내 사전의 단어가 아니고 써 본 적도 없다. 하여간 만드는데 내가 소금을 조금 넣으면 단맛이 더 살아난다고 얘기를 하자, 자기 엄마는 소금 안 넣는다고 내 말을 딱 자른다. 그러나 분명히 누군가 뭔가 하려들면 꼭 한마디 할 것이다. 소금의 짠맛을 얻기 위해 단 음식에 소금을 넣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을 그런 애들은 모른다. 무지한데 우월하다. 그런 우월감이라면 너나 가져라, 나는 그냥 이렇게 살테니,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3. 냉동 감자를 오븐에서 익히는데 그 부엌에 있던 베이킹 팬을 썼다. 이게 달라붙지 않게 테프론 코팅같은게 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하도 써서 코팅이 다 벗겨져 있었다. 나는 그걸 보고 감자에 코팅 부스러기가 묻지 않게 조심조심 뒤집는데 옆에 있던 여자애가 벌써 다 벗겨진 걸 뭐 그렇게 아끼듯 뒤집냐며 주걱으로 바닥을 박박 긁는다. 테프론이 유독성 물질 아니었나? 알게 뭐야 내가 먹을 것도 아닌데…

4. 이건 그냥 농담 같은 얘긴데, 어쩌다가 드라마 House 얘기가 나왔길래 나는, 그 남자 영국인인데 억양이 정말 미국사람 같더라, 라고 얘기를 했더니 2의 여자가 또 딱 잘라서 호주사람이라고 그런다. 설마… 내가 무슨 토크쇼를 봤다가 영국사람인지도 모르고 들은 억양이 너무 신기해서 IMDB에서 확인까지 했구만, 영국사람이라고. 호주랑 영국 억양 틀린거 영어가 모국어 아닌 나도 아는데 그래도 호주사람이란다. IMDB 같은 것 찾아봤을리가 없지… 그러나 무지하고 또 우월하다. 그래서 부러운 아이들.

어쨌든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짜증이 나서 올해는 내가 나서서 메뉴도 짜고 사람도 분배하는 등 이것저것 신경을 쓰려 했으나 이들에게 끌고 나가는 사람이란 그저 궂은 일을 하는 사람일 뿐… 목소리 큰 누군가가 단체 급식에서 준비하거나 조리하기 쉽지 않은 그리스식 꼬치구이 Kabob을 하자고 난리를 쳐 대서 결국 그걸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목소리 높여 그걸 만들자고 한 사람은 결국 입으로만 일했다. 사실 나는 구이용 팬을 가져오기로 했는데 어제 오늘 몸과 마음의 상태가 약간 떨어지는 상황이다보니 팬을 까먹고 안 가져왔는데 또 다들 겉으로는 괜찮다고 하고 나중에 미친 듯이 뒷다마를 깔 것이 뻔하기 때문에 근처 수퍼마켓으로 가서 우리나라의 전기 프라이팬 같은 Griddle을 $30에 사가지고 와서는 꼬치를 굽는데 쓰고 같이 간 디자이너 여자애한테 도로 팔았다, $5 깎아서. 가만히 있기도 뭐해서 연기를 홀랑 뒤집어 쓰고 꼬치를 구웠고 다들 거기에서 만든 음식으로 저녁을 먹는데 나는 그냥 집에 왔다. 솔직히 너무 성의없게 준비해서 만든 음식이라 나같으면 먹지도 않거니와  누군가에게 대접하지는 더더욱 않을 것이다. 이건 정말이지 내가 생각하는 아픈 사람들과 그의 가족들을 위한 음식의 기준 발끝에도 못 미치는 음식이다. 그래서 올해도 별로 재미없었다.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접해야하는지 털끝만큼도 모르는 인간들이 남들에게는 대접받고 싶어서 안달하는 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안타깝게까지 느껴진다. 정성없는 음식은 음식이 아니다. 먹는 사람을 마음 속에 담지 않고 만드는 음식이 맛있기를 바라다니, 다들 기대가 너무 큰 것은 아닐까? 내년에는 내가 다 준비할테니 돈이나 달라고 해야되겠다. 그게 대체 몇 시간이나 걸린다고.

 by bluexmas | 2008/08/15 12:06 | Life | 트랙백 | 덧글(8)

 Commented by 샤인 at 2008/08/15 13:52 

ㅎㅎㅎㅎㅎ 진짜 읽다보니 남일같지않네요.

