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mesake

외국 생활도 이제 만 7년째, 세상 살다보면 워낙 고민할게 많은지라 스스로 지은 것도 아닌 이름가지고 고민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었는데, 요즘은 가끔 이름 때문에 귀찮아지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런 상황은 대부분 상대방이 자기와 전혀 다른 체계로 만들어진 이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을때 발생하게 된다. 예를 들어 뭔가 해결하기 위해 고객센터같은데 전화를 해서 이름을 말해야만 되는 상황이라거나, 사람이 엄청나게 북적거려 누가 뭐라고 말하는지 잘 들리지도 않는 바 같은데서 통성명을 한다거나… 그런 상황에서 ‘My name is Cheol-soo(alias)’ 라고 말하면 대번 ‘Cheol-what?’과 같은 반응을 맛보게 된다. 사실 이런 상황이 웃기는 건 어딘가에서 일로 사람을 만난다거나 하는 경우와는 달리 서로 이름을 알려는 시도 자체가 별 의미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아예 그런 상황이면 상대방도 내 이름이 John이니 David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미리 염두에 두기도 하고, 나도 발음하기 그렇게 어렵지도 않는 내 이름-물론 철수는 완전 가명이고 내 이름은 따로 있다…-을 어떻게 하면 바르게 말할 수 있는지 공을 들여 알려준다. 그게 바로 내 이름이니까, 부모님이 지어주신.

사실 뭐 좀 살았다고 인간관계의 폭이 넓어지는 것도 아닌게 내 삶인데 요즘들어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또 그러다보니 내 이름이라는게 나에게 이질감을 주는 매개체라고 되는 것일까, 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되어 마음이 불편하다. 그렇다고 영어이름을 만들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래도 그 이름으로 불려지는 사람이 내가 아닌 것 같으니까(그렇다고 영어이름을 따로 만드는 자체에 대한 반감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아무래도 그건 개인의 선택이니까). 거기에 좋으나 싫으나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에 대해 뭐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에 별로 마음이 편하지 않기도 하고… 어쨌든 요즘은 이 이름의 문제가 생각보다 약간 더 나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어딘가 전화해서 이름을 알려줘야 할때마다 ‘C for cat, H for home…’ 이딴 짓을 반복하는 게 입아프기도 하고.

뭐 이름에 대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예전에 언젠가 예고편을 보았던 영화 The Namesake가 생각나서 이참에 빌려보았다. 사실 나는 여러가지 이유로 인도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라 이 영화를 빌려보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데 그래도 이런 생각 하는 김에 보지 또 언제 보나, 라는 생각으로 보면서 계속해서 인도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꾹 참으면서 보았다. Harold and Kuma Go to Whitecastle에 출연한 Kal Penn(그의 이름도 원래는 Kalpen Suresh Modi 라는 인도식 이름이다. 이름을 영어식으로 바꾸면 좀 더 많은 배역이 들어올 것 같아 바꿨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다)이 주연한 이 영화는 영화보다 훨씬 나은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데, 내가 생각했던 내용과는 조금 달랐다. 일단 나는 주인공의 이름인 Gogol이 완전 인도 이름인 줄 알았고, 그 이름으로 미국에서 태어나 살려다보니 어려움을 겪고 그 어려움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도 연결되는 뭐 그런 내용인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나의 무지가 몰이해로의 길을 늘 인도해주는 것처럼, Gogol은 옛 러시아의 작가로써 주인공의 아버지가 운명적인 기차여행을 할 당시 읽던 책을 지은 사람이라고. 나야 뭐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솔제니친 정도나 알까말까 하니까…

하여간 영화는 생각보다 조금 시시했던게, 이민 1세대가 인도와 미국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출지, 아니면 2세대가 사실은 좀 뻔하다고 할 수 있는 2세대로써의 정체성에 대한 갈등을 겪는 모습을 보여줄지 결정하지 못하고 약간 우왕좌왕해서 막판으로 갈 수록 초반주의 응집력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결국은 뭘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알 수 없고(아주 모르지는 않지만 겨우 그거냐?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고나 할까?). 책은 좋다고 사람들이 그러던데 책까지 볼만큼 관심은 없고…

어쨌든 이름으로 인해 심심풀이 시간죽이기용으로 걸맞는 작은 고민을 요즘 안고 살아간다는 얘기. 그렇다고 무슨 중학생때 이민 온 아이들처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한다는 건 아니고…

 by bluexmas | 2008/08/04 13:14 | Life | 트랙백 | 덧글(3)

 Commented by blackout at 2008/08/04 14:38 

빌려볼까 했는데 별로인가봐요~ Gogol은 고골리 인가보군요. 저도 한때 영어이름을 써볼까 했는데, 누가 그 이름으로 불러도 대답을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어서 포기했어요…-_-

 Commented by Eiren at 2008/08/05 13:46 

말씀하신 것처럼 처음에 통성명할 때 상대방이 너무 못 알아듣는 다는 이유로 영어이름을 쓰는 사람들도 있고, 영어이름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너무 기억을 못 한다는 이유로 쓰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제 지인은 정말 너무 민망하고 미안한데 아시아인들은 대체 이름을 기억을 못하겠다고 고백한 게 벌써 대여섯번은 되는 걸 보면 답답하면서도 어쩔 수가 없는듯합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8/06 13:49 

blackout: 그게 나중에 짓는 이름의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Eiren님: 음, 어떻게 보면 서양 이름을 우리는 다 이해하는데 서양인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요? 물론 우리나라 이름 가운데도 특별히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들이 있긴 하죠. 제 이름은 그렇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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