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that opens a new chapter

새벽의 공기는 서늘했다. 나는 밤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내 안의 셀 수 없이 많은 나 가운데 나를 가장 잘 아는 내가 드디어 고개를 들고 말했다. 얘, 이제는 집에 가야되지 않을까? 나는 핑게를 댈 참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밤공기가 이렇게 서늘하다보니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안 드는데, 라고. 그러나 이제는 때가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언제나 다른 길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때면 그냥 가다가 아니라고 생각이 들어 되돌아 올때까지 놓아두면 된다는 걸 스스로 알아차린 것도 참으로 오래전의 일이니까. 그 누구도 뭐라고 할 필요가 없었다. 내 안의 셀 수 없이 많은 내가 한 마디씩만 해대도 나는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아무도 그걸 몰랐기 때문에 다들 한 마디씩 습관처럼 해댔고 나는 곧 돌아서서 귀를 막곤했다. 나에게 충고 따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사람들은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렇게 그걸 모욕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 가운데 내가 어떤 사람인 것 같냐고 물어봤을때 속 시원한 대답을 던져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럼 난 다시 귀를 막고 돌아서곤했다. 그럼 꼭 누군가 귀를 막은 손을 억지로 잡아 귀로부터 떼어내면서 소리를 질러댔다, 세상에 너같이 남을 모욕하는 사람을 위해 마련된 보금자리는 있어서는 안된다고. 그럴 때면 꼭 말보다 거친 숨결이 먼저 다가왔고, 그 거친 숨결보다 아저씨 냄새가 더 먼저 다가왔다. 콧구멍을 막으려면 손 한 짝만으로 충분했지만 귀는 두 짝이라 양손 모두를 원했으므로 나는 늘 냄새에 무방비상태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일이 벌어진 저녁이면 다른 날보다 길게길게 샤워를 하곤 했었다. 그러므로 아저씨 냄새는 나에게 양배추 김치 다음으로 우주에서 두 번째로 지독한 존재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늘, 나를 세 번째 지독한 존재로 꼽을 사람들이 많은 것만 같은 두려움에 휩싸이곤 했다. 아저씨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라면 자기의 냄새를 두 번째에 올려 놓을 수 없으니 내가 양배추 김치 다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하고 나면 멀쩡한 배추김치마저 먹을 수 없는 저녁이 찾아오곤 했다. 그런 날이면 늘 잠을 설쳐댔고, 나에게 할당된 잠은 베개맡에 충혈된 눈을 하고 앉아서는 내가 그의 가장 지독한 악몽이라고 했다. 잠의 악몽이라니, 그거 별로 나쁘지 않은데, 라고 나는 비아냥거리곤 했는데 김치를 안 먹은 저녁이라서 그런지 그 비야냥거림엔 왠지 칼칼함이 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오이지는 먹을 수 있을까, 라고 중얼거리곤 했다. 고추가루를 좀 많이 섞어서 무치면 다시 칼칼함을 찾을 수 있을지도.

어쨌거나 그렇게 수 많은 나의 잔소리 때문에 괴로운 삶을 살아온 나였지만 그의 말이라면 들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들 가운데 나를 가장 잘 아는 나니까. 그래서 나는 멈춰섰다. 사람들이 즐겨 살지 않는 도시답지 않는 도시는 고요한 느낌이었다. 걷고 있는 길에서 한 블럭 떨어진, 내가 해질 무렵 지금보다는 조금 덜 서늘한 공기를 가르면서 달렸던 공원쪽에서는 마른 잔디냄새가 풍겨왔다.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천천히 걸으면서 생각해보니 나는 지겨워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단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는 거지.

그러나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새벽의 공기는 여전히 상쾌하도록 서늘했고 나는 일요일에도 달리기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렇게 나는 또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새 장章을 여는 금요일은 정말 아무런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왔지만 아쉬움은 손톱만큼도 가질 수 없을만큼 새벽의 공기는 서늘했다. 바람소리가 조금 거친 느낌으로 귀를 파고 들었지만 아저씨 냄새는 풍기지 않았으므로 나는 코도, 귀도 막을 필요가 없었고 따라서 두 손은 자유였다. 나는 순간이나마 아무런 의무에도 얽매이지 않은 손을 자연스레 흔들면서 걸었다. 그렇게 손이 본연의 움직임을 가지듯 나도 제자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괜찮아질거야, 라고 그제서야 그가 속삭였다. 속삭이다,는 내 안의 수 많은 나 가운데 오직 그만이 취할 수 있는 동사였으니 나는 그제서야 마음이 포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내가 들은 척하면 부끄러움에 푹 쩔어버린 그가 다시는 속삭이다, 를 자기의 동사로 취하지 않을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짐짓 못들은 척 할 수 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찾던 노래를 들으면서 웃는 듯 눈물 흘릴 수 있었던 밤은 그렇게 새벽으로 향하고 있었다,  내가 따라잡을까 걱정된 마음에 조금은 잰 걸음으로.

 by bluexmas | 2008/08/10 05:51 |  | 트랙백 | 덧글(2)

 Commented at 2008/08/11 11:5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8/11 14:16 

네, 뭐 떠들석하게 내놓고 할 만한 뭔가가 없어서요. 그냥 다들 조용하게…^^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