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안녕

1. 의자에게 안녕

아침에 출근해서는 윗사람들을 차례로 만나서 이제 의자 돌보는 일을 끝내고 다음주부터는 전업으로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위해 일을 할거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뭐든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나도 이제 시키는 일 할만큼 했으니 작은 일이라도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했다.

월요일이면 J가 돌아오므로 어차피 내가 책임지고 해야될 일도 없어지고, 또한 면허시험을 위한 크레딧도 얼추 채웠으니 이 지긋지긋한 일을 더 해야 될 필요는 없다. 사실 크레딧을 채우는 순간 입 싹 씻고 그만한다고 말해야 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특히나 너무나도 기회주의자 같은 인도애들이 내가 하던 일을 뺏어가는 걸 그대로 눈 뜨고 지켜보기 전에… 그러나 책임을 지고 싶었다. 끝까지 하고 싶었다. 남들이 잘 안 하는 일, 내가 끝까지 이끌어서 끝을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물론 남들에게 좋은 소리 듣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사실 그것보다는 그냥 끝까지 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다. 남들이 안 하려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러나 나도 이젠 너무나 피곤하고, 또 마치 능력이 없는 사람처럼 남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했던 일을 빼앗기는 상황을 더 이상 지켜볼 수가 없었다. 특히나 인도애들에게는 더더욱. 이건 어제 말했던 직장에서의 성공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나는 성공을 위해 이렇게 하고 싶은게 아니다. 남들에게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과 성공을 위해 달리는 것 사이에는 언제나 미묘한 경계선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내가 원하는 건, 적어도 남들에게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인간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렇게도 안 되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J가 휴가 가고 나서, 나는 비교적 빡빡하게 계획을 짜서는 의자들과 사랑을 나누어왔다. 그건 시공회사의 계획과 맞추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회사에서 하는 워크샵에 이 의자 점검하는 걸 적용시키기 위한 스케줄과도 맞춰주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걸 계획하는 애들은 다음주가 워크샵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단 한 번도 진척 상황을 물어보지 않았다. 내가 메일을 보내서, 필요한게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라고 얘기해도 단 한 번도 물어보지 않다가 사람들앞에서 이런 걸 하게 될거라고 발표만 했다. 그러나 나 혼자 용을 써서 계획을 맞춰주려고 해도 그게 쉽지 않은 상황이 찾아왔는데 애들은 그걸 모르고 있다. 그냥 계획된대로 할거라고 말만 하고 계획이 현실이 될 수 있는지 직접 일하는 사람에게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럼 영영 물어보지 않다가 뒷통수나 맞으려무나, 라고 나는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손을 보태주겠다고 한 사람들 모두가 사정이 생겨 못 오게 된 실내 경기장은 텅 비어 있었다. 정해진 분량의 의자를 점검하다보니 시공회사에서 고용한 의자 설치하는 회사의 담당자 Joe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도 혼자였는데, 계획에 약간 뒤쳐져서 자기 혼자 이런 저런 것들을 손 보고 있다고 했다. 내가 짬밥 3년차라서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말려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먼저 말을 잘 안 걸어서 그렇지, 그는 열심히 일하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가 먼저 다가왔기 때문에 우리는 최근에 설치된 의자들이 가진 문제들에 대해 짧게 얘기를 나눴다. 그는 내가 지적해서 시공회사에 보낸 문제가 왜 발생했으며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얘기했고 나는 주로 들었다. 내가 하는 일보다 그가 하는 일이 더 어렵다고 생각하는 나로써는 그를 닥달질해서 이것저것을 다 해 내놓으라고 말할 마음이 애초에 없었다. 내가 몇 글자 써 놓는 것이 그들에게는 몇 시간의 일이 될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아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깐깐하게 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이다. 언제나 최선의 의사소통 방법은 연하게 나가는 것이다. 부드럽게, 감정을 지나치게 내세우지 않는 뭐 그런 것… 그는 주말에도 나와서 일할거라고 했으니, 나는 그런 종류의 사람에게 싫은 소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리 없었다. 그가 하는 일은 나처럼 책상에 앉아서 마우스를 만지작거리는 그런 일이 아니다. 그에게는 드릴을 비롯한 각종 공구들이 있다. 그리고 물론 가족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주말에 일하는 상황은, 생판 모르는 나에게도 좋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렇게 짧은 대화를 나누고 우리는 악수를 했다. 그의 손은 역시 나의 그것보다 거칠었다.