진짜 이나라애들 ‘쓸데없는’ 자신감과 우월감이란..

정말 잘난것 눈꼽만치라도 하나도 없는것들이 항상 자기가 너무너무 이쁘고

자기가 생각하는건 다 옳다는듯 얘기하고있는걸 듣자면…

가끔은 너무 놀라워서 ‘와 이런 얼토당토안하는 자신감이 어디서나오나..’

‘이런 앞뒤없는 자신감 나도 좀 배워야겠구나. 나도 니처럼 세상좀 편하게살게.’

이런생각이 들때도 있어요.

이런사람들을 대할때 딱 한가지 좋은점은 쟤가 저러는만큼 나도 똑같이 나 우기고싶은거 다우기고 하고싶은말 다해도 된다는거. 뭐 쟤가 너무 싸가지라 난 왠만큼 하고싶은말 다하고 우길거 같이 우겨도 그냥 샘샘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_-;;

암튼 bluexmas님, 토닥토닥.

 Commented by j at 2008/08/15 16:50  

마음씨 나뿐 2번 여자애같으니라고요! 힐을 신고 옆에서 서서 꼭꼭 밟아주고 싶네요 어쩜 그리 개념이 없으신지..

 Commented at 2008/08/15 22:4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보리 at 2008/08/15 23:08 

아, 정말 무지해서 우월한… 와닿는 말이에요…

 Commented by blackout at 2008/08/16 00:31 

저도 이사람 저사람 코디네잇하는게 귀찮아서 최근에 한 20정도 피크닉을 혼자 준비한적이 있었어요~ 엄청 정신없긴 했지만, 나름 뿌듯했다는…(음식이 모자라서 좀 에러였지만.)

 Commented by 모조 at 2008/08/16 04:26  

푸하하… 무식한데 넘쳐나는 자신감!

근데 요즘 그런게 트랜드인가봐요.

성실하고 겸손해봤자 공은 뻔뻔하고 생색 잘 내는 놈이 다 먹는다고들.

 Commented by 산만 at 2008/08/16 15:32 

어떤 일을 내 일같이 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더군요. 이 나라에서는. 좀 쉬셨기를.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8/17 05:55 

샤인님: 정말 그렇죠? 자신감이 정말 어이없을 정도라서… 저도 배우고는 싶은데 사실 잘 안 되더라구요. 저는 뭐, 그냥 제 일만 하면 되니까… 조금 아쉬울 뿐이죠.

j님: 근데 회사에서 잘 나가는 애랍니다. 하하… 그런 애들이 원래 조직에선 잘 나가요. 남도 무시할 줄 알고 싸가지도 없을 줄 알고…

비공개님: 그래도 회사에서 두 시간 반은 돈을 대줘요. 그래서 나가는데 사실 그것보다는 그 날 아파서 오후 출근해서 일을 몇시간 못 했더니 그게 굉장히 마음에 걸리더라구요. 그래서 어제 좀 늦게까지 일했죠.

보리님: 박사과정 같은데서 말도 안되는 이론으로 하루 종일 세미나에 자리 차지하고 앉아서 떠드는 애들 보면 잘 아시죠 그게 뭔지?^^

blackout님: 그러나 저는 코디네이션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음식 질이 떨어지는게 싫어서 그런 생각을 했는데요?

모조님: 바로 그게 트렌드죠! 안 그런 사람들은 전부 바보로 취급되는 요즘…

산만님: 이번 주에도 역시 버거웠어요 하하… 더 큰 문제는 그런 사람들은 다 그렇게 먹고 살거라는 사실. 자신도 정성없이 먹이는 사람들은 대체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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