휴식시간을 이용해서 애플 대리점에 전화를 하고 나서는 남은 구역을 마저 점검했다. 그리고는 그냥 기어들어갈 듯한 목소리로 당분간 다시 볼 일이 없을거야, 안녕, 이라고 말했다. 나눠주는 팜플렛에 의하면 조지아 돔에는 71,000개가 넘는 의자가 있다고 했는데 나는 아마 그 가운데 적어도 4만개 정도를 점검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젠 그만하고 싶었다. 습기가 가득찬 오후에 차를 몰고 지하주차장을 나서서는 경기장의 사진을 찍었다. 어린 시절 주일학교에서 배웠던 것처럼 꽃들에게 희망을 줄 수는 없어도 의자들에게 안녕을 고할 시간은 된 것 같았다. 그렇게 안녕, 이라는 단어가 내 목구멍을 타고 흘러나왔다. 무생물에게도 가끔 정을 주는 나는 나약한 인간인 것이겠지, 라는 생각을 학교 체육관으로 차를 몰고 가며 무심히 하고 있었다. 이제는 밤에 양을 세고 싶지, 농담했었던 것처럼 의자를 세고 싶지는 않았다. 농담으로 얘기했던 건데 진짜로 의자를 세던 밤이 있었다.

2. 사람에게 안녕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아주 멍청하고 사춘기 소년스러운 징크스가 있다. 그게 뭔지는 말 할 수 없는데 결론인즉슨, 죽을때까지 보지 않을 사람이 아니라면 인사말로라도 안녕, 이라는 단어는 입에 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 단어는 내 입에, 내 손에 참으로 적은 회수만큼 담겨져왔다, 지난 17,8년의 시간 동안. 그러나 때때로 아주 오래되어 잘 열리지 않는 기억의 서랍 속에서 저 단어를 꺼내서 갈고 닦고 기름쳐서는 내보내야만 하는 상황이 생긴다. 바로 지금처럼. 그래서 입에 담는다, 그리고 종이에 손으로 쓴다. 안녕, 이라고. 이를 악 물고 쓴다,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이니까. 짧은 한 주일 동안 그 두 가지의 안녕을 다 쓰고 나서는 정서적인 피곤함을 느끼며 소파에 몸을 누인다. 미안해요, 내가 혹시라도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미안해요. 라는 유치한 유행가 가사 같은 속삭임이 어차피 나 말고는 아무도 끼어들지 않는 고립된 공기를 헤집고 흘러간다. 언제나 저 따위의 유치한 속삭임이 바람을 타고 멀리 멀리, 그러니까 들어줬으면 하는 사람의 귀에까지 흘러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 한 번도 그 바램이 현실이 된 적은 없었고 사람들은 나의 냉소에 기가 질린듯한 표정을 짓곤 했다고 누군가 귀띰한 적이 있었다.

 by bluexmas | 2008/07/12 13:19 | Life | 트랙백 | 핑백(1)

 Linked at The Note of Thir.. at 2013/01/13 01:07

… 이후에는 일도 그럭저럭해서 그와도 바람직한 관계를 유지했다. 아예 다른 스튜디오로 옮겨간 뒤에도 건축사 면허 자격 취득을 위한 감리일 때문에 일을 도와주었고(바로 이 포스팅. NFL팀 Atlanta Falcons의 홈인 Georgia Dome이다),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학교(그와 나는 대학원 동문이다) 미식축구 경기와 시카고-두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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